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발해뗏목 침몰시키는 김부식의 후예들
[논단] 뗏목탐사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바로세우기, 다시 모여 이어가야
 
이일   기사입력  2005/02/25 [23:36]
흔히 말하는 속담 중엔 고개를 젓게 하는 것들이 있다. 속담은 격언으로 받아들인다. 격언은 사리에 꼭 맞아 교훈으로 삼을만한 말이지 않은가.

고개를 젓게 하는 속담 중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게 있다. 속담은 오래 전부터 민간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 격언이라는데 이 속담의 출발지가 의심스럽다. 민간 스스로 이런 속담을 만들어 삶의 지혜로 여기고 살아왔을까?
 
모험과 도전정신을 죽이는 나라
 
이 속담은 조선 개국 당시의 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었다는 시조를 떠올리게 한다. 다 잘 알고 있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하여가다. 그럭저럭 대충대충 어울려 살자는 말이 아닌가. 뒤집어 말하면 따지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리 살라는 말이기도 하다. 모난 돌로 살면 정이나 맞을 테니 모나게 살지 말고 얼렁뚱땅 사는 게 지혜라고 일러주는 이 속담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소위 지배층들을 끌어들일 땐 ‘하여가’와 같은 시로 유혹하고 백성들에겐 이러한 속담을 유포함으로써 반대의 생각들을 원초적으로 봉쇄한 정치적 저의가 깔려 있는 속담으로 지배층에 의해 지배방편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성혁명이라고 하여 조선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임금의 성을 왕 씨에서 이 씨로 바꿨다. 이러니 자기들도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으리라. 속담 하나로 이렇게까지 유추해 본다. 이런 류의 속담은 또 있다. 속담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침묵은 금이다’ 등등. 비슷한 걸로 또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없다’ 모두 다 구리니까 구린 놈 건드리지 말라는 뜻 아닌가.
 
사설이 길어졌다. 이유가 있다. 우린 이렇게 태어난 대로 생겨 먹은 대로 살라고 세상 나올 때부터 아니 뱃속에서부터 이미 운명을 정해 놓고 나왔다. 극소수 지배계층의 자기들만의 영원한 권력 잡아두기의 다른 표현이 속담으로 둔갑해 대다수 백성들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조상이 땅을 판 사람은 대대로 그 일만 해야 하고 머슴으로 난 비천한 신분은 신분 상승을 꾀하면 도리를 벗어나는 걸로 알게 하는 사회적 속박의 수단이 되어 왔다. 여기에 특정지역을 거론하며 등용을 애초부터 막았다. 호남인과 서북인 차별이다.
 
정여립이 들고 일어났고 홍경래가 모난 돌이 되었지만 모두 반란군으로 취급해버렸다. 홍경래와 함께 차별철폐를 주장하며 난을 일으킨 우군칙 등 수많은 사람들은 효수(목을 베 높은 곳에 달아두는 형벌)돼 전국 8도를 돌게 했다. 기성과 기존을 반대하거나 반항하면 이 꼴로 처참하게 끝을 보게 된다는 협박을 국민에게 해댔던 것이다. 모두 조선 때에 있었던 일이다.
 
오히려 그 전 고려 때는 멀리 아프리카나 유럽에까지 우리 민족이 진출했었다. 이래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이름이 코리아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조선 5백년은 내내 왕족은 형제 싸움으로 왕위 찬탈에만 급급하고 이 아래 사대부들은 당파 싸움으로 세도나 펴려 하였으니 외국으로의 진출은 꿈도 꿀 수가 없는 시대였다. 그 원조는 이성계가 아니던가.
 
위화도 회군을 말한다. 중국을 치러가다 말고 돌아서서 칼을 자기 권력확보에 휘둘렀지 않았는가. 자기들만의 권력으로 꽁꽁 묶어두는 방법은 외교는 사대의 굴종으로, 국내는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강압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선진문물에는 관심은 없고 오로지 내 몫만 챙겨 꼭 붙들고만 있으면 되는 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다. 쇄국은 결국 나라를 넘기고 말지 않았는가. 한반도 땅 안에서 그저 이렇게 5백년에다 또 약 40년을 일본에 의해서 꼼짝달싹도 못해본 우리 국민은 적어도 무려 6백년 동안 적당주의, 대충주의, 안일무사, 복지부동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만 어떻게 잘 무사히 지낼까만 생각하면 된다 이거다.
 
현재진행형의 뗏목탐사, 누가 실패라 하는가
 
이제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이런 환경에서 모험정신이나 도전정신이 싹틀 수나 있었을까? 모험, 도전의 진보적 생각이나 행동은 원천 봉쇄돼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국민을 나라 안에 묶어두고 밖의 세상엔 눈도 돌리지 못하게 했던 쇄국은 불과 20년전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내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갈 일이 생겼다. 그 때가 1984년이다. 그 땐 외국에 나가는 모든 사람이 4시간인가 안보교육을 받아야 외국에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서울 남산의 자유센터(지금은 무엇으로 바뀌었는지 모른다)에서 이 교육을 받았는데 연단의 강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쇼킹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거든 북한을 북괴라고 하지 마라. 가능한 만나지 말되 만나거든 다른 나라 사람과 똑같이 대하라.”
 
내 당시 나이 스물 일곱이었고 그 나이 되도록 북한이란 말 대신 북괴에 더 익숙해 있었다. 북한괴뢰도당과 빨갱이라는 표어로 왜곡한 사실이 외국 나가면 바로 들통날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강의 시간에 거듭 강조해야 했었을 것이다. 그 동안 교육 받은 게 다 허위잖아? 하며 나는 쇼킹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속박되고 구속된 채 살아온 우리였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자. 탐험가 이름이 한 명이라도 기억이 나는가?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선생? 탐험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누가 있나? 우린 어려서부터 외국인 탐험가의 이름만 외워왔을 뿐 탐험을 한다고 나서면 미친놈의 짓쯤으로 깔아뭉갠다. 이번 발해뗏목탐사대의 대원 역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망치에 맞으려고 미친 짓 하는군 하며 모난 돌로 취급해버리고, 가만히 살면 되지 뭐 잘났다고 튀는 거야 하며 역시 미친놈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우리 사회다. 6백년의 긴 시간은 이것을 우리의 국민성인 양 굳혀버리고 말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인정해야 반성이 나오고 반성은 되풀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랬었다. 이래서 발해뗏목탐사대가 옛 우리의 땅,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린 러시아에서 일본까지의 동해바다를 오가며 국제거래를 해온 우리 조상, 발해인과 그 기상의 뒤를 따라 무려 천 3백년 만에야 나섰을 때 소위 메이저 신문, 방송, 그리고 메이저 인터넷신문까지도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번 뿐 만이 아니다. 7년 전 발해탐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신두절 되고 대원의 생사가 확실치 않게 되자 이젠 너도나도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7년 전도 같았다.
 
7년 전, 발해뗏목 1차 탐사대의 출발을 모든 국민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처럼 그들 네 명이 죽었다고 하니 그제서야 보도하는, 그리고 생각해주는 척을 했었다. 그리고 이내 잊혀졌고 그 대를 이어 재도전에 나선 자들에게 또 역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들에게 깔려 있는 건 바로 속담 속의 ‘가만 있는 자 손해 안 본다’ 이거 아닌가. 안일무사요 적당주의라는 말이다. 이러니 이들의 모험과 도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 스스로 저버린 우리 역사, 발해를 찾아나서는 자랑스런 역사이어가기는 미친짓이라며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2백여 년 전, 이 땅에 처음으로 ‘발해고’를 써서 발해의 역사를 우리 민족사에 넣어 인정한 실학자, 유득공이 있었고 그 뒤 신채호 선생이 발해 역사를 이어갔지만 일개 주장으로 폄하하고 무시되었던 사실과 다를 게 없다. 신채호의 이름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해보자.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에 있어 김부식은 잔학무도한 독재자라 적었지만 신채호 선생은 ‘우리의 4천년 역사에서 가장 손꼽을 만한 영웅’이라 했다. 김부식은 우리 역사를, 그리고 우리의 땅을 신라 중심으로 축소한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의 책은 우리 역사의 대표서로 추대받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의 잊혀진 자긍심을 찾아내는 데에 평생을 바친 분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정통성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한갓 주장으로 차별대우하고 있지 않은가. 연개소문은 중국 당나라를 치며 국세를 넓혔던 인물이며 중국은 아직도 그를 무섭고 두려운 인물로 역사서에 기술하고 경극에도 등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김부식의 안목은 순전히 한반도, 그것도 한강 이남에만 주목한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사대주의자다. 그러나 그가 기술한 역사가 정통으로 특별대우 받고 있다. 고려 때 사람 김부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어렸을 적엔 일제식민사관이 주류였고 그것만을 사실인 양 외웠지 않았는가. 
 
이번 발해뗏목탐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와 국민의 관심을 보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준비가 소홀했다느니 하며 무모한 짓으로 평가절하해버리고 있다. 일각에선 발해뗏목탐사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실패한 탐험가에 대한 듣기 좋은 예의요 상투적 인사치레 정도로만 들리고 보일 뿐이다.
 
7년을 사이에 두고 1차, 2차로 이어져온 천 3백년만의 의기와 용기는 천 3백년 동안 우리 역사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도전정신의 시발이요 개척의지의 발현이자 진보적 실천이다. 사대로 주변국에 눈치만 보고 살아온 지배계층과 그의 지배를 받아오며 역시 똑같이 굴종하더라도 자기보신에 급급하게끔 만들어진 피지배계층인 국민의 눈엔 비록 미친짓으로 보일지라도 이들의 자주적이고 자긍심 가득한 정신에서 출발한 장도는 그것 자체로도 쾌거임에 틀림없다.
 
뗏목은 자주정신의 시동을 걸고 있는 중
 
누가 이들에게 실패의 애꿎은 덫을 씌우려고 하는가. 바로 안일무사, 복지부동하며 자기 몫만 챙기는 데에만 혈안인 속좁은 치들은 실패로만 보일 것이다. 그 눈으로 무엇이 보이겠는가. 애시 발해뗏목인들은 이들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하면 전혀 동요될 필요가 없다. 고개 숙일 일이 아니다. 천 3백년만의 쾌거를 어떻게 계속 이어가느냐에 몰두해야 한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이들의 출발부터가 그저 자랑스러웠다. 함께 뗏목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나의 연약함에 부끄러웠을 뿐이다. 다행히 탐사대장인 방의천 대장은 나와 같은 마음의 동행자를 위로하기 위해 떠나기 바로 전 이런 말을 했었다.
 
“몸은 우리 넷이 가지만 뗏목엔 뜻을 같이 하는 많은 국민들을 모두 태우고 다녀옵니다.”
 
잔치를 벌여야 하고 잔치를 벌여줘야 한다. 우리 대신 대표로 고생한 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 잔칫날, 우리 곁에 돌아온 이들로부터 체험담을 듣고 기록해둬야 한다. 곧 있을 다음을 위해서다.
 
1천 3백 년 전의 발해항해가 지금까지 동해바다에서 계속 이어졌거나 적어도 기록으로라도 이어져만 왔었어도 지난 7년 전의 가신 님들의 희생이나 이번 대원들의 고생은 없었다. 단절을 새로이 이어간다는 일이 이리도 힘들다는 걸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체험으로 다시 터득해가는 중일뿐이다.
 
또 잔칫날, 뜻을 이어갈 다음 대표, 뗏목에 태울 우리들의 대표들을 뽑아야 한다. 하나하나 모두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 탐사기가 쉽게 쓰여지리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안일이다. 하니 잔칫날을 늦출 수는 없다. 천 3백년만에 우리가 스스로 벌여놓은 자주정신의 잔치 아닌가.
 
여기서 물러나거나 머뭇거리면 또 우린 천 3백년, 아니 더 긴 시간, 더 오랜 세월을 약소한 민족으로 비굴하게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이제 이렇게는 더 살고 싶지 않다. 내 자식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주고 싶지도 않다.
 
발해뗏목탐사는 과거의 역사잇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이 땅에 진행 중인 주체성 상실을 막기 위한 현재진행형의 역사바로세우기이다. 잊고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찾자는 반성이며 동시에 잊고 잃어버린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미래를 향한 지금 당장의 실천이기도 하다. 몇 명이라도 좋다. 다시 모이자. 그리고 이어가자. / 자유기고가
     
* 발해뗏목탐사대 후원하기 http://cyworld.com/2005balhae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02/25 [23:3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편파판결 2005/02/25 [23:50] 수정 | 삭제

  • 친일과 쿠데타 부정부패비리로 쌓은 재물과
    피묻은 권력으로 호강하던 그 때 그 사람들
    아직도 이 세상이 제 넘들 꺼라 착각하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하네

    영화는 가위질 노래는 벌금형
    패러디 만평에 사진에 댓글까지 검열하시고
    지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멋대로 재단하며 깐죽거리네

    삽질 좀 하지마 그 때 그 사람들
    그런다고 더러운 너희들
    호시절이 다시 돌아오진 않아

    이젠 좀 사라져 그 때 그 사람들
    세상은 이미 그 때 그 시절이 아니야

    [여당은 당선무효-야당은 벌금형]
    [기막힌 정치재판 그이름 선거재판]
    [돈은 풀고,입은막는 국민정서무시한재판]
    [여당,초선,개혁의원에 집중된 판파의혹]
    [대통령장인을 빨갱이라고 해도 괜찮고,야당대표 비난하면 유죄]
    [억대골프내기도 무죄라고 우기는 세상]
    [영화도 멋대로 가위질하는 재판]

    아~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