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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베트남인과 이라크인을 만났을 때
'우리안의 파시즘',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율전   기사입력  2004/02/29 [17:59]
오후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의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내리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오후 내내 내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감옥에서는 여름나기가 겨울나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없는 사람들은 겨울나기가 여름나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좋고 나쁨'이란, 그 때 그 때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언어로서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비를 맞으며 중년 아주머니 한 분과 나이를 어림짐작하기가 조금 애매한 남자 한 분이 약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흰색과 파란색 그리고 베이지색의 페인트 자국이 잔뜩 묻어있는 옷을 입은 채였습니다. 한 눈에, 두 양반 모두 소위 '노가다'라 불리는 일을 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 그랑께 이 사람이 배가 아프다고 그란디라 잉~" "배가 아파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요?" 아픈 당사자가 아주머니가 아닌 함께 온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그 양반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이 양반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싱글싱글 웃을 뿐이었습니다. 바라보는 그의 안색이 거무스레하면서도 약간 창백했지만 쌍꺼풀이 곱게 지고 깊은 눈매를 가진, 상당히 준수한 용모였습니다.

'근데 왜 이 아저씨가 말은 않고 웃기만 하실까?' 그러는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아주머니께서 "아아∼ 그랑께 이 사람 베트남 사람이여, 여그 말은 못 알아 듣는당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 한 켠이 심하게 아려 왔습니다. '베트남 사람이라고!'

베트남, 아니 '월남'이라는 국호가 더 익숙한 나라. '안남미'의 나라. 우리나라처럼 분단국이었다가 마침내 통일을 이룩한 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한 민족. 프랑스와 일본, 미국과의 일 백여 년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라. 작지만 위대한 나라. 가난하지만 부러운 나라.

그러나 어렸을 때 내게 '베트남'은, 용감한 우리 국군이 가서 피 흘리며 도와줬어도 자기들끼리 국론분열을 일으켜 공산군에게 망해버린 어리석은 나라이자 그 결과로 공산치하에서 살기가 힘들어 작은 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싣고 바다로 도망 나와 이리 저리, 정처없이 떠돌다가 혹은 공산군에게 잡혀가서 죽고 혹은 바다에 빠져 죽어버린 불쌍한 국민들의 나라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가 절대 닮아서는 안 되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매주 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던 '배달의 기수'와, 매년 4월 30일의 월남 패망일, 6월 6일 현충일, 6월 25일의 6.25 기념일이면 어김없이 TV에 등장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공산군에게 패망한 나라 월남의 비참한 현실을 되풀이하여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라난 세대로서는 당연히 가질 법한 그런 베트남에 대한 인식은 그러나 대학을 들어가서 비로소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리영희 선생님의 '베트남 전쟁'과 류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누군가의 '호치민 평전'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관한 몇 권의 책을 통해 나는 비교적 소상히 베트남 전쟁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느 때인가부터 나는 마음 속 깊이 베트남과 베트남 민족에 대해 까닭 모를 부끄러움과 미안함 그리고 흠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사람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물끄러미 그 양반을 처다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묻어 나는 분위기가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약간 달라 보였습니다.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물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알아요?" "아, 나한테 말을 해주먼 내가 알아서 한당께"

그리고는 잠시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 졌습니다. 우선, 아주머니께서 그 분을 보며 손으로 자기 배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 그랑께 여그가 아프다 그 말이제?" 그 양반은 또 지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배 아프다고 하는 게 맞당께라" 아주머니께서 확신하며 제게 말씀하였습니다. 아주머니께 대답하는 대신 그 분을 보며 물었습니다.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는 안 아파요?" 끄덕끄덕. (토하는 흉내를 내며)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아요?" 끄덕끄덕(도리도리와 끄덕끄덕은 만국공통어입니다) (달력을 가리키며)"언제부터 아팠어요?" 갑자기 그 분의 입에서 서투른 한국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어∼어제부터.." 잠자코 보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끼어 들었습니다. "설사는 안 항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듯 그 양반이 그 큰 눈을 더 크게 떴습니다. 제가 (배를 아래로 쓸어 내리며) "설사는 안 하느냐구요?" 했더니 그 분이 다시 지긋이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더군요. 화장실에 세 번 갔다는 이야기로 알아듣고 진경제와 지사제를 내어 드렸습니다.

약을 내어 드리는 동안 아주머니께서 혼잣말처럼 그랬습니다. "이 사람덜 참말로 불쌍하당께, 하루 세 끼 밥만 묵고 살제. 돈은 회사에서 집으로 바로 부쳐분께 수중에는 돈도 한 푼 없고. 아프다고는 하는 것 같은 디 보험증도 없고 항께 우리 멫 사람이 돈 좀 보태서 약국으로 데꼬 온 것 아니것쏘 잉∼" "그란디다가 넷이 같이 있다가 어지께 둘이 즈그 나라로 가부렀당께, 긍께 기운도 없는 디다가 아프기까지 항께 조옴 서럽것쏘 잉∼"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기 전에 아주머니께 그랬습니다. "아줌마, 내가 베트남 대게 좋아한다고 말 좀 해 주세요" 그랬더니 아주머니께서 그 양반을 보며 "아따, 이 약사님이 느그들 나라 대게 좋아한단다" 그러시더군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나를 쳐다보는 그 분을 향해 "베트남" 소리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습니다. 역시나 지긋이 웃기만 하더군요.

태어나서 베트남 사람을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베트남 사람의 눈이 그렇게 깊고 그윽한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런 그들이 살고 있던 나라 베트남으로 미국은, 박정희는 자랑스런 우리 국군을 총칼을 쥐어 보냈더랬습니다. '자유 우방의 수호'라는 거창한 구호아래, '6.25 때 입었던 유엔의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연 인원 55만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전쟁터로 내 몰았습니다. 그 결과 5,000여 명에 달하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이국의 땅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귀하디 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뒤늦게 고통을 겪는 이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오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저질렀던 온갖 패악질이 만천하에 드러날 만큼 드러난 지금, 미국은 또 다시 그들의 추악한 침략전쟁터에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보내달라 하였고, 개혁으로 '분칠' 된 이 나라의 지도자는 흔쾌히 미국의 그런 제안에 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으로는 온갖 개혁과 평화와 민주를 입에 달고 사는 이 나라의 정신적 여당의 의원들은, 개개인의 소신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미국과 그들 지도자의 재촉과 안달에 그만 꿀먹은 벙어리가 된 채 아무런 저항없이 미국과 그들 지도자의 재촉을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우러르는 지지자들 역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은 그랬더군요. '특전사는 원래 대민 봉사가 주된 업무' 라구요. 그럼 묻겠노니 우리나라 군 편제상 '전투'가 주 업무인 부대는 무엇입니까? 민방위입니까? 향토예비군입니까? 그런 소가 웃을 소리를 뭐 하러 한단 말입니까?

처음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할 때도 그 첫 부대는 '대민 지원 봉사'를 주 업무로 하는 '비둘기 부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의 변화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점차 전투위주의 부대가 건너갔고 그 결과 생뚱없는 전쟁터에서 애꿎은 젊은이들만 무려 5,000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제 40여 년이 흐른 오늘, 우리가 다시 미국의 침략전쟁에 우리의 형제, 동생, 삼촌, 오빠, 아들, 그리고 남편을 보내야 할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그에 관한 책임있는 사람의 책임있는 답변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바라고?

다시 40여 년이 지난 후 내 아들이, 어느 날 문득 이라크 사람을 만났을 때, 오늘 내가 그 눈이 깊고 그윽한 분께 느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죄스러움을 다시 느끼게 하려는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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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29 [17: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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