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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 시대, 사법부는 치외법권인가?
[제안] 수구세력 본산 헌법재판관 대법관 재구성을 위한 법안 제정해야
 
뒤집기   기사입력  2004/10/27 [12:45]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로 다종다기한 문제제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재판관에 대한 탄핵소추에서부터 헌법재판소 위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여러 갈래의 의견이 있다. 한편 이번 결정에 환호하는 측에서는 그 반대세력에 대해 왜 탄핵사건 심판 때와 다른 '이중적 태도'를 보이냐며 헌법재판관 보호 논리를 펴고 있다.
 
우선 확인할 것은 대통령 탄핵소추에 반대했고 행정수도이전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보인 모습은 전혀 '이중적'이 아니란 점이다.
 
굳이 지난 탄핵사건에 관한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당시는 오늘에 드러난 수구적이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재판관들조차 감히 대통령 탄핵을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촛불시위를 비롯한 국민들의 저항이 거셌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당시 촛불시위도 없고 조중동 식의 여론몰이가 압도적이 되었을 때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소추처리를 용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솔직히 헌법정신에 위배된 국가보안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온 것으로 이미 헌법재판소의 수구성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탄핵관련 헌재 판결은 탄핵소추 국회통과에 분노한 국민이 조중동, 한나라당, 헌법재판소에 맞서 승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선공약으로 1차 국민 검증을 거치고, 여야합의로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2차 검증을 거쳤으며, 올해 총선을 통해 3차 검증까지 거친 사안에 대해 단지 조중동과 한나라당, 서울시의 '여론몰이 합작품'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에 기대어 겁없이 압도적 위헌 판결을 낸 헌재의 결정은 앞으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일례로, 한나라당에서는 여당의 4대개혁입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다른 정당이 서로 다른 정책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헌법기관에 입법권에 대한 과도한 통제권한을 부여하려는 것은 스스로 입법기관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아닐 뿐만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위상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을 고백하고 만 셈이다. 즉, 이들은 헌법재판소를 '정치적 도구' 정도로 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실토하고 만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이들이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성향이 그들과 유사하다고 판단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보라! 과연 이들이 양심에 따라 법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최근에 임용됐고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은 제외.     ©헌법재판소
 
이런 것은 이미 헌법재판소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경국대전을 견강부회한 억지 판결에 압도적 다수가 찬성한 이번 판결은 이미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이며 기득권 집단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폭로한 사건이다. 결국 4대 개혁입법 위헌소송 제기 발언은 이미 헌법재판소가 '헌법수호'라는 본연의 책무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을 한나라당이 재차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올해 총선에서는 유달리 '물갈이', '판갈이' 이야기가 많았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 결과가 보여준 정치권의 추악한 모습이 정치권 스스로의 물갈이를 채찍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핵소동은 감추어져 있던 수구세력의 반민주주적 본질을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결국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군사독재의 후예들로부터 국회권력을 빼앗아 왔다.
 
비리와 반민주주의적 폭거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할 수 있는 국회의 새로운 구성은 이런 점에서 새로운 민의의 충실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거슬러가면 2002년 대선 또한 거시적 의미에서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고 더 민주적이며 더 남북평화지향적인 정치세력이 행정부를 책임지도록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사법부 권력은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부분 과거 정치권과 사법수뇌가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이처럼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을 통한 '물갈이'와 달리 헌법재판소는 전혀 물갈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향후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국회가 어떠한 법안을 만들었을 때 대통령은 이를 거부할 수 있지만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더 있다. 국회의 3분의 2가 다시 찬성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효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한 법안에 대해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려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권한은 막중하기 때문에 헌법재판관 하나하나는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정치권의 이익 보다는 국민과 나라전체를 생각하는 재판관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법률이 이러한 점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10.21 헌재의 위헌판정은 대의민주주의를 압살시킨 일종의 쿠데타이자 보수세력의 대반란이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헌재 재판관들의 입장에  반하는 어떤 개혁조치도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 어이없다 작

 예컨대, 재산형성과정이 불투명한 국회의원, 국무위원, 대법관 등 고위공직자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가정할 때 헌법재판소가 또다시 8대1로 위헌 판결을 낼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고위공직자 중 판,검사 대다수의 재산형성과정은 그다지 떳떳하지 못하며 심지어 보수적 일간지로부터도 '투기꾼 수법 그대로'라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법관 이상 헌법재판관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 제정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하 고위재판관으로 약한다) 아래 그 조건을 열거한다.
 
첫째, 과거 군사정권의 민주인사 탄압과 관련해서 이에 협조하여 수사, 기소, 판결한 검사, 판사는 고위재판관을 맡을 수 없다.
 
현재 모습대로의 헌법을 만들기 위해 싸워온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데 일조하여 수사, 기소, 판결한 자들은 현재의 민주헌법을 수호하는 책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자들은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기보다는 정반대로 대통령 종신제, 대통령 체육관 간접선거 등을 규정한 반민주적 헌법과 그 하위법의 충실한 이행자였기 때문이다.
 
둘째, 재산형성과정이 불투명한 자들은 고위재판관을 맡을 수 없다.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판결에 포괄적 영향을 미치는 대법원 이상의 판결에서는 고위재판관의 청렴도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조세관련 입법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위헌판결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규정의 제정은 필수적이다.
 
셋째, 지나치게 많은 재산이 있는 자들은 고위재판관을 맡을 수 없다.
 
검사나 판사가 본업에 충실하여 청렴하게 산다면 수십 억을 넘는 재산을 가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일반인의 상식 중의 상식이다. 자료의 불충분으로 두 번째 조건의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 번째 조건은 두 번째 조건에 대한 보완의 성격을 지닌다.
 
혹자는 계급계층의 균등한 참여를 이유를 이 조건이 위헌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논리를 따르더라도 수십억 원의 재산가가 전체국민의 9분의 1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십억원의 재산가를 9명의 헌재 재판관이나 기타 대법관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또한 법관이라는 신분자체가 이미 일정정도의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고소득자의 입장이 배제된다는 것은 엄살에 불과하다.
 
넷째, 고위재판관은 그 직을 그만 둔 이후 일정기간 (예컨대 20년) 동안 일체의 정치 행위, 변호사 행위를 할 수 없다.
 
고위재판관이 정치권과 연계되어 정치적 판단을 하려는 유혹을 미리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정치적인 판결이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이회창 전직 대법관이 임기 이후 변호사 개업을 하여 재벌의 소송건을 맡아 최소 15억원의 변호사 수임료를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것이야 무어라 할 수 없지만, 문제는 법의 공정성 훼손이다. 전임 대법관이 맡은 소송건은 '무조건 승리한다'는 한국적 특수현실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퇴임 이후 재벌의 소송건을 맡기 위해서라도 재벌관련 판결에서 친재벌적인 판결을 할 유혹이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변호사 활동 금지 조건은 이런 불공정성의 고리를 끊기 위한 조처이다.
 
이러한 네 가지 조건은 고위재판관에게 너무 가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위재판관이 모든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판사로서의 직분에만 충실하려고 한다면 이 조건은 오히려 너무 느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직 고위재판관이 이 조건에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모두 물러나야 할 것이다. 사법부에는 더욱 상식적이고 더욱 청렴한 판사들이 있을 것이고 이들이 세대교체를 이루면 된다. 바야흐로 사법부에도 물갈이를 할 때가 온 것이다. 만에 하나 사법부 내에 이런 조건을 만족할 만한 검사, 판사가 없다면 다음의 조건을 추가하면 될 것이다.
 
다섯째, 변호사가 판사가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한시적으로 고위재판관도 변호사 출신으로 임용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헌법재판관은 헌법 전공 교수 등 다양한 층의 참여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관련 인종차별 문제가 개개인의 무의식에까지 침투해 있는 미국에서 한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항상 눈을 가리고 판결을 했다고 한다. 과연 이번 사건을 처리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의 정치적, 개인적, 물질적 이해관계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 질문을 던져볼 때이다.
 
고위재판관의 조건을 규정한 법안이 사법부 고위층이 거부할 경우, 더욱 구체적으로 해당 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또다시 위헌으로 판결날 경우 우리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이들을 청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군사정권에 협력하지 않고, 재산형성과정이 투명하며 과도한 재산을 가지지 않으며, 향후 정치적, 물질적 대가와 무관한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을 가질 권리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이기 때문이다. / 독자 논설위원

* 필자의 홈페이지 안내 http://www.geocities.com/turnover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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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27 [12: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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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샘 2004/10/27 [13:05] 수정 | 삭제

  • 관습헌법이라는 생경한 용어가 등장하여 개혁을 저지하는 주력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행정수도에 관한 헌재의 판결문은 그들이 표현한대로 이조 오백년과 일제의 강점기 그리고 이승만과 박, 전, 노태우에 이르는 독재정권에까지 면면히 내려온 수백 년 전통의 관습권력임을 커밍아웃한 것이라고 보여 진다.

    우리의 일천한 민주주의의 역사가 그나마 419와 1026, 518을 거쳐 결국 87년 시민혁명으로 군사독재세력과 정치권이 타협한 5년 단임 헌법을 만들어낸 것이고 지금의 헌재도 그때의 산물인 것이다.

    이후에도 관습권력세력은 YS를 대통령직으로 매수하는 등 집권을 위하여 마지막 발버둥을 쳤으나 그 끈질긴 생명을 1997년에 DJ의 집권으로 마감하였다. 더구나 2002년에 연이은 노무현의 집권으로 관습권력은 10년의 권력 상실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백 년간 이씨왕조와 일제, 미군과 군부독재의 적자였던 관습권력은 우리사회에 이미 그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 우리나라의 주류라 일컫는 세칭 일류대학을 정점으로 한 학벌에 의한 수직적 계급질서는 이조시대의 과거제도에 의한 사농공상 계급 유지를 대신한 현대판 봉건적 신분의 고착화에 다름 아니다.

    소위 강남으로 일컫는 수구들의 지리적 기득권은 그들이 관습권력임을 공공연히 자랑하는 상징이 되어있다. 게다가 부동산과 학군으로 대별되는 실질적 권력은 이번 고교 등급제 파동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은 사안 그 자체 보다는 노무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가장 우선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새 행정수도가 갖는 정치적 의미인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가 아니라도 권력의 분산이 물리적으로 가시화된다는 점에서 그 심리적 파급효과는 매우 큰 것이다. 더욱이 노무현은 (수도 이전이)기득권세력의 교체라는 상징성까지 역설하였다. 부동산가치의 하락은 사실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적어도 헌재는 관습헌법까지 동원하여 확실하게 노무현의 수도 이전을 저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7년 온 국민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불문적 기본정신은 관습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었음도 상기하게 하였다. 잘못된 관습과 권력은 민중의 자각에 의하여 거부되고 전복되었다.

    역설적으로 헌재가 민중의 불문적 가치와 힘을 깨우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