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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사고 1주년, 살아남은 자의 슬픔
지하철 사고 1주년...그 전날 밤 대구...
 
박종호   기사입력  2004/02/17 [21:47]

대구의 저녁

대구 지하철 사고 1년 뒤

대구에 와서 발을 놓은 지 2년이 지나는가 보다. 전혀 생소한 지역에 와서 발을 놓고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이곳 대구도 나에게는 나의 발을 놓을 만한 그런 이유가 있었나보다. 어쩌면 떼어놓지 못할 그런 인연이라도 있었거나....

날이 따뜻하다. 이제 또 다시 시간은 흘러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우리곁에 찾아오는 가보다.

1년이던가? 그간 잊지 말자고 ....

그 현장의 진한 캐캐함과 목을 조이는 그 컴컴한 소리를 살아가면서 될수 있으면 잊지 말자고 뇌리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었다.

▲대구 지하철참사 당시 모습     ©박종호

그럼에도 불현듯 머리속에서 흩어지는 그 현장들이 지금 생각하니 또 아쉽기만 하다.

대구의 17일 저녁. 부산한거 같지만 외롭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도착지점이 없다.바라보고 싶지만 바라볼 수가 없다. 떠들고만 쉽지만 나오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같지만 흐르는 눈물의 번짐일 뿐이다.

대구의 저녁이 오늘은 울적하다. 슬프고, 가엾고 , 애처롭고, 가슴이 아린다. 떼는 발걸음이 이리 무거워서야 우리 인생 어떻게 살아가려나.

봄은 오는데 온다던 누이의소식도 없다.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에 간다던 딸의 모습도 없다.창녕으로 주말마다 아빠를 보러 갔던 그 생명도 보이지 않는다. 아빠로 하여금 눈물로 온 일기장을 메꾸게 했던 그 이쁜 딸의 모습도 없다.아직은 너무 어려 엄마의 죽음도 알지 못하는 철없는 두 아이의 엄마도 여기 대구에 없다.

그런데 이곳엔 있다. 뜨겁다고 애원하던  아내의 애절함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다고 휴대폰만 잡고 있던 아이의 외침이 있다. 대학에 가야하는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을 가던 아비의 흐느낌이 있고, 그 아비의 손을 잡던 어미의 절규도 이 곳엔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새 많은것이 변했다고 한다.많은 일이 있었다고만 한다.오늘 이 밤이 지나면 대구는 또 울 것이다.

이 곳. 저 곳. 여기 저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미안함과 살려주지 못한 못내 아쉬움이 무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우리의 의식수준에 목을 놓을 것이다.

나는 보았다. 내 등뒤에서 갑작스레 불어 닥친 뜨거운 열기와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 그 속을 헤집는 사이렌과 그 소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소방관들, 그리고 곧 실려나오던 그 환자들 그리고 한참 뒤에 죽은 자들의 시체들.

내게 복인지 아니면 그 무엇인지는 몰라도 바로 내가 방금 지나왔던 그 자리에서 많은 아름다운 이들이 형체조차 없이 사라졌다.

내가 福일까??

여직 살아오며 또 앞으로 살아가며 이 질문에 나는 어떻게 답을 구하고 살아야 할까?

대구는 나를 잡는다.곧 가려니 생각하지만 대구는 오늘도 나를 잡고 있다. 내가 생명의 빚을 지고 살아가기 때문일까?

18일 오전 9시53분이면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하늘을 향해 조용히 외쳐 볼 것이다.

"미안합니다....여러분. 많은 일들이 지나갔어요. 가끔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가끔 당신들을 잊고 살았읍니다. 아픔도 잊었고, 애절한 외침도 잊었읍니다. 지금 와 보니 많은 것을 바꾸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도 한 것이 없읍니다. 그러나,  또 하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러니 여러분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너무 울지도 말아 주십시오. 남은 자들의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저도 욕심을 부려보겠읍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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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17 [21: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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