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독립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이 높고 낮음과는 무관하게 펼쳐졌다. 하지만 그동안 독립운동사는 남성 위주, 학식 위주,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을 주축으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여성독립운동가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기록해 남긴 책이 나왔다.
20여 권의 책을 통해 여성독립운동사를 조명해온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최근 펴낸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가>(2021년 8월, 도서출판 얼레빗)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시대별, 신분별, 해외 독립운동 등으로 나눠 기술했다. 한국독립운동사의 도도한 물줄기 속에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일가를 건사하며 어떻게 질곡의 세월을 견뎌왔는지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삶을 추적했다고나 할까.
1910년대부터 해방 이전인 1940년대까지 시대별로 여성독립운동을 정리했다. 1920년대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으로 항일여성구국단체를 꼽았다. 이중 여성독립운동단체인 ‘송죽결사대’는 1919년 3.1만세운동 이전에 조직한 항일결사 가운데 비밀결사조직으로 여성의 힘으로 만든 최초의 단체이다.
초대회장은 김경희 지사로, 비밀유지를 위해 회원 명부도 만들지 않았고, 3.1운동 이후 평양을 중심으로 조직된 애국부인회 활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송죽회(송죽결사대) 초대회장 김경희 지사는 1919년 31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늙은 어머니와 동지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나는 독립을 못 보고 죽으니 후일 독립이 완성되는 날, 내 무덤에 독립의 뜻을 전해주시오. 나는 죽어서도 대한 독립의 만세를 부르리라.” - 본문 중에서
해녀, 노동운동가, 기생, 교사, 기자, 의사, 간호사, 의병 등 여타 신분을 떠나 항일운동을 했다. 수원 기생 33인을 이끈 김향화 지사, 해주기생 문재민 지사, 한글 독립선언서를 써 시위에 나선 옥운경 지사 등은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전복을 따는 데 쓰는 도구인 빗장으로 일제 강점기 제주도지사를 혼쭐낸 해녀 투쟁의 대모 부춘화 지나는 일제의 해녀 착취가 극에 달하자, 이를 저지키 위해 해녀들을 단결시켜 일제와 투쟁을 결행했다. 물질을 생업으로 했던 해녀들에게 일본 관리들의 가혹한 대우와 제주도해녀조합 어용화를 시정하고자 시위를 결의한 김옥련 지사의 항일운동도 눈길을 끈다.
한국 최초의 여기자인 최은희(1904~1984) 지사는 취재차 최초로 서울 상공을 난 여성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있기 하루 전인 2월 28일 저녁 박희도 선생의 지시로 학생들을 인솔해 만세 당일, 파고다 공원으로 이끌었다.
홍범도 장군의 부인이며 함께 영원한 의병으로 독립운동을 한 단양이씨는 남편의 의병 활동 때문에 일경에 체포돼 비인간적인 악행을 당한 분이다.
“1908년 3월 함남 북청에서 남편의 의병 활동 때문에 체포돼 비인간적인 악행을 당했지만, 협박에 굴하지 않고 군사기밀을 지키며 자신의 이로 혀를 끊고 벙어리가 돼 그 후유증으로 순국을 했다. 홍범도·단양이씨 부부에게는 홍양순과 홍용환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어머니 단양이씨가 순국(1908년 3월)한 후, 3달 뒤인 6월 16일 의병 활동을 하다 순국의 길을 걸었다.” - 본문 중에서
국가보훈처는 지난 3월 1일 3.1만세운동 102주년을 맞아 홍범도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와 아들 홍양순(1892~1908) 선생을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홍범도 장군이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은 지 59년 만이고, 단양이씨 사후 113년 만의 일이다.
이 책은 중국 등 해외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들도 소개했다.
명성황후 시해 등 일제 만행으로 혼인 6년 만에 의병을 일으킨 남편이 전사해 임신 중에 독립운동에 나선 남자현 지사. 그는 중국 요녕성 통화현으로 망명해 서로군정서에서 독립을 위해 싸웠다.
“남자현 지사는 1932년 9월에는 국제연맹 조사단 랏톤이 하얼빈에 조사차 왔을 때,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서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란 혈서를 쓰고, 자른 손가락을 싸서 조사단에게 보내어 조선독립 의지를 국제연맹에 호소했다.” -본문 중에서
중국 운남항공학교 1기생으로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인 권기옥 지사는 3.1운동에 가담했고 이후 임시정부에 자금을 송금하는 일을 하다 일경에 잡혀 옥고를 치른 뒤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이자, 한말 의병장이던 왕산 허위의 집안 손녀로 독립운동을 한 허은 지사.
러시아에서 활약한 김알렉산드라는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능통해 러시아 고용 조선인 등의 통역관으로 활동했다. 러시아 감옥에 수감된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의 석방 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이동휘 선생과 한인사회당을 창립해 ‘반일 반제’ 운동에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가 내전에 휘말리고 볼세비키 혁명군이 백위파의 기습을 당하는 과정에서 잡혀 아무르 강변에서 33세 나이로 처형당했다.
하와이에서 여성독립을 위해 힘쓴 황마리아 지사와 전수산 지사, 박신애 지사의 얘기도 솔깃하다. 미주지역에 활동한 차경신 지사, 안창호 선생 부인 이혜련 지사,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여동생 차보석 지사 등도 항일운동에 힘을 쏟았다.
특히 이 책은 1919년 2월로 표기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전문이 게재돼 눈길을 끈다. 35행에 1290자로 한글로 포기돼 있다. 선언서 말문에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대표자 8명의 이름을 올렸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작성한 지 64년 만인 1983년이다. 미국에 거주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수산 선생의 집에서 발견돼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선언서는 중국 길림에서 작성됐고, 조선총독부의 내부 문건과 일본 외무성 자료로 남아있다.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는 문학박사인 이윤옥 시인이 펴냈다. 그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이 피다> 10권과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도 20여 권을 출판했다. 현재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