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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낙원상가에서 리얼하게 일내다
'정글스토리'에서 리얼판타스틱 영화제까지 김홍준 감독에게 거는 기대
 
김수민   기사입력  2005/07/22 [04:48]
난 요새 한국의 중앙일간지 모두를 보이콧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돈 주고 사서 읽는 종이신문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각각의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에 따라 거부의 강도와 범위를 조절한다. 물론 가장 거세게 반대하는 것은 조선일보고, 아마 마지막까지 거부할 것이다. 나는 또 배달호씨가 분신한 이후에 두산에서 나오는 제품들을 쓰지 않는다. 그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맥주나 패스트푸드도 불매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점진적 민주화’라더니, 세상에는 보이콧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번엔 ‘부천판타스틱’(이하 ‘부천’)이다.

씨네21에 실린 진중권씨의 칼럼을 통해 부천의 비보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군 복무 와중에 흘려듣다시피 했던 나는 제대한 뒤 무의식적으로 여름엔 부천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이재현씨가 한겨레신문에 쓴 “구로동맹파업 정신 계승하여 왕창 영화관람으로 연대하자”는 칼럼을 읽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는데 부천에서 ‘짤린’ 김홍준 감독을 중심으로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이하 ‘리얼’)가 열리니까 돕자는 것이었다. 낭보다! 고향과 전주를 두 번 왕복하여 열한편의 영화를 관람했던 나는, 복학을 앞두고 서울에 터를 잡은 김에 정말 영화를 왕창 관람하기로 했다. 7월 14일부터 (화요일을 제외하고) 신촌과 종로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  난산 끝에 낳은 옥동자,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     © 김수민
 
상영 프로그램 이외에 여타 사전정보 없이 개막작 '아엘리타’를 보러 간 나는 적이 놀랐다. 임권택, 안성기, 문성근, 박찬욱이 방문했고, 사방팔방에서 플래쉬가 터지고 있었다. 필름포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다 김홍준 운영위원장을 발견했다. 아, 여기가 어딘가. 낙원상가 4층이잖아. ‘정글 스토리’를 찍었던.

사람들은 윤도현밴드가 ‘월드컵’으로 ‘떴다’고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 묻혀 있던 윤도현이 평론가와 매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한국대중음악의 대안으로 부상한 계기는 ‘정글스토리’에 출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홍준씨는 이 영화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신해철이 만든 사운드트랙은 음반으로 발매되어 내 기억으로는 30만장인가 40만장인가 팔렸고, ‘아주 가끔은’은 TV 차트에도 랭크되었었다. 그러나 정작 관객동원 성적은 처참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코미디언 이경규씨에게 ‘복수혈전’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보다 더 잔인한 짓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1996년도 6월인가에 나온 <사회평론- 길>(아까 언급된 이재현씨의 글을 내가 최초로 만난 매체다)에 수록된 ‘김홍준-신해철 대담’, ‘윤도현 인터뷰’로 ‘정글스토리’의 내용을 엿볼 수 있었지만 영화관에는 가지 못했다. 내 고향에서 개봉은 했었던가? 언뜻 포스터를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개봉했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친구가 소장한 비디오 테잎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무려 2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튼 ‘정글스토리’는 초반부터 내게 중대한 의문을 안겨다 주었는데, ‘왜 감독은 드라마틱하게 찍지 않았을까?’라는, 그야말로 초보적이고 ‘고딩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무뚝뚝한 카메라 덕분에 음악계 현실은 더 추레하고 구질구질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인터넷도 활성화되지 못했고 영화관람문화가 미숙했고 학교에도 영화동아리가 없던 시절이라, 더구나 ‘정글스토리’를 본 아이들이 없어서) 지금도 연출된 재현인지 실제상황인지 알 수 없지만 ‘락 월드’가 문을 닫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 한구석을 서늘하게 만든다. 윤도현의 음반 발매가 좌절되고 튀어나온 “약 팔던 놈들이 음악을 알아?”(음악산업에 손 뻗친 대자본을 빗댄 표현이었다), 공연이 코앞인데 돈이 모이지 않자 매니저인 김창환이 대뜸 뱉은 “오늘 몇일이냐?” 등 대사들도 인상적이었다. 윤도현밴드의 어수룩한 연기도, 시나위, 넥스트, 멍키 헤드 등의 공연도 인상적이었다.

‘낙원상가’는 영화 속 주요 무대였다. 돼지고기의 여러 냄새들이 진동하고, 인근에 2000원짜리 국밥을 파는 식당들과 파고다 공원이 있는 낙원상가는 널리 알려졌듯 악기를 파는 곳이다. 영화 속 윤도현은 여기서 점원으로 일한다. 고등학생이 엄마 손을 잡고 와 기타를 사가는 장면, 방송뉴스를 찍는 장면, 윤도현이 가게에 앉아 전기기타를 연주하는 장면, 윤도현이 김창완과 함께 가게에 들러 새 기타를 사는 장면 등이 나온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윤도현이 밴드 동료에게 솔로데뷔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그것은 내게 사람은 누구나 내일을 꿈꾸지만, 그 내일이 오늘이 되면 의지는 시시각각 무너져 내린다는 비정한 진실을 일깨워주었다. 실제로, 록음악을 하다 발라드나 댄스로 업종변경한 무수한 가수들이 다시 록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끝내 못하거나 하지 않기도 했다.

지상파에도 출연하게 된 극중 윤도현은 솔로데뷔가 좌절된 다음 다시 연주자들을 모아 밴드를 만든다. 유병렬, 김진원, 박태희의 모습이 보인다(당시 키보디스트인 강호정은 이런저런 이유로 빠졌고, 어쿠스틱 기타를 맡은 엄태환은 윤도현이 발라드를 녹음하는 장면에 잠깐 나온다). 비닐 하우스에서 자고 먹고, 서로 싸우고, 김창완에게 혼나가며 연습한 그들은 불쌍하게도 공연의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밴드의 길거리 즉석공연이 행인의 호응을 얻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래도 극중 도현은 록으로 돌아갔다. 현실의 윤도현밴드도 성공을 거두고, 급기야 윤도현은 일부러 발라드곡으로 솔로활동을하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돈을 벌라 치면 일이 터진다던 윤도현이 유수의 CF와 쇼프로에 출연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나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김홍준은 부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없다. 조금도? 그 조금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분질러 버릴 것이다. 추레하고 구질구질하니 그가 부천에서 해촉되고 따로 영화제를 준비하기까지의 일은 모조리 생략하도록 하겠다. 그 과정은 가히 ‘정글스토리 속편’이라 할 만했다. 
 
▲ 영화제의 진실 그리고 진실된 영화를 지지하는 팬들이 연일 모이고 있다.     © 김수민

글의 초입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보이콧의 양상은 상대와 그 짓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리얼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몇몇 비난 글을 읽어보니, 시쳇말로 ‘쌩까는’ 것이 낫다 싶다. 내가 심심하면 조선일보를 약 올리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나는 부천의 일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무슨 영화가 출품되었는지도 모른다. 실수로, 정초신씨의 인터뷰를 읽어버리긴 했다. ‘동시 개막’에 대해서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김홍준 감독이 일부러 그랬다고 해도 나는 별 상관이 없다. 아니, 손뼉을 칠 노릇이다. 딱 그만큼만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든 여럿이든 무소의 뿔처럼 가는 것이다.

양측 영화제의 질을 견주는 의견들도 곧잘 올라오는데, 누구의 편을 들건 쓸데없는 짓이다. ‘보이콧’은 그런 것 따지면 안 된다. 안티조선일보를 하면서 일찍이 깨달은 바다. 일전에 나는 조선일보 문화면을 ‘조폭이 운영하는 클럽’으로 규정했었다. 달리 말해, ‘클럽’이 아닌 ‘조폭’을 안티하는 것이란 뜻이다. 부천판타스틱의 주최측을 ‘조폭’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아니다. 적합한 용어를 지어낼 의사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하다. 거기서 벌인 행위를 감안했을 때, 요점은 ‘어떻게 해야 부천을 이롭게 하지 않는가’(이적행위방지)이다. 가장 일차적인 방법이 관람료 등의 돈을 보태주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괜히 어슬렁거리며 방문자 머릿수를 늘려주지 않는 것이다. 리얼을 사랑하지만 부천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부류의 분들은 영화 바깥의 세상에서는 심지가 굳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보이콧의 의지를 누그러뜨릴 만큼 영화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리얼에서 열세편의 영화를 봤고, 이제 금요일의 심야상영을 앞두고 있다. 이 원고를 쓰고 나서 낮에 푹 쉬었다가 야밤에 친구와 접선하여 종로로 향하리. 영화평? 직접 보고 당신이 하라. 23일 밤까지의 시간을 재구성하라. 너무 늦은 것 같다면, ‘리얼 판타스틱 1년에 두 번 하면 안 되나요?’라는 어느 네티즌의 글에 ‘절대공감’을 표하길 바란다. 난 그동안 고교 동창에게 ‘정글스토리’를 또 빌릴 작정이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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