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고 불쌍한 돼지, 도올이여! 하루는 유가를 신봉하고 있던 혜자(慧子)가 초야(草野)에 묻혀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던 노자에게 물었다. "남아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여 입신양명을 해야 옳거늘 초야에 묻혀 사니 이 아니 안타까우리오?" 하였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있던 노자가 하는 말, "저기 진흙 속의 돼지를 보라. 저 돼지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혜자(慧子)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저 돼지가 어느 날부터 주인으로부터 기름진 음식을 며칠간 접대받은 후 비단 옷을 입고 좋은 상위에 올라가게 되는 날이 있다. 그 날은 바로 그 돼지가 죽는 날이다" "......," " 어리석은 혜자(慧子)여 , 그대는 저렇게 진흙 속의 행복한 날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회갑연 잔치상에 올려진 비단 옷을 입은 날을 택하겠는가? 내가 보기엔 자네는 비단옷을 입고 잔치상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돼지같네" 이 말을 듣고는 혜자(慧子)는 말없이 돌아갔다. 이 이야기에 나타나는 정신이야말로 바로 유가(儒家)에 대비되는 노장 사상의 핵심이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 노장 사상의 연구로 가장 알려져 있고 동양학을 주제로 한 TV강의를 오래동안 해서 더욱 큰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해 온 도올 김용옥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이 또한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의 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도올은 한국 지식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대표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어떻게 노장사상을 전공했다고 하는 김도올이 유가(儒家)이상으로 이렇토록 정치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자기가 이해할 수도 없고 또 따라할 수도 없는 사상을 연구하고 그것으로 책도 쓰고 강의도 한 셈이다. 김용옥의 노장에 관한 저술이 어떤 한계에 가로막혀 특별한 감흥이 없는 것은 바로 그가 전공한 사상과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의 괴리에서 기인할 것으로 본다.
내면화되지 못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삶과 괴리된 철학을 논하는 사람에게서 밥벌이용(用) 강독(講讀)이상의 수준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내가 보기엔 김용옥 자신이야말로 노자가 말한 '비단 옷을 입고 잔치상에 올라간 돼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입법권의 남용을 제한하라고 마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방식으로 "갑신칠적(甲申七敵)"을 운운한 것은 그가 과연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을 기각하면서 헌법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발표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 또한 이런 식으로 갑신3적(甲申三敵) 등으로 매도당해서 우매한 민중들로부터의 이지메와 테러가 두려워 몸을 사린 이유 때문이 아니었는가? 이 땅의 지식인의 한 명으로서 이런 식의 저질 문화를 질타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갑신칠적'이라는 매카시적 폭력을 서슴지 않다니 실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런 도올에게 볼테르가 말한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라는 민주주의를 위한 핵심적인 양식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램일까? 차라리 도올이 한국 사회에 목소리를 높이는 분야와 그 방식이 지율스님처럼 천성산 도룡뇽 살리기 노력이나 새만금간척 반대운동같이 자연환경과의 친화운동이라면 노장사상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작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가 세상에 주목을 받으려고 나서 왔던 테마는 "노태우는 위대한 사람" " 김우중은 하늘이 낸 사람" "노무현 대통령은 聖君" "갑신칠적(甲申七敵)" 이런 식으로 너무나도 정치적이고 대부분이 재벌이나 권력가에 대한 아부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이번에 헌재판결의 대상이었던 수도 이전 사업은 노무현이 말한 뉴딜적 정책이란 용어만큼이나 무위자연과는 동떨어져 있고 반환경적인 대규모 토목건축개발사업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동양학과 노장사상에 정통했다고 자부할려면 오히려 이런 반(反)환경적인 대규모 토목사업의 중단에 찬사를 보냈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노장사상이 21 세기 현대 사회에 던져주는 의의는 그동안 서구의 합리주의와 기독교 사상에서 기인한 인간관이 끼친 폐혜를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신(神)의 수탁자(受托者)로서의 인간관'이 필연적으로 배태(胚胎)해 왔던 환경을 착취하고 파괴해온 기술문명관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자연과 조화(調和)로운 인간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의 인간관'을 재조명해 주기 때문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도올의 행적에서 자청하여 '비단 옷을 입고 잔치상에 올라간 돼지'의 모습을 보는 것은 노장사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아이러니한 느낌일 것이다. 과연 노자와 장자가 21 세기 한국 사회에 돌아와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도했다면 도올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어리석은 혜자(慧子)여, 제 무덤을 그만 팔지어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 문화비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