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캘리그라피가 덧붙여진 시집이 출판돼 눈길을 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시를 읽어주는 작가로 잘 알려진 허필연 시인이 지난 2017년 펴낸 시집 <밀어(蜜語)>에 이어 두 번째 시집 <너에게 줄 귤 다섯 개 하루 종일 포장했다>(2020년 12월, 도서출판 도반)를 출판했다.
시집에 실린 하나하나의 시에, 이희정 작가의 캘리그라피를 가미에 하모니를 연출했다고나 할까.
허 시인은 첫 시집 <밀어>를 세상에 선보이며 밀어처럼 예쁜 말만 속삭이며 살겠다는 각오를 했다. 시집이 다 팔리면서 각오도 점점 멀어졌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밀어(蜜語)란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들이 사랑의 속삭임 같은 말이거나, 특정한 사람에게 비밀스럽게 건네는 말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꿈처럼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시인이 시집에서 밝힌 ‘밀어’는 자연의 속삭임을 의미한다. 사람과 연인뿐만 아니라 풀꽃 등 자연도 밀어를 나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집 <너에게 줄 귤 다섯 개 하루 종일 포장했다>는 첫 번째 시집<밀어>에 게재한 시에, 새로운 몇 편의 시를 더 습작해 추가했다.
특히 갓 여문 탱탱한 귤처럼 싱그러운 즙을 뚝뚝 떨구던 시집(밀어)의 언어들을 되살리고 싶어 시에 캘리그라피를 가미했다.
창고에 쌓인 묵은 귤처럼 시든 언어들이 어느 날 우연히 말똥 캘리(이희정 작가)와 시선이 맞닿아 첫 사랑을 만난 것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변화로 부활했다고.
그럼 시집의 핵심키워드는 뭘까. 실린 50여 편의 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풀꽃, 개망초, 목련, 산수국, 채송화, 첫눈, 남산, 만추, 별 등의 시어만 보더라도 뭔가를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바로 자연의 순수한 가치이다.
남산
넌 남산이야
내 가슴 속에서
계절을 타
별
닿을 수 없어 그대는 희망입니다
또한 사랑, 순자, 친구, 당신, 방화범, 먼발치, 너 등의 시어를 보면 '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랑3'란 시를 시집 제목으로 선택했다.
먼발치
지상에서 그대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
너
살아 있으면서
왜 내게로 와서 무덤이 될까?
가슴에 슬픔 한 무덤
머릿속에 그리움 한 무덤
▲ 이희정 작가의 '천불사로 갑니다' 중에서 © 김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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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출판과 관련해 허필연 시인은 짧은 소감을 피력했다.
“첫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와 최근 습작한 시들을 모아 따뜻한 시어로 표현했다, 여기에 캘리그라피를 더했다. 이를 통해 예쁜 시집이 나왔는데, 말똥 캘리 이희정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지구촌이 온통 코로나19로 고통 받고 움츠러든 상태에 있는데, 예쁜 캘리 옷을 걸친 사랑하는 시들이 모든 국민들의 언 가슴을 녹여줬으면 좋겠다.”
이희정 작가도 시에 캘리그라피를 그린 이유를 설명했다.
"마음에 든 싯구를 찾아 그것을 캘리그라피로 작업을 해 왔다. 늘 시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였다. 허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시가 풍년이었다. 시인으로부터 캘리로 작업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금년 초부터 틈틈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작품을 보고 허 시인이 책을 내자고 제안, 의기투합해 시집이 나오게 됐다."
시집 <너에게 줄 귤 다섯 개 하루 종일 포장했다>는 춘천문화재단 후원으로 제작됐다.
허필연 시인은 소설가 이외수 작가의 문하생이다. 현재 투명 중에 있는 이 작가가 과거 소셜미디어를 통해 '책 읽어 주는 남자'를 진행하다 중단해, 곧바로 뒤를 이어 '시 읽어주는 여자'를 시작했다.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스토리샘 2020’을 운영하는 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캘리그라피를 그린 이희정(말똥 캘리) 작가는 강원도청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 강원도청공무원캘리그라피동호회 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제5회 하랑방 캘리그라피 그룹전, 2017년 하랑방 캘리그라피 그룹전과 같은 해 한글일일달력전도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