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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혈세로 친일 문인을 기념해야 하나
[정문순 칼럼] 창원시의 이원수 기념 사업은 친일 행위에 대한 면죄부다
 
정문순   기사입력  2011/03/04 [17:07]
친일 연구가 과거에 비해 활발해지면서 어두운 행적이 뒤늦게 드러나는 인물들도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일제에 핍박당한 경력이나 현실비판적이고 비타협적인 작품 세계로 볼 때 친일 족적을 남겼으리라고 믿기 힘든 작가들도 있다. 리얼리즘 문학의 진수를 보여준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의 작가인 요산 김정한이나, 동요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는 맑고 향기로운 삶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준 인물들이다. 

이원수의 탄생 100년을 맞아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창원시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기념사업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창원시장은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으로 이름을 올려놓았으며, 창원시가 이 사업에 지원하는 금액은 2억 9천만여원에 달한다. 세계아동문학축전이라는 거창한 사업까지 잡혀 있다. 

사후에도 오랫동안 이원수는 일제와 군사독재에 영합하지 않은 지조 있는 문인으로 평가받았다. 생전에 문단에서 영향력 있는 직함을 맡는 등 몸은 줄곧 주류 문단에 속해 있었는데도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문학 세계를 일구었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작가였다. 2002년 비로소 친일 행적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자체는 물론이고 진보와 보수 시민단체에서 따로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도 창원시가 이원수 기념 사업을 계속 지원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창원시가 이원수에게 쏟는 애정은 극진하다. 문학관은 물론이고 <고향의 봄> 이름을 딴 공립도서관도 있고 이원수 이름을 딴 도로도 있다. <고향의 봄>에 나오는 “나의 살던 고향”이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를 놓고 그가 출생한 양산과 자란 창원 사이에서 논쟁이 붙기도 했다.

이원수는 몇 마디로 평가하기 힘든 작가이며 흑백의 양면성을 한 몸에 구현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에게서는 일평생 권력의 양지만 좇았던 이은상 부류에게서 나타나는 정도의 ‘일관성’이 없다. 일제 치하에서 현실비판적인 독서회를 이끌다 피검되어 징역을 살기도 했지만 일제 말기에는 현실의 고통을 어루만진 그 손으로 친일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두부 장수’, ‘겨울나무’ 등 약자의 고통을 보듬어 안는 작품을 썼지만 그런 것들이 입에 풀칠해주는 양식이 돼주지는 않았다. 젊은 날 그의 밥줄은 가난한 식민지 농민을 고리로 수탈하는 금융조합이었다.  

 

이원수는 한국의 근대아동문학을 망쳤다는 평가까지 듣는 감상주의나 동심 천사주의를 털었다는 점에서도 방정환이나 강소천 등이 장악한 문단 주류와는 구별되었다. 일생 동안 그의 관심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투철한 현실인식이었다. ‘기차’나 ‘도시’가 상징하는 식민지 근대화의 상처에서 시작하여 6.25 전쟁 시기 민간인의 참상을 거쳐 60년대 이후 4.19와, 전태일을 우의적으로 다룬 동화까지,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가 민중에게 가한 고통을 그만큼 작품 곳곳에 오롯이 받아들인 아동문학 작가는 드물다. 특히 근대화가 빚은 고유한 삶의 터전 상실을 노래한 <고향의 봄>은 시대성이 살아있는 절창이다. 

친일문학이라고 하면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수치스럽고 논할 가치도 없어 보이지만, 이원수는 친일문학마저 유별났던 것 같다. 어떤 연구자는 일제 군국주의의 지원병제를 옹호했던 이원수의 친일시가 문학적으로 빼어나서 곤혹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일시를 빼어나게 쓸 정도라면 문학성만큼은 인정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작가로서 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한 것인가. 이원수는 자신의 문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이들을 사후에 남겨두었다. 굴곡진 처신과 문학적 훼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아동문학의 개척자는 후세에도 두고두고 연구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이원수에 대한 합당하고 족한 대접은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창원시가 그의 출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마산, 진해와의 통합을 기회로 근사한 치적을 만들어보고 싶은 과욕이 낳은 산물이다. 창원시의 고집이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지는 이은상과 조두남의 전철에서 예상할 수 있다. 옛 마산시는 이은상과 조두남 기념관을 지어 관광용으로 내세우려다 두 사람의 행적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친일 경력을 요란하게 떠들어준 꼴이 되었고, 결국 기념관 건립은 고사하고 고인들의 명예만 땅에 떨어졌을 뿐이다. 창원시가 이원수를 진정 존경한다면 가만히 잠자코 있는 것이 고인의 남은 명예를 지켜주는 일임을 알 것이다. 

더욱이 이원수는 생전에 자신의 과거 행적을 밝히거나 반성한 적도 없었다. 이원수는 그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했지만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였는지 말년에 친일 행적을 구차하게 변명하는 듯한 글도 남겼다. 그런 위인을 문화브랜드로 내세울 정도로 창원시는 몸이 달아 있다. 이원수의 밝은 변모만 기억하고 싶은 이들이 자신의 돈으로 기리는 것이야 누가 상관하겠는가만, 주민의 혈세가 동원되는 한 이원수는 공적으로 기려야 할 인물로 격상되어 자신이 무책임하게 휘두른 붓질은 대단찮은 일로 묻혀 넘어갈 수밖에 없다. 

문학관과 도서관 등 이미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이원수 기념사업은, 이원수가 친일부역행위를 면죄받고 그의 삶과 문학이 공적인 권위를 얻은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가림막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금이 투입되는 기념사업은 관이 나서서 부일 인사의 행적을 덮으려는 시도이자, 보수세력이 관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인사를 띄움으로써 부당한 권세를 다지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흐름을 내버려두다간 사회정의도 상식도 실종될 수밖에 없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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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3/04 [17: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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