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은 예우의 차원에서 ‘황작가’라 불리기도 한다. 저 1980년대에 깃발을 날리던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이순의 나이를 넘어 불미스러운 사고를 치는 작가가 안타까울 것이다. 그것도 표절 혐의라면, 더욱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작가에게 이보다 더한 불명예는 없는 셈이다.
표절 혐의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하거나 인정하는 작가는 거의 본 적이 없지만 ‘큰 작가’ 황석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근작 ‘강남몽’의 일부 내용과 표현이 자사 기자의 저작을 도용했다는 월간 신동아와 동아일보의 문제 제기에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황석영은,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에서 참고한 것이라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해명했다. 자신의 잘못을 덮어보려는 구차한 변명은 대작가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든다.
바람결에 떠도는 소문에도 출처가 있는데 인터넷의 글에 주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시인 이경림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글귀를 자신의 시에 옮기면서 출처를 찾을 수 없었음을 알리고 글의 주인이 나타난다면 나중에라도 밝히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인터넷 글은 귀신이 올리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이렇게 허술하게 보는 황씨는 정작 블로그 연재소설을 유행시킨 선두주자이다. 그가 한 말이 진심이라면 글 한 토막이라도 생명처럼 소중히 해야 할 글쟁이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진실을 담은 말이 아니라면 그는 세상과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셈이다.
시대에 따라 자신의 표절을 발뺌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언제부턴가 인터넷이 표절을 합리화하는 면죄부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수년 전 소설가 권지예가 타인의 칼럼을 무단으로 베꼈을 때도 그의 변명은 인터넷에서 주인 없이 떠도는 글을 가져왔기에 자신이 책임 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가로서 자신의 글이 소중함을 안다면 남의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사에는 꼬치꼬치 세세한 부분까지 시비를 논하고 예민한 촉각을 가진 작가라는 사람이 왜 자신에게는 그렇게 관대한지, 왜 자신을 겨냥하는 화살에는 당당히 과녁으로 나서지 않는지 실망스럽다. 화살을 피하고자 하면 문제가 끝나는가?
황석영은 자신의 소설이 표절인지는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논의는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표절 판정을 전문가의 영역인 것처럼 말하니 모든 표절 시비가 사람들의 입만 달구다 시간이 지나면 식어갔고, 표절 논란에 휘말린 작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작가 행세를 한다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잠잠해지더라는 것을 이인화, 박일문, 신경숙, 권지예, 조경란 등 후배 작가들의 선례를 통해서 황석영은 익히 알고 있었다. 설령 표절을 잡아내는 전문가가 있어 그의 혐의를 확정한다고 해도 스스로 수긍하겠는가. 어림없다.
<강남몽>을 펴낸,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출판사 <창비>의 행태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몇 년 전 소설가 조경란의 표절 시비가 불거졌을 때 설득력 있는 근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궁색한 변명으로 조씨 편을 드는 데 앞장섰던 출판사 <문학동네>와 대동소이한 행태다. 창비는 변호사까지 언급하면서 황씨의 저작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남의 저작을 출처 없이 인용했음을 시인했다. 그 글은 주인이 분명히 있었고 이미 책으로 까지 나온 상태였다. 황석영이 원저작을 탐독하지 않았으면 소설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내용 전개가 닮았고 일부 표현은 토씨만 빼고 유사하기까지 했다.
작가가 사실상 표절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출판사가 팔을 안으로 굽히는 것은 상식 있는 태도가 아니다. 출판사가 작가를 끼고 돌 생각을 하지 않고 냉정한 대처에 나섰어도 황석영의 처지는 달라졌을 것이다. 월간 신동아는 <강남몽> 외에 황석영이 오래 전에 발표한 다른 소설과 저작들까지 표절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중이다.
문학이 출판사의 돈벌이로 전락한 시대에 황석영한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감 이후 황석영이 내놓는 작품마다 찬사로 도배질하는 평가가 나는 무척 불편했다. 그 소설들이 황석영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어도 ‘세계적’인 작품 운운하는 낯 뜨거운 꼬리표까지 달며 찬사를 받았을지 의문이다. 황석영은 일찍이 작품 활동 초기부터 ‘남성적 리얼리즘’의 작가라는 평을 들었다. 2000년대 이후의 소설에서 황석영은 여성에게 눈을 돌려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인물의 형상화 방식은 매우 수구보수적이며 남성의 눈에 기특하기만 한 여성들이었다.
애인이 조직 사건으로 수감되어 있는 동안 격변기의 세월을 감당하다 남자가 출옥하기 전에 자기 역할이 끝났다는 듯 병으로 죽는 윤희라는 인물에서(오래된 정원), 10대의 나이에 부모 손에 의해 중국에 팔려간 후 사창가를 전전하면서도 절망을 모르는 역경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심청과(심청, 연꽃의 길), 탈북 난민이면서 빙의 능력이 있는 어린 소녀(바리데기)에 이르기까지, 최근 10여년 간 황석영 서사의 여성 캐릭터들은 현실적인 체취의 인물과는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다.
황석영에게 이상화된 여성이 필요했던 이유는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질곡을 감당할 존재로 여성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남성을 내세워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은 <장길산>을 쓸 때나 가능했을 뿐 세상은 제1세계 자본주의가 승리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의 수난을 여성과 등치할 때 황석영이 그린 여성의 몸은 인내와 순응밖에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건 남성지배적 가부장의 시선과 다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2000년대 이후 황석영은 줄곧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나 사실을 배경으로 앉힌 그의 소설들에서 역사적 사실은 소설의 배후가 아닌 전면에 두드러졌고 서사성은 희미한 배경으로 물러났다. 90년대 사회주의 몰락을 전후한 격변기, 19세기 후반 서구와 일본의 식민지로 몰락하는 동아시아 역사, 한국전쟁 중 황해도 신천 지역 기독교도들의 민간인 학살, 90년대 중후반 북한의 대기근 등 큰 줄기의 역사적 사실만 돌출할 뿐 인물 개개인의 형상화와 서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의 소설들은 역사에 얹혀서 본전을 먹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나. 황석영 소설에서 서사가 무력해지다보니 팽팽한 서사적 긴장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자전적 성장소설인 <개밥바라기별>은 작가 자신의 성장기를 대폭 참조한 것이기에 독창적 서사를 부릴 만한 여지가 여기서는 더욱 후퇴했다. 황석영 소설에서 서사의 궁핍은 한국의 파란만장한 해방 이후부터 90년대까지 강남의 형성을 그린 <강남몽>에서 더욱 최소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강남몽>은 소설적 가공은 최소한에 그치고 역사책, 남의 저작, 신문기사를 이어붙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은 이것을 소설이라고 말하기가 스스로도 면구스러운지 ‘다큐소설’이라고 변명했다. 결국 서사 능력의 빈곤이 표절이나 도용을 대수롭지 않게 범하는 능력으로 귀착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황석영의 이번 행보는 출감 이후 줄곧 문학적인 성취를 거두지 못한 그의 이력에 정점을 찍은 것이다. 어떤 판본을 참조했는지 기존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삼국지>를 날림으로 낼 때도 기만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건 대중적 무협지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황석영이 발뺌하기 힘든 표절을 ‘다큐소설’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변명함으로써 작가적 양식을 스스로 갉아먹는다면, 그를 ‘황작가’로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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