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역사와 창작의 거리, 화장실 마초주의 12.12의 영화화에 대해
창작물 본연의 지위에 대한 자의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해
 
정문순   기사입력  2024/11/10 [19:01]

12.12의 영화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끊임없이 소재로 삼는 미국 영화를 보며 부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다양한 이야기와 형식으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홀로코스트 서사를 길어 올리는 그들의 저력은 놀랍기까지 하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자면 한국 현대사도 홀로코스트 못지않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다른 어떤 나라 역사보다 덜할 것도 없이 복잡다단한 한국 현대사도 창작물의 좋은 보고가 되지만 우리의 대중문화 사정은 할리우드와는 다른 듯하다. 그 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 나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반가우며, 특히 선례가 희박하여 그 자신이 전례가 되어야 하는 도전은 더없이 귀하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사건으로 불리는 10.26 사태는 그동안 대중문화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즐겨 다루어졌고 가장 최근엔 영화 행복의 나라에 담겼다. 반면 12.12 쿠데타는 5공화국’(2005, MBC 방영) 등 몇몇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조명된 적은 있지만, 12.12를 단독으로나 주요하게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없었다. 대중문화에서 12.12를 선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군사반란의 장본인들 중 상당수는 생존해 있는 인물들이다. 반란을 일으킨 신군부가 만든 체제와 질서는 지금도 이 나라 보수세력의 단단한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유라면 10.265.18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계엄령 치하에서 전방을 지키는 2개 연대를 빼돌리고,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유일무이한 사태이자 쿠데타에 저항한 군인들을 살상한 군사반란이었음에도 12.12는 그 충격적인 10.26과 이듬해 5.18 사이에 발생한 일이어서 그 중요성이 덜하게 체감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둘러댄 신군부의 거짓말이 오랫동안 작용한 탓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때 12.12는 대대적으로 주목을 받던 때가 있었다. 12.12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군사 정변에 해당한다. 지금 시대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쿠데타에서 태어난 정권의 집권이 끝난 것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12.12는 그리 오래 된 역사도 아니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살아 있는 가까운 과거이다. 군대 내 특정 집단의 권력욕, 오랜 기간의 예열 작업, 불법적 권력 찬탈, 반대 세력에 대한 악랄한 탄압, 사후 명분 만들기, 역사 왜곡 등 쿠데타의 일반 공식에 충실히 들어맞는 작업이 모두 수행되었으니, 교과서적인 정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군부의 정권 탈취 시작 지점이 되었고, 이듬해 그 비극적인 5.18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12.12의 의미는 참으로 막중하다. “12.125.16쿠데타보다 치밀했다.”(김재홍)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12.12는 이미 김영삼 정부 당시 대한민국 사법기관에 의해 군사반란으로 인정되었고 핵심 주동자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최소한 역사적, 사법적 단죄는 명확히 이루어진 셈이다.

 

 

  © 김성수 필름



  

다시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12.12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2.12에 대한 단죄가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진행되면서 최소한 사법적 판단과 역사적 평가에서만큼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생각되던 당시만 해도, 12.12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사람들 뇌리에서 퇴행하는 오늘날을 짐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12.12가 처음 사법적 단죄의 도마 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성계를 지금 처벌할 수 있겠느냐.” 등 황당한 명언 시리즈를 생산하며 수사에 미적거리던 검찰의 초기 입장, 고향 합천으로 도망갔다가 이른 아침에 허겁지겁 골목 성명을 발표한 후 검찰 호송차에 태워져 서울에 압송되고, 푸른 수의 차림으로 쿠데타 친구노태우와 법정에 선 모습을 통해 하늘 아래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반란군 수뇌 전두환,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김영삼 정부의 드문 치적으로 꼽히는 하나회숙정 작업 등 12.12 단죄와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들이 극적인 드라마인 양 머릿속을 휙휙 지나가는데도, 신군부의 정권 탈취로 요약할 수 있는 이 희대의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벌써 잊혔거나 아직도 생소한 일이 돼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데서 느끼는 괴리감은, 제 손으로 반란군 주모자들을 잡아 넣고도 정치적 효력이 다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로 풀어준 김영삼 정부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12.12 주모자들 중 아무도 죄과에 합당한 처벌을 치르지 않았으며 이후 보수세력이 중심이 되어 역사 거꾸로 돌리기 작업을 대대적으로 시도하면서 있던 것이 없던 것으로 둔갑되거나 어둠이 밝음으로 바꿔치기를 당하는 등 음습한 그림자가 지금까지 드리우면서 역사적 사건이 망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무너져버렸다. 이 점에서 지난해 12.12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 서울의 봄이 나온 것은 잊힌 역사의 진실을 발굴하여 후세가 잊지 않도록 하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영웅과 악당의 대결 서사, ‘서울의 봄

 

그러나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사실은 역사는 역사이며, 창작물은 어디까지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실화를 창작의 실마리로 삼더라도 실제 사건과 창작물은 서로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괴리가 뚜렷한 것이 지당하다. ‘서울의 봄또한 12.12를 모티브로 삼았지만 12.12 그대로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건으로서 12.12는 매우 풍부한 창작물의 요소를 안고 있다. 소설, 드라마, 연극, 영화 등 서사를 담고 있는 장르의 기본 동력이 갈등에 있다고 할 때, 갈등이 전개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성격이 서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나 세력 간의 대결에 있다. 실제로도 12.12는 반란 세력과 진압 세력의 극명한 대결에 기반하여 펼쳐졌다.

  

서울의 봄은 반란군과 진압군을 각각 대표하는 인물의 대립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대결 양상을 보여주며 그 기조는 철저한 선악 대비에 있다. 자신과 함께 쿠데타에 저항한 소수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거나 체포당하거나 무장해제되면서 혼자 남아 반란군 진압을 이끌거나 반란군 탱크를 몸으로 가로막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12.12 당시 같은 직책의 장태완을 모델로 삼음)은 모두가 스러진 전장에서 맨주먹으로 적과 맞서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흡사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 그에 가까울 것이다.

  

이태신은 타고나기를 욕심 없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이유는 없다. 천성이 그럴 뿐이다. 이태신의 성품은 군사 독재가 18년을 철권 통치한 시대의 군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점도 의아스럽지만, 반란군과 맞서는 외로운 처지에 있을 때 진압을 망설이거나 외면하는 동료 군인들에게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다며 설득하고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진력하는 모습은 기이할 정도이다. 이태신의 별난성품에서 굳이 사회적 맥락과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세상이 서울의 봄이다 뭐다 해서 좋아지고 있는데죄 없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합수부에 끌고 가서는 안된다고 전두광에게 충고하는 발언을 통해 독재 정권이 종말을 고한 세상의 변화에 대해 그의 내면이 적극 감응한 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도이다.

  

그와 맞은 쪽에 있는 반란군 대장인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 전두광(당시 같은 직책의 전두환이 모델)은 모든 면에서 이태신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서 겹치는 인물이다. 오로지 권력욕에만 불타는 악인의 전형이며, 상대를 향한 회유, 기만, 협박에 능란하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면모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서 두 사람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각각 표상하고 있다. 이태신을 거꾸로 하면 전두광이 되고 전두광을 뒤집으면 이태신이 된다. 가령 이태신에 의해 전두광은 쿠데타 이전에는 자신과 같은 편인 대한민국 군인이자 동료로 인정받았지만, 쿠데타 감행 후에는 협상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라는 말로써 비인간의 지위로 격하된다. 전두광을 향한 이런 발언은 기실 이태신 자신이 전두광의 대척점에 있는 참된 군인으로서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두광이 이끄는 하나회는 범죄 단체에 가깝고 그들 일당은 이 영화가 깡패 집단의 속성을 공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 행태가 폭력배 집단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여느 깡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장악하려는 목표가 국가 권력라는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깡패 사회에도 의리가 있다고 하지만, 전두광의 쿠데타에 가담한 자들은 전두광이 옳게 판단하는 대로 자신에게 떨어질 떡고물에만 관심 있을 뿐 도무지 정변을 일으킬 인물들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옹졸하고 소심하다. 오합지졸 같은 그들이 무시무시한 국가 반란에 겁 없이 뛰어든 동력은 두목전두광의 강한 카리스마가 크게 작용했다. 한 명의 두목이 좌지우지하는 것, 이 역시 깡패 집단의 법칙이다.

  

전두광의 경상도 말투는 거칠며, 상관인 계엄사령관에게든 동료나 부하에게든 그의 발화 내용은 빈약하고 조악하다. 쿠데타에 성공한 뒤 화장실에서 참았던 소변을 보며 탐욕으로 똘똘 뭉친 훤한 속내를 기괴한 웃음소리로 분출하는 장면은 소름 끼칠 정도다. 거기에는 한 올의 가식이나 위선도 없이 자신이 악마라는 사실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반란 주동자의 벌거벗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야수의 통치가 가능한 곳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화장실마초주의와, 젠더 의식이 주저앉은 영화의 자기모순

 

전두광의 화장실 장면은 쿠데타 거사과정에서 두 차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성()을 자신의 능력과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마초성을 부각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쿠데타 직후의 화장실 장면은 영화에서 반복해 온 전두광의 마초주의가 극에 달한 지점으로서 전두광의 악마성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이나 배설이라는 행위 등 성적 우월 능력에 기초한 마초주의와 결합해 있다는 측면에서 그의 악랄함에 대해 남성우월주의 같은 이념적 기반에서 파악할 여지를 주고 있다. 이는 영화 전편에서 반란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실내에서 아무렇게나 일제히 담배를 피워대는 장면과 더불어, 18년 군사정권의 통치가 당대 온 사회에 만연시킨 마초주의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다.

  

이처럼 전두광이 가진 악마성의 뿌리를 개인의 권력욕을 넘어 가부장적 마초주의에서 찾을 경우, 이 영화는 비현실적일 만큼 정의롭기만 한 이태신과 달리, 전두광에 관한 한 그의 악랄한 성정에 대해 당사자의 성품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탄탄한 사회적 맥락을 뒷받침해줄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전두광의 마초성은 그가 하나회를 통해 절대적 충성을 바쳤고 전폭적인 수혜를 입었던 박정희 체제가 군사적 마초주의에 기초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이 점에 집중할 경우 전두광 일당의 쿠데타는 악마적인 탐욕과 권력욕을 넘어 수긍할 만한 범행 동기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전두광의 쿠데타를 권력에 눈먼 정치 군인의 처절한 악마성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의 쿠데타는 그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도저한 탐욕과 권력욕을 넘어서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로 전 사회를 통치한 구질서와 함께 몰락할 위기에 처했던 기존 지배 집단 수혜자들의 심정을 반영한 것으로서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영화에서는 군 최고 수뇌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10.26 이후 정치적 동향을 제외하고는 당대 사회에 대한 스케치가 거의 드러나지 않음에도, 18년의 군사 독재 통치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어떠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신군부의 쿠데타가 배태되었는지, 나아가 신군부가 왜 군사정변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암시해 준다는 점은 이 영화의 대단한 역량을 알려준다. 신군부 세력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두려움은 자신들이 철저히 수혜를 입었던 극단적 남성우월주의에 기반한 마초주의 체제가 벼랑 끝에 내몰렸다는 사실이었다.

  

전두광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마초주의는 담배 냄새처럼 그들의 몸에 밴 것이어서 영화 곳곳에서 수시로 출몰한다. 전두광은 아내와 함께 쓰는 공간인 집 안으로 쿠데타 모의를 위해 하나회 일당을 불러들임으로써 가정을 음습한 모략의 장소로 변질시키거나 자신의 사회적 활동 공간의 연장으로 취급하여 아내가 손님 접대라는 부가적인 돌봄노동을 하도록 만든다. 영화에서 전두광의 집은 시간 상으로 훤한 대낮임에도 전두광과 노태건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가정을 음모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태신과 아내가 저녁밥을 먹거나, 1212일 밤 귀가를 단념한 이태신으로부터 아내가 전화를 받는 집은 평온하고 소박한 공간이다. 이태신은 쿠데타 진압을 말리려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며 대드는수행 부관에게도 권위를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자신을 찾아온 아내를 손님처럼 예우하며 집무실 동행을 권유하거나 한밤중 쿠데타 진압을 위한 병력 출동을 앞두고 아내에게 전화하는 모습에서는 일터를 남성만의 전유 공간으로 인식하는 고정관념이 약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의 젠더 의식은 여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마치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취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복병을 만나고 만다. 이 영화에 여자들이 없다고 일갈한 문화평론가 손희정의 발언이 개봉 당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굳이 따지자면 여성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군복 걸친 남성들이 화면을 독차지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그것도 전신이 나오는 일은 드물고 몸의 부분만 나오거나 먼 거리에서 비치거나 심지어 목소리만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태신의 아내를 빼고는 대부분 개별적 존재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태신 아내를 제외하고는 얼굴이 한 번이라도 클로즈업되는 인물은 전두광 아내가 거의 유일한데, 이는 전두광 아내가 영화에서 비중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모델인 실존 인물의 독특한 외모를 강조하거나 야유하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다. 심지어 연희동 비밀 요정의 여성들은 귀여운 어린이들로까지 지칭되면서 제대로된 인격성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군사 정변을 다루는 영화에 여성이 제대로나올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면 옳지 않다. 10.26 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나레이터는 여성이었다.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것도 비극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히 전달하는 나레이터의 목소리였다.

  

이태신의 다소곳한 아내와, ‘비밀 요정의 여성들 중 당연히 영화가 바람직하게 보는 여성은 집에 며칠째 들어올 수 없는 남편에게 속옷, 양말, 목도리를 갖다 주러 남편의 일터에 잠깐 들렀다 부리나케 사라지는 이태신 아내다. 자신이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반란군 진압을 잘할 수 있도록 목에 걸친 목도리를 통해 남편의 거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돕는 것, 영화가 보기에 여성의 역할은 딱 그만큼이면 된다. 반면 전두광 일당의 상상을 넘어선 음모에 동원되는 비밀 요정 여성들이 화면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이태신의 시점에서 멀찍이 보이거나 목소리로 주로 등장하는 것은 신군부 세력이 여성을 그런 식으로밖에 소비하지 못한 것을 풍자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는 남편에게 응원이 되는 일과, 영문도 모른 채 반란 세력의 쿠데타를 조력하게 되는 일이 각각 가정주부와 유흥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배당되는 것은, 사회적 통념에 따라 여성을 차등화하는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비밀요정 여성들의 역할만큼은 12.12 당일 실제 일어난 사건이 반영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무런 고민이나 굴절이 없었다는 점은 불만스럽다. 특히 아무리 봐도 이상적인 현모양처에 가까운 이태신의 아내는 당시 사회의 성인지 수준이 지금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났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칠 만큼 퇴행적이지 않은가.

  

역사는 역사, 영화는 영화

 

<서울의 봄>21세기 젠더 의식을 수용한 영화인가, 아닌가. <서울의 봄>은 남자들만 판을 치는 남성 영웅서사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만 보기에는 전두광의 화장실 장면이 눈부실 만큼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래놓고도 영화가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젠더 의식이 사실은 미흡하다고 고백하는 듯한 자기모순에서는 어리둥절함을 피하기 힘들다. 영화 안에서 이러한 자충우돌이나 이율배반이 일어날 수 있는 까닭으로 우선 떠오르는 것은, 영화가 개인의 의지나 뚝심으로만 밀어붙이기 힘든 작업물이자 집단의 욕망이 개입된 공동 창작물 또는 자본이 큰손 구실을 하는 산업이라는 성격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 더, 이 영화에서 자기모순이 가능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얽힌 역사를 다룬 것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적은 수의 인물이 아닌 많은 이들의 삶을 다루는 역사는 온갖 삶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전장 상황에 가깝다. 전두광과 이태신 아내, 유흥업소 여성들 등 접점이 없을 인물들을 한 작품에서 모두 다루는 상황에서 영화가 젠더 의식이 느슨해지는 등 자기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사적 소재가 가진 무게를 감당하는 데 한계를 노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영화가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창작이니만큼 역사와 창작의 관계를 둘러싼 영화의 자의식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두광 스스로도 쿠데타에 가담시킨 동료들을 믿지 못하기에 동갑인 9사단장 노태건(당시 같은 직책의 노태우가 모델)에게 서로 유일한 친구사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쿠데타의 결정적 국면인 전방 부대 빼돌리기를 감행하도록 교사하는 장면에서, 역사를 바꾼 정변이 역사에 핵심적으로 참여한 개인들의 지극한 사적 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고작 깡패 집단의 의리에 뒷받침되었음을(뒷받침되었다고 영화가 인식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허탈감을 면하기 어려웠다. 비록 이 대목이 아무리 실제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창작은 역사를 옮기는 것과는 다른 영역이다. 영화가 실제 사실에 기대려는 대신 창작물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견지하거나 상상력을 넓혔더라면 역사를 가볍게 다루는 태도가 표출되는 역설적 상황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군사정변의 동기가 참으로 하찮고 저열한 일부 군인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12.12의 근원적 동기는 영화가 슬쩍 암시하듯 청산되지 못한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었으며, 무엇보다 수많은 이들의 힘이 나사가 되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역사나 사회 변화가 몇몇 소수의 손에 좌지우지되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놓쳐서는 안된다.

  

한편 진압군에게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먼저 발포하지 말라고 한 전두광의 지시 때문에 병력이 압도적임에도 이태신의 지휘에 따라 불을 뿜게 될 수경사의 포병단 야포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반란군 주동자들이나, 위기를 느낀 전두광이 소굴30경비단에서 뛰쳐나와 이태신 앞에서 몽니를 부리는 장면의 경우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장태완 사령관이 반란군 포격을 추진한 건 실제 사실이었다는 점에서 이런 발상은 역사적 사실에 매우 가까운 창작이다. 또 쿠데타가 일어나자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도망 다니느라 바쁜 국방부 장관의 언동에서도 희극적인 과장이 다분하여 역사를 가볍게 처리했다는 혐의도 들지만, 이는 국방부 장관의 실제 행적에 기반한 것이며 당시 군 수뇌부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설정들이 실제 역사와 가깝다고 해서 바람직하게 볼 일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기대거나 거기에서 직접 유추하는 데 비중이 더 큰 것은 영화로서 창작적 상상력의 공간을 부족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에서 거리가 꽤 가까웠던 역사와 픽션과의 관계는 10.26 거사의 여파를 다룬 <행복의 나라>에서 웬만큼 틈을 두게 되었다. <행복의 나라>에서는 픽션의 비중이 커졌으며, 자신의 직업 의식에 충실한 생활인이나 소시민이 신념을 가진 비범한 개인과 갈등을 빚는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창작물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했다. 12.12의 역사적 사실에만 얽매였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가 전혀 딴판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는 상상력을 밀어붙인 점도 과감했다. 이러한 발랄함이 가능한 것은 그동안 창작물에서 10.26 사건이 12.12 반란과는 비할 수 없이 많이 다루어지면서 창작적 상상력의 여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모델로 삼은 주인공은 익히 알려진 10.26의 주역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아니라 그를 수행한 박흥주 대령이라는 역사의 주변부적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무게를 덜고 창작을 가미할 있는 여유를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봄이 내비치는 일관적 호흡의 아쉬움, 역사와 창작의 경직적 관계 등은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창작물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사를 마음껏 다룰 수 있거나 상업성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 환경이 도래하는 것이 시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다양한 인간 구상이 얽혀드는 총체성의 산물로서 역사를 대하는 인식, 역사의 표면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공간으로서 창작물 본연의 지위에 대한 자의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역사의 준엄한 속성을 외면하지 않기와, 실제 역사의 구속에서 놓여나 창작의 본질에 충실하기.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과제에 천착하는 길은 어렵고 고단할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4/11/10 [19:01]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영화 관련기사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