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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고인된 어머니 모습,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
[현장-부산국제영화제] '걸어도 걸어도'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토크
 
임순혜   기사입력  2008/10/05 [15:50]
▲ 10월4일 오후4시, 해운대 피프빌리지 오픈 카페에서 <걸어도 걸어도>를 감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픈 토크 장면     © 임순혜
 
엄마에게 버림받고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인 <아무도 모른다>, 남편의 자살로 공황상태에 빠진 아내를 그린 <환상의 빛> 등,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07년 하반기와 2008년 상반기 아시아영화의 흐름을 개괄하는 기회를 제공할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 초대되어 <걸어도 걸어도>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다음은 10월4일 오후4시, 해운대 피프빌리지 오픈 카페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객과 나눈 대화다. 

사회자 : 부산을 방문하신 소감은? 
 
▲ <걸어도 걸어도>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임순혜
고레에다 히로카즈 :  부산국제영화제는 기회가 오면 가고 싶은 영화제 중 하나다. 경치도 좋고, 특히 밥이 너무 맛있었다. 점심은 ‘간장게장’을 먹었는데, 작년에 먹었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다시 찾았다. 
 
사회자 :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영화인데, 영화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 모티브는 제 어머니였다. 제 모친께서 2년간 병상에 누워 계시다가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일만 하다 어머니를 방치했다. 어머니께서 입원해 계실 때, 자주 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의 어머니 모습들을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한 달 만에 완성했고, 빠른 시간에 영화를 완성했다.  대사의 절반은 실제 어머니께서 제게 하시던 말씀들이다. 
 
사회자 : 감독님께서는 주로 신문의 사회면이나 주변 얘기를 영화에 자주 차용하시는데, <원더풀 라이프>의 치매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이번 영화에도 개인적 추억이 영향을 미쳤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감정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대부분 실제 경험이다. 화장실의 깨진 타일, 손잡이 달린 지팡이 등 집에서 보았던 것들이다. 타일은 실제 부모님이 돌아가실때까지 수리를 하지 못했다. 부분 디테일, 실제 가져왔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정들, 제 느낌을 표현하기위해 상황을 설정했다.
 
사회자 : 어머니의 역할을 여배우가 잘 소화해 냈는데, 캐스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 여배우가 훌륭했다. 배우가 훌륭하면 감독은 할일이 없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케스팅한 배우는 여주인공이 재혼할 때 데리고 간 아들이다. 처음부터 캐스팅했다. 나머지는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 캐스팅 했다.
 
사회자 : 아들 부부가 매우 자연스러웠는데, 연기 지도는 어떻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 재혼한 아들 부부의 경우, 사전에 배우들의 대사를 리딩했다. 원래 가족들간의 공유하는 기억의 분량은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밀감을 긴밀하게 나타내는 부분은 대화를 생략하고 진행했다. 그런 부분이 더 가족 같았을 것이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의 한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사회자 : 감독님의 영화가 대체로 밝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지만, 섬뜩한 장면도 등장하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 섬뜩한 부분이 돌출되지 않고 일상적인 것에 스며들어가는 것을 묘사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부엌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영화중 가장 잔혹한 대화일 것이다. 일상 이면에 존재하는 잔혹함을 생각하며 만들어 보았다.
 
사회자 : 어머니가 회고하면서 아들에게 마음속의 원한을 드러내는 장면,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하는 그 장면이 제일 섬뜩했다.너무 어둡게 표현했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는 훌륭한 배우다. 어릴적부터 인상적으로 연기하는 것 보아왔던 분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하는 부엌씬은 두사람의 바닥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들과의 대화 중요성 인식하여 잘 소화해 내었다. 콘트롤 능력이 대단한 분이다.
 
사회자 :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장면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 그런식으로 이해했다면 영광이다. 그러나 다른 감독 의식하고 찍지는 않았다. 영화찍기전에 떠오르는 인물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이다. 어딘가 비겁하고 거짓말도 잘하는 인간적인 면을 리얼하게 묘사해 좋아하는 감독이다.
 
사회자 : 감독님은 아이가 있으신지? 영화에서 부모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는데, 아이는 아버지처럼 피아노를 조율하기 바랐다. 감독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 작년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에게 감독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증조할아버지가 의사였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의사되지 않아 미안감있어 나에게 의사되라고 했다. 아이에게 부담되고 싶지않고 신중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픈 토크     © 임순혜

사회자 : 감독님의 영화는 죽거나 사라진 사람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을 그린 영화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 저도 잘 모른다. 찍다보니 그렇게 되었다.칸느에서도 항상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의식하고 찍은 것은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실제 부모님 돌아가신 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관객 : 한국영화 중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어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 <오아시스> <박하사탕>을 만든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최근 감동있게 보았다. 홍상수 감독과 봉준호 감독을 동시대 감독이라는 인상 갖고 주목하고 있다.
 
사회자 : 감독님의 다음 작품은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 예전부터 기획했던 작품인데, 올 겨울 도쿄에서 크랭크인 될 예정이고요. 한국 배우 배두나씨가 출연할 예정이고 사랑 이야기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여섯번째 영화로 요코야마 가의 둘째 아들 료타가 이제 막 재혼한 아내와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의 집을 방문, 부모님 집에서 보낸 1박 2일을 담아낸 영화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픈 토크를 경청하는 관객들     © 임순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요코야마의 대가족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느슨한 수다를 시작하고, 서로의 안위를 묻는 일상적인 대화 사이에 서서히 긴장감이 스며든다.
 
영화는 낮은 앵글, 잦은 밥상 시퀀스, 꽃병과 빨래 등의 섬세한 일상의 바탕위에 양육, 결혼, 죽음 등 삶의 의례를 통해 ‘삶은 실망스러운 것’이라는 야스지로 오즈의 인식에 더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랄한 시선이 담겨졌다.
 
어린 자식은 죽고, 이혼과 죽음으로 가정은 깨지고, 가업은 이어지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기로 작정한, 현대 가족의 붕괴를  감독은 신랄하게 드러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62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를 졸업하고 독립 TV 프로덕션인 TV Man Union에서 일하며 많은 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했다.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환상의 빛](1999)으로 베를린영화제 골든오셀라상을 수상했으며, 네 번째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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