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의 목소리가 높다. 일본인이 아닌 아베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애국지사도 있었다. 바로 이점 때문인지 ‘노 저팬’ 아닌 ‘노 아베’로 가야한다는 운동의 방향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표적인 인물로 박열 애국지사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일본인 애국지사이다.
2019년은 기미년(1919년) 3.1운동 100돌, 8.15 광복절 74돌이다.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종군 위안부나 강제징용·징병자 등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나 반성은 없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후,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이 본격화됐고, 이제 한국 정부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난 23일 일본 정부에게 통보한 상태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간교하고 잔악한 식민지지배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한,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린 한 시인의 헌시집이 눈길을 끈다.
한일문화어울림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윤옥 시인의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도서출판 얼레빗, 2019년 8월)는 겨레의 큰 스승인 백범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애국지사, 중경의 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약한 김수현 애국지사, 무명지 잘라 혈서 쓴 항일의 화신 남자현 지사, 김좌진 장군과 함께한 민주의 여걸 오항선 지사, 이육사 주검 거두며 맹세한 독립의 불꽃 이병희 지사, 이화동산에서 독립정신을 키운 유관순 열사의 스승 김란사 지사를 비롯한 100분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헌시로 조명했다.
100분 중에는 한국의 잔 다르크로 알려진 유관순 열사는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의 업적을 낮추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유관순 열사는 한국인이면 서너 살만 되어도 아는 독립운동가이기에 일부러 책에 넣었지 않았습니다. 올해로 3.1만세운동 100돌이 되는 해입니다. 기미년(1919년)으로부터 10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줄기차게 유관순 열사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 머리와 가슴에는 ‘유관순 열사’ 밖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서문 중에서
어찌 생각해보면 유관순 열사, 혼자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일본 동경 2.8독립 선언 때만해도 당시 유학생이었던 김마리아, 황애시덕, 차경신 등 여성 선각자들이 남성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기적으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나열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 책은 여성애국지사들의 활동연대와 관계없이 가나다순으로 기록해 헌시를 남겼다는 점이 특징이다.
▲ 가네코 후미코 지사와 박열 지사의 사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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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가장 눈길을 끈 여성독립운동가는 바로 영화 <박열>의 여자 주인공이면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하다 조선 땅에 뼈를 묻힌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1903년 1월 25일 출생해 1926년 7월 23일 사망)이다.
가네코 후미코 지사를 생각하면 현재 한국 국민들이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행위에 대해 ‘NO JAPAN’이 아닌 ‘NO ABE’로 가야할 명분이 생긴다. 물론 현재도 아베 정부 규탄에는 일본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고 있기도 하다.
가네코 후미코 지사는 남편 박열(1902년 출생 1974년 사망) 의사와 함께 일본 동경에서 제국주의 타도 및 일왕 암살기도로 잡혀, 스물 세 살의 나이로 일본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옥중 순국했다. 주검은 남편 박열 의사의 고향인 문경에 묻혔으며, 박열 의사는 20여 년을 일본 형무소에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저는 일본인이기는 하지만 일본인이 너무 증오스러워 화가 치밀곤 합니다. 그 때 그저 눈에 비쳤을 뿐인 사건들이 지금은 크나큰 반항의 뿌리가 되어 제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에서 사는 동안 보고 들은 것들 때문에 저는 일본제국주의를 향한 조선인들의 모든 반항운동에 동정심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동경으로 오자마자 많은 조선인 사회주의자 혹은 민족운동가와 벗이 됐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중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천대받던 식민지역의 남자인 박열을 사랑하고 존경한 일본인 여성이었다.
가네코가 조선 청년 박열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동지로서 동거한다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 둔다 등 3가지 서약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가네코 후미코 지사가 순국한 날인 지난 7월 23일에는 경북 문경문화원 1층 대강당에서 사단법인 박열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박열의사기념관이 주관한 가네코 후미코 여사 독립유공자 지정 기념식과 ‘가네코 후미코의 항일운동이 갖는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한·일공동 워크숍이 열리기도 했다.
조선 땅에 벼를 묻은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이윤옥 시인)
죽음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제 만행의 치욕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던
조선인 남편 도와
저항의 횃불을 높이 들던 임
그 횃불 타오르기 전
제국주의 비수 맞아
스물 셋 꽃다운 나래 접고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임의 무덤 위로
해마다 봄이면
푸른 잔디
곱게 피어난다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이를 주동한 사람이 서울에서 이화학당을 다니던 유관순 열사로 알려졌지만, 저자는 최정철 지사와 김구응 의사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정철 지사는 김구응 의사의 모친으로, 이날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경의 총에 함께 순국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인 1920년 6월 김병조 선생이 지은 <한국독립운동사략>에는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주동자를 ‘최정철 지사와 아들 김구응’으로 기록해 놨기 때문이다.
천안 아우내 학살 현장서 일본군에 저항한 ‘최정철’ (이윤옥 시인)
아들아
왜놈 칼에
붉은 피가 쏟으며
숨져간 아들아
에미는 저들이
네 심장에 꽂은
칼을 보고
피가 끓었다.
천인공노할
조선인 학살에
피 울음 토하며
네가 쏟은 피
에미가 흘린 피
결코 헛되질 않길
아우내 동포들
손잡고 함께 외쳤노라.
저자 이윤옥 시인은 특정인물을 대상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칫 업적위주, 감상위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배제하고 중심을 잡고 담담하게 한분 한분을 그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역량이 부족한 저자에게 힘에 부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이 작업을 중단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렇게라도 이분들을 알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서문 중에서
현재 정부로부터 여성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사람은 433명이다. 이 가운데 100분 만을 골라 헌시를 엮었다.
저자 이윤옥 시인은 지난 2월, 10년간에 걸쳐(평균 1년 1권씩),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책 <서간도에 들꽃피다> 10권을 마무리한 저자이다. 친일 문학인을 풍자한 시집 <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한·중·일어로 펴낸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이다>, 미국과 호주에서 여성독립운동가와 관련한 영문판 시집도 출판했다.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한 <오염된 국어사전>,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 <신일본 속의 일본문화답사기>, <일본 속의 고대 한국출신 고승들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을 펴냈다.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