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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뗏목탐사,이제 동해와 독도로 갈때
[주장] 공격은 최선의 수비, 지배층 믿지말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나서야
 
이일   기사입력  2005/03/19 [02:01]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던 정부가 연일 일본에 대해 맹공이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이 반일감정 부추기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하락으로 치닫고 있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국내용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이는 삼일절 담화문에 대한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반응과 같다. 노 대통령이 국내문제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 했었다. 일본의 이런 망언을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부의 대응을 미뤄 짐작해보면 빌미는 우리 쪽에서 줬다는 한심한 개연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너무나 찝찝할 뿐이다.
 
4백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전쟁을 돌아다본다. 임진왜란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승리를 두고 임진왜란은 우리의 승리라고 국사책에서 배워왔다. 이순신을 앞세운 박정희의 저의가 국사에도 반영된 것이다. 어떻게 승리인가? 우리 땅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역사학자 중엔 임진왜란 기간 우리나라 땅은 백년 동안 그 폐해를 이어가야 했다고 한다. 논과 밭이 경작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 이런 주장도 있다. 이순신의 승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의병 등 내륙에서의 항거와 명나라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순신의 업적에 해를 입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단지 박정희가 자기의 친일행적을 감추기 위해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고 같은 군인을 부각시킴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구국과 애국충정을 자기와 빗대어 이순신이란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대리 영웅화는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중에 이순신 동상을 독도에 세우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보자. 축구로 비교해 보자. 이순신은 수비수였다. 아주 훌륭한 수비수였다. 적의 공격을 잘 막아낸, 그것도 이순신 장군이 맡고 있던 쪽(바다)만 빼고는 모든 수비가 뻥뻥 뚫린 그런 경기를 상상해 보자. 우선 이순신 장군이 뛰는 팀을 응원하는 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도 한번 공격 한번 좀 하자 하지 않을까. 이거다, 바로. 수비수의 역을 150% 이상 잘 소화해낸 이순신 장군이지만 전체 경기를 관전하자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공격수가 필요하다. 공격은 또 최선의 수비라고도 했다. 그런데 또 수비수를 세워 독도를 지키겠다고? 독도가 다 거덜 난 다음에 독도를 차지하겠다고? 이젠 우리도 공격수 영웅을 가져야 한다. 바로 연개소문과 같은 장군이다. 당나라 태종이 안시성을 빼앗지 못하고 돌아가면서 역공이 두려워 비단 백필을 주고(조공 또는 촌지와 같은) 도망을 갔었다. 우리나라에선 김부식이 그의 역사책, 삼국사기에서 악독한 독재자라고 썼지만, 이를 천 년동안 우린 그대로 믿었다. 우리의 정통 역사서는 유일하게 이 책뿐이니...
 
그러나 신채호 선생님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도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 승리를 거둔 유일한 우리나라 최고 영웅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어본 한국인은 아마도 아주 드물 것이다. 신채호 선생님의 주장은 일개 개인의 주장으로 상당수 우리 역사가들이 폄하했기 때문이다. 이 연개소문은 중국에서 아직도 두려운 존재로 남아 그들의 경극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천대를 받는다? 독도 문제로 불거진 일본과의 전쟁에 지금 필요한 인물은 연개소문과 같은 강력한 공격수다. 수비수로는 안 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 땅은 어찌 바뀌었나? 백성들은 백년이나 쓸 수 없게 된 땅을 백년 동안 일궈내며 흙에 온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별 명목으로 각종 세금을 부과하며 양반들의 착취는 더 심해졌다. 나라를 지켜줬다 해서 지배층 세도가들은 중국(명)에 더욱 더 머릴 조아리며 사대는 극에 달했고 이 이후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백성들 상당수가 도적으로 나섰다.
 
임꺽정, 장길산 등이 나온 때가 바로 이때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나도 그 피해는 완전히 백성들만의 몫이요 전쟁이 끝나도 소위 지배층들은 그들의 삶이 전혀 그전과 달라진 게 없이 온전했다. 역시 임진왜란 전처럼 편을 갈라 싸움질만 하다가 다시 맞은 전쟁이 병자호란이요 한일합방이질 않는가.
 
근데 봐라. 우리나라를 일본에 내준 매국노, 송병준이나 이완용의 자손을 봐라.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땅을 아직도 갖고 자기땅이라며 소송을 걸어 결국 그 땅을 차지하고 있질 않은가. 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질 않는가 말이다. 독도로 인해 전쟁이 나도 손해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소위 지배층에 앉은 자들이라 이 말이다. 보지 않느냐. 인권위원장의 뻔뻔스런 얼굴을 보고 있질 않는냐 이 말이다. 이러고서도 적과 전쟁을 할 수가 있을까? 정부 등 우리 정치인들은 이래서 미덥질 못하다. 그들에게 독도를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역사를 봐라. 몇 놈이 다 말아먹었질 않았는가. 그리고도 한번 처벌다운 처벌을 그들에게 지우질 못했다. 또 이런 지배자들만의 나라와 역사의 전철을 밟아야 하나?
 
지금 TV에 나오는 화면들을 보면서 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내 상식으론 광화문에 진작 촛불이 잔뜩 켜져야 하는데 아직 그렇질 못하고 노랑자켓을 입은 자들의 애국의 목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전혀 들리질 않는다. 물론 빨강치장의 붉은 악마도 보이질 않는다. 단, 친미요 반노요 친한나라당의 단체나 그 사회자의 얼굴이 자주 눈에 뜨인다. 우리의 보수, 극우는 친일 쪽이었지 않은가. 박근혜가 그렇고 박사모가 그렇고 헌재의 재판관들이 그렇고  교수들이 그렇고... 좋다. 다행이다. 일본의 무식이 우리를 한 마음으로 뭉치게 하고 있다면 이건 아주 좋은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가 언제 돌변할지, 아님 언제 바로 수그러들지 몰라 이게 무지 염려스럽다. 정부의 지금과 같은 반응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처럼 극우단체들의 거리 성토 또한 미덥지가 않다. 하지만 아직은 무조건 박수요 그들을 더 격려하고 싶다. 지금 심정으로는 촛불보다도 노랑자켓보다도 빨간운동복보다도 더 신뢰가 간다. 그 전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이들이지만, 이들이 동참한다면 지난번 훗날로 미뤘던 발해뗏목탐사팀을 재건해 동해바다에 띄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두려워 하는 건 정부의 어떤 방침이나 정책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합쳐진 힘이다. 일본은 우리에 대해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한국 놈은 윗대가리 몇 놈만 구워삶으면 돼’ 이거다. 이러니 고이즈미도 일본 언론도 노무현의 국내용 정치적 쇼라고 속내를 털어놓질 않는가.
 
발해뗏목 탐사의 재출발 추진은 대자보가 할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거리에서도 보여주고 바다에서도 보여주고 가능하다면 하늘에서도 보여줘야 한다. 우리 국민의 모아진 힘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부류는 일본과 그리고 우리 안의 적인 지배층들이다. 함께 경계해야만 한다. 우리 역사가 일러주지 않는가. 1965년 박정희의 한일수교와 1999년 김대중의 한일어업협정에서 보여준 일본 앞에서의 굴종을 우린 아주 최근에도 보고 살아야 하지 않는가.
 
일본이 들고나오는, 이래서 저렇게 당당한 것은 다 우리, 아니 우리의 소위 대표자들이 건네준 굴종 때문이다. 1905년, 1965년, 1999년의 역사적 기록을 그들이 국제사회에 알릴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땐 우리가 우매했다고? 그 때의 대표들은 우리의 진정한 대표는 아니었다고?
 
발해뗏목을 동해바다에 띄우는 것은 우리 국민의 자주성을 보임이며 그전과 같이 지배층에게만 맡겨놓았던 우리 국민의 무지를 깨는 일이기도 한다.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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