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한 시인이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뇌를 담은 시집을 펴냈다.
지규섭 시인의 시집 <봄에 오는 눈>(한국신춘문예, 2020년 12월)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을 시어로 표현했고, 쉽게 읽히지만 무게가 있다. 여기에 민경옥 화가의 삽화가 곁들어져 시를 한층 빛나게 한다.
지 시인은 국문학과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역임했고. 평통자문위원, 잡지편집장, 행정학회, 교수, 목사 등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특이한 이력만큼의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그는 2018년 한국신춘문예 신인작품상을 타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탐미했다.
“푸른 하늘을 보고 녹색으로 가라앉은 산들, 촉촉한 대지에 풀잎이 마음을 적셔주고, 잘 자란 나무들이 산책길을 걸어 갈 때 혼자 걷는 길에 외로울 때도 있다. 바람이 불거나 못 견디게 노을이 아름답거나 사방이 어두워지는데도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지 않을 때 문득 쓸쓸해진다. 모든 사물이 어둠에 잠기면 혼자 걷는 발짝 소리가 또렷해지고 멍멍이가 이상한 듯 멈춰 서서 바라볼 때 바람소리가 나무사이를 빠져나오며 뭐라고 말을 걸어줄 때 연두색 풀잎사이,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이 켜지고 먼 데서 흐르는 강물소리가 마음속에 스밀 때, 그럴 때 나는 그들이 전해주는 말을 옮겨 적는 것이 좋다.” -서문 중에서
지 시인은 사물은 늘 새롭다고 인식해 왔다. 움직이고 변화하면서 자기들의 세계를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또한 사물은 계절에 따라 싱그럽다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풀잎에 머문 새벽이슬은 영롱하지만 한낮이면 그 모든 것을 양보하고 잎 새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모습들을 엮어 쓴 시가 시집<봄에 오는 눈>이다.
대화
만남
그리고
누군가 바랄볼 때
제멋대로
출렁이는 생각들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도
말 할 수가 없다.
왜?
그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봄, 눈, 바람, 꽃, 바다, 낙엽 등 자연과 인생, 만남, 연주, 기억, 회상, 인연, 대화 등 삶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관찰력이 느껴진다. 찰나의 순간을 제 때 포착한 시상을 시 속에 녹여내렸다고나할까.
눈 내리는 날의 풍경
한 잎 잎새
가느다란 가지에 매달려
추위에 떨고
쌓인 눈 뒤집어 쓴 나무는
소복이 단장을 합니다.
하얗게 지워지는 꿈
이른 아침에 헤매다
눈을 뜨면
감추었던
그리움이 깨어납니다.
희미한 옛사랑과
하이얀 이별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눈꽃처럼 피어나지만
차가운 세월은 벌써 저만치
달아났습니다.
지규섭 시인은 강원도 영월 출신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근무했고, 계간 <책읽는 나라> 편집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한국행정학회 대외협력위원장, 미국 콩코디아국제대학 교수,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행정학 박사이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