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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노동자의 분신, 과연 누가 미쳤나?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 미친 것은 바로 우리
 
소환   기사입력  2004/04/14 [20:09]

한강대교 교각에서 탄핵반대를 외치던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며 뛰어내렸다. 그리고 병원으로 후송된 지 30분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었다. 그는 삶을 비관하며 한강대교 밑으로 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남긴 3장의 유서는 그가 왜 분신이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유서에는 ‘탄핵반대’라는 글과 함께 국민은 대통령을 사랑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삶에 대한 비관보다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참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하는 경찰 측 시각은 분신이라는 심각성과는 달리 매우 의외였다. 자살을 선택한 다른 사유가 있을 것이란 추측에 더불어 정신질환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쉽게 얘기해 개인적 신상의 이유로 자살을 선택했거나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경찰의 시각은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은 오히려 경찰본연의 자세가 맞을 것이다. ‘탄핵반대’라는 어떻게 보면 매우 하찮은 이유로 하나뿐인 목숨을 버린 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그를 정신나간 미친 사람으로 본들 누가 말꼬리를 잡겠는가?

그렇지만 이 사건에 대해 조금만 깊이 생각해본다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 우리의 망각이 그를 분신이라는 극단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결된 지 한 달만에 우리 국민은 국회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을 완전히 잊게 되었다. 우리의 관심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며 전국을 누비는 박근혜 대표에게 있었으며 삼보일배로 눈물짓는 추미애 의원에게 있었다. 그리고 노인폄하발언으로 큰 절을 올리는 정동영 의장에게 있었다. 국민들은 언제부터인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적법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던 일이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탄핵을 주도했던 야당과 족벌신문사들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라고 계속 주장했으며 사람들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탄핵이 가결되던 날 길거리로 뛰쳐나오고 주말마다 모여 촛불을 치켜들며 4.15일을 심판의 날로 만들자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70%를 웃돌았던 국민들의 분노는 어느 새 탄핵을 추진했던 두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내어주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참담한 현실로 돌변하고 말았다. 4.15일은 더 이상 탄핵을 추진했던 쿠데타세력에 대한 심판의 날이 아니었다. 그날은 바로 말실수를 한 여당의 대표를 심판하는 날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된다.

시민들은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했던 야당에 대해 비판할 권리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선관위는 선거기간임을 내세워 특정정당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집회를 가로 막았다. 3.12 의회폭거를 망각하도록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왜 국민주권을 침해당한 시민들이 국회의원들을 낙선시킬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권한을 주었는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선거란 말인가?

헌법재판소의 눈치보기 행보는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야당 측이 요구한 증인채택을 상당수 받아들이며 재판을 계속 끌어가고 있다. 국회에서 이미 결정난 것이기 때문에 삼권분리의 원칙 하에서 법리적 문제점만 없다면 함부로 거부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고민인 것이다. 사법부가 입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는 것 또한 민주헌정질서에 위배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을 누르고 탄핵심판을 기각시키려면 반드시 절대적인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부는 절대 입법부의 결정사항에 대해 함부로 번복할 수 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형성되어지고 있는 국민적 공감대란 탄핵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찬성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국회의원들의 낮았던 지지율을 이제 완전히 회복해 당선을 곧 눈앞에 두고 있다. 대통령은 탄핵되고 대통령을 탄핵했던 국회의원들은 다시 금배지를 달게 된 것이다. 국민들은 탄핵을 더 이상 반대하고 있지 않았다.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해지고 있는 탄핵결정에 대한 방관자적 입장은 결국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입법부의 결정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탄핵심판에 대한 결정은 사안의 모호성과 부담감 때문에 법리적 해석보다는 국민적 여론과 공감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들은 까맣게 잊고 있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대통령을 사랑했고 민주주의를 사랑했던 노동자 장씨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하나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처럼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를 바라보며 느낀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것은 바로 우리였다.
 
* <주장과 논쟁>란은 네티즌들이 만들어가는 코너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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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14 [20: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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