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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개발독재에서 ‘개발5적’ 동맹 시대로
[우리힘의 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개발지상주의와 토건국가를 비판한다
 
정성훈   기사입력  2006/06/13 [12:53]
150년 전 씨애틀 추장이 미 합중국 대추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떻게 감히 하늘의 푸르름과 땅의 따스함을 사고 팔 수 있습니까? 우리의 소유가 아닌 신선한 공기와 햇빛에 반짝이는 냇물을 당신들이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 땅의 모든 부분은 우리 종족에겐 거룩한 것입니다. 아침이슬에 반짝이는 솔잎 하나도, 냇가의 모래톱도, 빽빽한 숲속의 이끼더미도, 모든 언덕과 곤충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우리 종족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입니다. 향기로운 꽃들은 우리의 형제이고, 사슴, 말, 커다란 독수리까지 모두 우리의 형제입니다. 그리고 거친 바위산과 초원의 푸르름, 말의 따스함, 그리고 사람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산과 들판을 반짝이며 흐르는 물은 우리에게 그저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피입니다.

우리는 백인들이 우리의 풍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어머니인 땅과 형제인 하늘을 마치 보석이나 가죽처럼 사고 파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욕심은 땅을 모두 삼켜버릴 것이고, 우리에게는 결국 사막만이 남을 것입니다."

1855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슨이 수와미족에게 그들의 거주지를 정부에 팔고 원주민 보호지로 이주하라고 제안하자 씨애틀 추장이 쓴 답장은 150여년 뒤 한국에 도착했다. 보상금을 줄테니 떠나라는 국방부의 협박에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팔 수 없는 땅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2006년 5월 4일, 한국의 군대와 경찰은 미군 부대를 짓기 위해 50여년 간 그 땅을 일구어온 농민들을 무력으로 쫓아냈다.

보수 일간지들은 농민들이 수억 원의 보상금을 받는데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들을 더 많은 돈을 바라는 파렴치범으로 내몰고 있다. 그 신문을 읽는 도시 사람들 중에는 '그 정도 돈이면 실버타운 들어가서 편안하게 여생 보내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농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아온 방식이 다른 만큼,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계산을 할지도 모른다. 이미 저항하던 주민들 중 몇몇은 땅을 팔고 떠났다. 하지만 그 땅을 넘기고 떠나는 순간 그들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보상금으로 도시에서 그럴듯한 아파트 하나 장만해 살아간다 해도 그건 더 이상 '자신의 삶'이 아니다.

1952년 미군에게 좋은 땅을 빼앗기고 서해안으로 밀려나 바닷물이 밀려드는 척박한 땅에 자리 잡은 사람들, 둑을 쌓고 소금기 가득한 땅에서 농사를 지은 사람들, 그렇게 농사지어 번 돈으로 모아 대추분교를 지은 사람들, 그 피땀 어린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들처럼 다시 농부가 된 사람들, 그들에게 도시에 나가 편히 살라는 말이나 서산 간척지에서 다시 땅을 일구어 농사지으라는 말은 황새울 벌판과 섭동하는 삶은 일단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래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는 정치 문제, 외교 문제, 국방 문제 등일 뿐만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돈 벌기 위해 수십 번씩 집을 팔고 사면서 옮겨 다니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 즉 땅과 하나가 되어있는 삶을 우리가 얼마만큼 존중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논을 내주고 떠난 농민들, 소양강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버린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지난 30여 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땅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리고 이런 개발의 시대, 속도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도시인이 대다수인 한국 사람들은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한 존중과 땅과 얽힌 삶에 대한 감성을 잃어버렸다.

시화호에서, 대관령에서, 개발이 재앙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 운동은 그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반미운동이나 반전평화운동이기에 앞서 생명운동이다.

떠돌이를 만들어낸 개발독재

당신은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은 몇 번 이사를 다녔는가? 당신이 한 집에서 가장 오래 산 것은 몇 년인가? 당신이 살았던 집 중에서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집은 얼마나 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각자 답하는 것들을 모아보면 현대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태어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며, 적게는 서너 번 많게는 수십 번 이사를 다녔을 것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가면 너무 심하게 바뀌어서 살던 집의 골목조차 찾기 힘들다. 초가집은 민속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고, 시골에도 기와집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30여 년 전 신식 주택을 대표했던 마당 딸린 단층 벽돌집을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찾아내기란 무척 어렵다. 20여 년 전 저렇게 높은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놀라워했던 15층짜리 아파트마저도 이제 재건축한다고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의 근대는 허술하게 짓고 무너뜨리고 또 다시 허술하게 짓는 일의 연속이다. 개울도 덮었다가 다시 흘러가게 했다가 반복한다.

이렇게 옮겨 다니고 허물고 새로 짓는 삶이 본격화된 것은 아마도 1960년대 후반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에도 전쟁 때문에 피난 갔다가 생면부지의 땅에 정착한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처럼 보통 일회적 대이동이었고 본래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갔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에 지겹도록 울려 퍼진 조국 근대화, 공업화 등의 구호는 어찌 보면 국민을 떠돌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는 도시로의 집중이 이루어졌고 많은 주민의 이동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처럼 4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거의 모든 국민이 몇 번씩 이동을 하고, 한 장소에서 집이 두세 번씩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진 경우는 보기 드물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떠돌이가 되었다. 공부하기 위해, 돈 벌기 위해 대도시로 나갔다.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이사했고, 내집 마련을 위해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옮겨다니고 허물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난민'이라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할 만큼 비참하게 옮겨다녀야 했던 떠돌이들도 생겼다. 소양강변, 남한강변, 낙동강변 곳곳에서 물에 잠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수몰민들, 도시 정비, 공원 정비 등을 이유로 청계천, 무등산 등에서 쫓겨났던 이주민들, 상계동, 봉천동 등에서 보상금 한푼 제대로 못 받고 떠나야 했던 세입자 철거민들이 그들이다.

개발난민들은 전태일과 같은 7, 80년대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더불어 위로부터 강요된 초고속 근대화, 산업화의 희생양이었다.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군사독재가 막을 내렸다. 정치할 자유, 언론할 자유, 공부할 자유가 차례차례 실현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고 인권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오염된 공단지역에 한정되어 벌어졌던 공해추방운동은 90년대에 본격적인 환경운동으로 발전했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신경 썼던 사람들이 이제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발독재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비판은 '개발을 핑계로 한 독재'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추어졌지 개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환경운동 역시 개발독재가 남겨놓은 파괴와 위험의 구조적 질서를 건드리지는 못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일회용품 추방, 도심 하천 살리기 등에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졌지만, 공급 중심의 주택 정책, 신도시 개발, 도로 건설, 철도 건설, 원자력 중심의 발전, 갯벌 매립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소수 지역주민과 운동단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개발동맹

개발독재는 끝났지만 그 시기에 만들어진 구조적 질서, 즉 국회의원 등 정치인, 개발 관련 정부 기관(건교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등) 관료, 개발공사(전력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등) 관료, 건설기업 임원진 등이 맺고 있는 끈끈한 유착질서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면, 그 이전에 건설 관련 공무원들은 이미 친인척을 통해 그 지역에 투기를 해놓은 상태이고, 토지공사는 국민 세금으로 땅을 조성한 후 일부는 주택공사로 하여금 공영개발하도록 하고 대부분의 땅은 건설사에게 공급한다. 건설사는 부풀린 분양가로 큰돈을 번 뒤 그 중 일부를 수주 받는 데 도움을 준 권력자들에게 뇌물로 바친다.

그래서 건설 관련 정부 부처나 개발공사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무조건 개발 계획을 발표한 후 밀어붙인다. 반대하는 주민들 중 일부는 건설사에서 받은 뇌물을 나눠주고 달래고, 그래도 넘어오지 않는 주민들은 경찰이 방조하는 가운데 건설사가 동원한 용역깡패가 알아서 해결한다.

대략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한국에서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토건 개발동맹이다. 오랜 철거민 투쟁의 성과로 이제는 임대주택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등 세입자의 권리는 이전보다 신장되었다. 하지만 판교신도시의 경우처럼 임대주택의 월세가 너무 높아 입주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 조건을 박탈하는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어섰는데 신도시 건설은 계속된다. 지리산 자락에도, 서해 바다 위에도 고속도로가 뚫렸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차가 다닐지 의심스러운 고속도로들이 계속 새로 지어진다. 수입쌀로 인해 쌀농사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농지를 더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간척사업이 전개된다.

우리 국토가 정말 더 많은 개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우리 삶에 더 많은 집, 더 많은 도로가 필요한 것일까? 필요한 사람에게 집이 돌아가게 하는 일, 도로의 필요 자체를 줄이는 삶이 요구되는 것 아닐까? 그러면 필요 이상의 개발이 이루어지는 비밀이 드러난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최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건설 비리는 국민의 세금을 갖고 정부관료와 건설기업이 나눠먹는 유착질서를 잘 보여준다. 현대산업개발 등 6개 회사로 꾸려진 서울-춘천고속도로주식회사는 2001년 정부에 민간투자사업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한다.

건설교통부와 서춘고속도회사는 이 구간을 이용하는 차량이 2009년 기준으로 하루 5만 2236대라 예측하고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실시협약을 맺을 때는 4만 4923대로 낮춘다. 예측치가 많을수록 서춘고속도회사의 이득이 커지는데 왜 낮추었을까? 당시의 법에 따르면 민자도로의 통행량이 예측치의 80%에 못 미치면 정부가 세금으로 손실액을 민간업체에게 보전해준다.

그런데 이 때문에 세금 지출이 너무 많아지자 만약 50%에도 못 미칠 경우 한푼도 보전해주지 않기로 바뀐다. 뒤에 감사원이 내놓은 예측치가 하루 2만 6768대, 국토개발원 예측치가 하루 2만 2401대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면, 회사는 건교부와 모의해 작성한 예측치가 너무 부풀려져서 한푼도 보전 받지 못하게 되는 사태를 우려한 것이다.

어쨌거나 실제 예측치의 두 배에 조금 못 미치는 교통량 예측치를 제시하고 휴게소 예정부지의 환경영향평가도 받지 않은 이 사업은 기획예산처 민간투자심의위원회에서 무사통과된다. 건교부에 호의적인 심의위원들이 팩스로 동의서를 보내는 것으로 대체한 졸속 회의였으니 통과는 당연한 일이었다.

건교부와 서춘고속도회사의 유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감사원이 통행료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음에도 건교부는 5200원이나 되는 통행료를 밀어붙인다. 도로 예정구간의 토지 수용 과정에서는 주민들이 건교부를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현대산업개발은 변호사비 3억 9천만 원을 대신 내준다.

그래도 이 사건은 검찰이 제동을 건 덕분에 그 비리 혐의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전에 지어진 민자고속도로가 세금먹는 하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2006년 3월 15일 검찰은 교통량 평가를 허위로 하고 휴게소 예정부지의 환경영향평가를 누락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따낸 사기 혐의와 건교부에 뇌물을 준 혐의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 등 6명을 고발했다.

최근 몇 년간 민자도로 건설은 건설회사들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었고, 국민들에게는 세금 먹는 하마가 되었다. 민간투자사업이란 제도를 통해 건설된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우면산터널 등을 가보면 길이 막히는 일이 없다.

건설사와 건교부가 부풀린 교통수요 예측치를 갖고 건설한데다가 요금도 다른 도로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무려 6400원의 요금을 받는 인천공항고속도로는 통행량이 예측치의 40%에도 미치지 못해 개통 후 5년 동안 정부가 4300억 원을 민간업체에게 보전해줬다.

터널 한번 통과하는데 2천 원을 받는 우면산터널은 예측치가 하루 5만 1천대였으나 실제 교통량은 1만1천 대를 조금 넘었다. 2003년 한 해에만 서울시가 251억 원을 지원했다. 이들 도로를 지을 때는 예측치의 50% 이하면 보전하지 않는다는 규정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 건설은 통행료를 통해 투자비용을 환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공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맡기 마련이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이란 것을 허용한 이유는 공공시설의 필요에 비해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공사가 건설하는 (고속)국도나 지방도보다 높은 통행료를 허락해 민간업체에게 이윤 동기를 부여하고, 공공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더 많은 공공시설을 짓는 것이 민간투자사업의 존재 이유이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 시행의 결과는 지금, 통행료는 통행료대로 비싸고 공공재정 손실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것이다. 절실한 필요가 없는 도로를 넓게 지어놓고 건설업체들만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건교부 퇴직 공무원들에게는 노후 보장 수단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공무원들의 뇌물 수입 경로가 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서춘고속도회사의 사장은 건교부 산하단체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사람이다. 상당수 민자고속도로회사 간부가 전직 건설 관련 공무원이라고 한다.

민간도로 건설이 세금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결국 건교부는 2006년 4월 5일, 앞으로 지어질 민자도로에 대해서는 운영수입 보장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바로 잡아졌는데, 앞으로는 이런 민간투자사업이 유지될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도로가 적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설 중인 것을 포함한 전국고속도로 지도를 한번 펴놓고 보라. 이미 전국토의 고속도로화는 완료되었다. 산을 뚫고 바다를 건너 어디건 150km로 질주해 갈 수 있다. 서비스를 중시하는 민자고속도로들은 대체로 감시카메라를 적게 가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가끔 노루나 멧돼지와 부딪치는 스릴러도 제공된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개발동맹

세금을 잡아먹고 파괴와 건설을 일삼는 것은 민간업체만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투자하고 관리하는 개발공사도 마찬가지이다. 2006년 초 대법원 판결로 결국 끝물막이 공사가 끝난 새만금 간척사업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이 식량자급과 국토확장을 목적으로 서남해안대간척사업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산, 김포 등에서 이미 대규모 간척사업이 완료되었고, 80년대 중반에 계획이 수립되어 91년에 착공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방조제 길이가 33km에 이르며 동진강과 만경강 입구를 가로막는 최대 규모의 사업이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환경운동 단체들에 의해 갯벌이 매우 큰 정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고 갯벌 체험이 웰빙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갯벌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 생태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웃 일본에서는 기존의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갯벌로 되돌린다는 이야기, 독일에서는 일체의 간척사업을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게다가 90년대 들어 쌀 자급자족이 실현되고 95년 우루과이 라운드로 농산물 수입 개방이 이루지게 되자 식량자급을 위한 농지 확보라는 명분은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갯벌 생물을 죽이고 동진강, 만경강을 오염시키게 되는 간척사업이 경제성조차 의심받게 된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결정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죽음의 호수로 변한 안산 시화호였다. 94년 방조제 건설이 완료된 시화호는 바닷물 유입을 막아 담수호로 바꾼 후 농업용수로 공급한다는 것이 농림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흘러들어오는 폐수가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악취가 진동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새로 생긴 땅에 생긴 소금이 날아가 주변 포도밭을 파괴해버렸다. 결국 농림부는 담수호 계획을 포기하고 시화호에는 다시 바닷물이 유입되었다. 지금도 시화호는 정화 작업이 진행중이며 그만큼 세금을 잡아먹고 있다.

또한 시화호는 개발에 눈이 먼 과학의 허술함을 폭로했다. 이는 두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데, 우선 토건국가의 개발동맹에 정(정치인)-관(고위공무원)-재(건설업체) 뿐만 아니라 언론과 학자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개발 5적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 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나 환경영향평가에 임하는 학자들이 이미 개발동맹에 포함되어 있어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과학자들의 양심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경문제에 있어서 과학 자체가 갖는 한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환경세계는 개발공사를 수행하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강, 갯벌, 바다 등이 연결되어 있는 환경세계는 인간의 지각능력으로는 모두 포착할 수 없는 수많은 섭동 속에 존재하고 있다.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모든 경로, 터널이 끊어버릴 수 있는 모든 수맥을 인간의 과학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태도는 환경세계의 복잡성과 우연성을 무시하고 자신과 섣불리 동일시하는 것이다. 시화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많은 개발사업들이 초기 책정한 예산의 몇 배나 투입되는 일은 흔하다.

만들어놓고 보면 처음 예측한 것과 달라지기 때문에 무수한 보강공사 비용과 환경관리 비용이 들어간다. 이렇게 되는 데는 위에서 지적한 두 측면, 즉 개발동맹에 포섭된 과학자들의 비양심과 환경세계의 복잡성을 하찮게 여기는 과학 자체의 오만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농림부는 새만금을 시화호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 만경강, 동진강 상류의 축산단지를 이전시키는 등 7천억 원을 투입해 수질 관리를 하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2조원이 넘게 퍼부은 공사에 이번에는 환경보전을 위해 또 혈세를 퍼붓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질 관리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장담도 결국 이 사업에 관련된 학자들의 장담일 뿐이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잡아먹을지, 그러고도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업은 왜 계속 추진되고 있는가? 농업용지로 사용하는 것이 의문스럽게 된 지금, 정부조차도 아직 간척지의 용도에 대해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는 계속 농지 사용을 주장하지만 멀쩡한 땅에서도 농사를 포기하는 지금 과연 누가 소금기 가득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할까?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을 서산 간척지로 몰아내듯이 또 어디서 개발난민들을 만들어서 개간사업을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전라북도는 이 땅을 관광레저타운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카지노 유치이다.

아무리 궁리해 봐도 썩어가는 간척 황무지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력한 방법은 도박장밖에 없는가보다. 어쨌거나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대법원이 간척사업을 최종 승인한 것은 전라북도의 압력과 함께 관련 정부기관과 개발공사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농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농림부가 자기 조직을 유지하는 데 있어, 동강댐 건설에 실패한 수자원공사나 토지공사가 자기 조직의 규모와 예산을 유지하는 데 있어,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세금은 낭비되건 말건 자기들 밥줄은 최소 2011년까지, 오염문제가 생기면 더 오랜 시간 보장된다.

토건국가 한국

이렇듯 정부기관-개발공사-지자체-민간건설업체가 똘똘 뭉쳐 국민 세금으로 국토를 파괴하는 일은 우리나라만의 행태는 아니다. 일본을 꾸준히 연구해온 오스트레일리아 학자인 개번 매코맥은 고베 대지진 다음해인 1996년에 출판한 책 <일본, 허울뿐인 풍요>에서 '토건국가'로서의 일본을 분석하고 있다.

"이 토건국가 체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자. 우선 건설성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카르텔(담합)에 속한 회사들에게 발주를 할당한다. 이들 건설회사는 정기적인 수주가 보장되며, 경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사수주 가격은 초기에 이미 부풀려지기 때문에, 통상 1∼3%에 이르는 상납금을 징수당한 뒤에도 충분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이 돈은 지방 및 중앙 수준의 정치조직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

또 건설회사들은 적절한 절차를 밟아 건설성 퇴직관료들에게 안락한 일자리를 마련해주거나 인사들이 국회나 지방의회에 출마할 경우 선거운동을 도와줌으로써 財-官-政의 공동이익이라는 마법의 고리를 완벽하게 형성한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의 수상들은 수상직을 단지 사들였을 따름이며 일단 수상직에 취임하면 '부하들을 먹여살려야 했다.' 한편 일반 국회의원들 역시 선거구 관리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였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바닷가의 2층짜리 고속도로가 무너진 모습, 고베만 가운데 있는 거대한 인공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무너진 모습을 보면, 일본이 얼마나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여왔고 그로 인해 재앙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이미 인공섬에 국제공항을 만들었고, 도쿄만 지하를 관통하는 해저터널을 만들고 있었으며, 도쿄만에 인구 5백만을 수용하는 인공섬을 만들 계획과 1000미터 높이의 빌딩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래세계를 그린 영화에나 나올법한 광경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던 토건대국 일본은 고베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만나고, 도쿄도지사, 오사카도지사 등 지자체 선거에서의 반란(개발 계획 축소를 내건 코미디언 출신 무소속 후보들의 당선)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수많은 토건 비리 정치인과 건설업자들이 구속되면서 점차 토건 계획 규모가 축소된다. 매코맥에 의하면 토건국가가 절정에 이르렀던 93년 일본의 건설부분 총지출은 90조엔으로 GDP 대비 19.1%이고, 영토가 25배, 인구가 2배가 넘는 미국보다 2.6배 많은 액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건설업 비중이 GDP 대비 17% 내외로 추정되는 한국 역시 토건국가라 불리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 토건국가로 발전한 것은 일당 지배체제에 기반한 급속한 산업화에서 그 주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발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으로 안정되게 재생산되는 거대한 정-관-재 네트워크가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두 나라 모두 정권 교체를 겪으며 일당 지배체제(정확히 말해 한국에서는 군부독재)가 끝났지만 토건국가의 개발동맹은 변형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사회당이나 한국의 민주당-열린우리당은 이전 정권들이 해왔던 방식을 답습했다. 개발독재에 맞섰던 운동권 출신 정동영이 새만금 사업을 뒷받침해주고, 사형수 출신 이철이 철도공사 사장이 되어 KTX 건설을 강행한다.

개발사업 만큼 정치자금 확보에 좋은 경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도쿄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들이 시민들의 변화된 환경의식을 반영해 새로운 개발사업을 포기하고 갯벌을 다시 살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 반해, 한국에서는 뒤늦게 도입된 지방자치제도가 개발독재를 개발자치 또는 개발민주주의로 전환시키고 있다.

2006 지자체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여당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할 상황임에도 유독 전라북도에서만 강세를 보이는 데는 새만금 사업 관철의 영향이 크다. 새만금 간척지에 관광레저타운이 들어서면 전북 경제가 활성화되리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뉴타운 지정, 경전철 도입, 고속도로 건설 등을 내걸지 않는 후보를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내가 사는 관악구에는 2조원을 들여 관악산과 우면산을 관통하는 강남도시순환고속도로가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이 거대한 환경파괴 사업에 반대하는 시의원 후보는 단 한 명뿐이다. 교통 여건이 좋아져 집값이 오르리라 기대하는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막대한 공사비 때문에 매우 비싼 요금을 받을 것이 뻔한 이 도로로 과연 얼마나 많은 차가 다닐지도 의문이고, 관악산이 파괴되고 지하수가 고갈되고도 집값이 오를지 매우 의문스럽지만, 일단 뭐든지 새로 지으면 이득이 되리라는 환상이 주민들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허위 욕망을 자극하거나 그에 편승하면서 새로운 개발사업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동네에 돈 벌 일이 많아졌으면', '내 집 근처에 도로 하나 더 만들어졌으면' 하는 사소한 바람들이 모여 전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토건국가 한국은 개발독재의 유산이지만, 더 이상 환경 파괴를 개발독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여론을 반영한 정상적인 민주주의 절차와 자치 질서, 그리고 나름대로 공정하게 진행되는 법원의 판결이 토건국가를 재생산하고 있다.

여전히 비리, 뇌물, 공사대금 부풀리기,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등 독재의 유산과 비민주적, 비공개적 음모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를 청산한다고 해서 환경파괴가 줄어드리라 믿는 것은 착각이다. 토건국가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그 개발동맹에 포섭되어버린 개인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욕망이 독재 시대에 학습한 파괴와 건설의 욕망을 내재화하는 순간, 환경 파괴는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며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군부독재 시기에 안보 명분과 자연보호 명분으로 그어놓은 그린벨트가 이제 자유라는 명목으로 해제되는 곳에서는 신도시 개발이라는 대박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통제를 벗어난 욕망은 지금 긍정하는 삶의 욕망이 아니라 네크로필리아(죽은 것에 대한 사랑)가 되고 있다.

주민투표, 딜레마에 빠진 환경운동

2004년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 운동은 한국 환경운동 역사상 가장 큰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도 열정적이었고 환경단체, 문화단체 등 여러 사회운동 세력과 주민들의 협력도 잘 이루어졌다. 인구 3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군에서 매일 수천 명씩 참여하는 촛불시위가 지속되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독단적으로 핵폐기장 건설을 결정한 군수는 폭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부안 코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저항운동은 사실상의 지역권력으로 부상했다.

처음에는 위해 시설을 꺼리는 지역이기주의도 강하게 작용했지만 환경단체와의 만남을 통해 핵발전 자체에 대한 인식 전환, 새만금 사업에 대한 인식 전환까지 광범하게 이루어졌다. 문화운동과의 만남으로 지역 생태공동체 운동에 대한 문제의식도 확산되었다. 민주적 자치의 힘을 정부가 계속 외면하자 스스로 주민투표를 조직하여 정부의 항복을 이끌어내었다.

2004년,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은 부안 투쟁의 승리가 참다운 지역자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며 고무되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군부독재보다 훨씬 세련된 민주권력이었다. 2005년 참여정부는 지역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핵폐기장 부지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를 모집한 후, 부인 주민들이 요구했던 방식인 주민투표를 네 곳에서 동시에 실시한다.

반핵운동이 아래로부터 제안한 방식을 역으로 위에서부터 실시한 것이다. 지역 경제가 침체 상태에 있었던 경주, 군산, 포항, 영덕, 네 곳이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찬성세력들은 40%에 가까운 부재자 투표에서도 드러나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표를 조직했다.

찬성률이 가장 높은 곳을 선정한다는 경쟁 방식은 영호남 사이의 지역감정까지 자극하며 격렬한 선거전으로 치달았다. 건설사로부터 뇌물까지 받은(얼마전 영덕의 찬성운동 세력이 10억을 받은 것으로 드러남) 지역 유지들이 엄청나게 돈을 퍼붓고 지자체가 편파적으로 관리하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반핵운동은 제대로 힘조차 써보지 못했다. 결국 89.5%라는 기록적인 찬성률이 나온 경주시가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도시가, 땅만 파면 문화재라는 도시가 핵도시로 결정되었다.

주민투표 이후 환경운동단체들은 이 주민투표가 금권선거,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며 무효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열차는 떠난 뒤였다. 아무리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해도 89.5%는 너무 압도적인 찬성률이었다. 주민투표라는 다수결 민주주의 원리 자체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러한 문제제기는 힘을 얻을 수 없다. 87년 6월에 군사독재를 완전히 축출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이 대선에서 양김 씨의 분열로 노태우에게 진 후 부정선거라고 문제제기했지만 아무 호응도 얻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저항의 열정이 없는 상태에서 위로부터 주어진 민주주의는 잘 조직되어 있는 기득권 개발세력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주민투표 경쟁 모델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토건국가 유지를 위한 유력한 방책으로 활용될 것이고, 민주주의와 합법성을 무기로 삼아왔던 환경운동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환경문제에 있어 다수결 민주주의, 국민민주주의의 한계

오랜 개발독재 시기를 경험한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민주주의와 지역자치가 제대로 실현되면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성의 기본 특징을 ‘모험 Risiko’으로 보며, 이제 부의 분배가 아니라 모험의 분배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세계모험사회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 울리히 벡의 모험사회론에 따르면, 환경을 파괴하는 모험은 근대화 과정의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독재나 비리가 없다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문명의 과정 자체가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모험을 어느 정도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범적 사회운영원리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선진민주주의의 실현, 모범적인 지방분권의 실현 등은 비리와 뇌물로 가득한 개발은 막을 수 있겠지만 다수의 의지로 관철되는 개발을 막아내기는 어렵다. 다수의 개발 의지가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고 싶은 소수의 삶을 희생시키는 걸 막아내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수결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이 근대적 인권의 기본 원리이듯이, 단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생태적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도쿄 나리타 공항 제2활주로는 완공되지 못해 본래의 계획과는 달리 국내선용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그 활주로 끝에 살던 산리즈카 마을 주민들이 끈질기에 저항했고, 그대로 농사짓는 그들의 삶을 결국 도쿄 시민들이 존중했기 때문이다. 토지 수용을 거부한 산리즈카 마을 단 세 가구가 국책사업을 좌절시킨 것이다. 비행기 굉음 아래서 2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은 아무리 많은 보상금을 제시해도 떠나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소유권 절대 원칙'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을 내놓거나 검찰이 재벌의 편법 상속을 수사할 때마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이 소유권 절대 원칙을 강조하며 시장경제 원리를 위배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인다.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왜 귀찮게 하느냐?'는 항변이다. 이렇듯 탐욕을 위한 소유권을 옹호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은 정작 삶을 위한 소유권은 옹호하지 않는다. 온갖 특례법이나 조례들을 통해 행해지는 강제철거와 행정대집행은 수수방관한다.

우리가 존중해야 할 자유는 더 많은 돈벌이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내는 자율적인 삶을 위한 자유가 아닐까? 자유주의자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존 로크는 자기 노동에 의해서만 소유권이 보장된다고 하였으니, 자유주의자라는 명칭은 후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말이 아닐까?

그런데 인간을 위해 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한 국가나 한 지역 차원에서 소수의 삶을 존중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산 능력이 고도로 발전하고 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금, 만약 한 지역의 모든 주민이 찬성한다 하더라도 그 개발사업이 인류에게 큰 해악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해마다 더 강해지고 있는 봄철의 황사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의 7, 80년대처럼 개발의 환상 속에서 환경문제는 염두에 두지 않는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산림 훼손과 매연 배출은 중국보다 한국에 더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황사의 사례는 많은 환경문제가 한 국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이미 지구온난화 문제, 오존층 파괴 문제 등은 전지구적 환경문제로 인식되어 국제적인 규제 질서가 만들어진 상황이며, 앞으로도 국가나 지역 차원에 맡겨둘 수 없는 수많은 환경문제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다.

토건국가 한국에 대한 비판에 그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 차원을 넘어선 더 근본적인 고민, 즉 인류는 전지구적 환경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은 다음 강의로 미루어둔다. 다음 강의에서는 인간 문명의 전환을 시도하려고 하는 여러 생태사상들의 의미와 한계를 다룬 뒤, '현대 사회는 생태학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대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해 성찰해볼 것이다.
 
* 글쓴이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CGA대항지구화행동' 창립회원이며, 환경운동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우리힘닷컴'(www.woorihim.com)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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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13 [12:5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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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곡 2011/03/14 [09:44] 수정 | 삭제
  • 아빠를 일찌기 여위고 엄마가 노점상 하면서 아들을 공부시켜 놨더니
    아들이 크서 노점상의 병폐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기사의 글은 이런 글이다.
    박통의 경제발전에 누릴 것은 누리면서 비판하는 몰지각한 글이다. 짐승도 은혜를 알건만 짐승보다 못한 자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