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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본능들이 변하고 있다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 경영26
 
이동연   기사입력  2003/12/22 [14:38]

오늘날은 온통 성적 욕구의 방출로 온 세계가 들떠 있다. 영화배우는 물론 가수마저도 가창력 못지 않게 섹스 어필해야만 상품성이 있다. 이런 대중의 기호를 읽고서 한 몸매하는 연예인들 중에는 전략적으로 자신의 나신(裸身)을 처음에는 조금만 보여 주다가 점점 더 공개해가면서 대중의 시선을 잡아두려 한다. 

점잖은(?) 국회의원가운데서도 성 상납의혹에 몸살을 앓고, 심지어 세계에서 몇번째 안가는 대형 집단을 이끄는 거룩한 종교 지도자들 중에 여러 사람이 성욕을 절제하지 못해 음습하게 즐기다가 폭로되어 낯뜨겁게 변명하고 신문 지상에 오르 내리며 검사의 훈계를 듣는다.     
  
▲영화 [베터 댄 섹스] 중 한장면    
요즈음의 문화를 보면 마치 인간의 본능은 성욕 하나뿐인 것처럼, 인간은 머리부터 발끝가지 성욕으로 뭉쳐 있는 존재 같다. 정말 인간의 본능은 성욕뿐인가?

성욕이야말로 인간의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유일한 본능인가? 그러지 않고야 어찌 속세를 버렸다는 사람들, 나라의 어른이라는 사람들까지 성에 몸부림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단언하건대 성욕은 인간의 절대적 본능이 아니다. 현재까지 성욕은 인간 존재의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욕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머지 않아 성욕은 인간 존재의 필수 욕구가 아닌 선택 욕구로 떨어진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욕구가 있다. 그 다양한 욕구중에 어느 욕구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그 욕구가 마치 본성의 전부인 것처럼 작동하게 된다. 플라톤이 인간의 본원적 모습이라며 제시한 ' 영원한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본능'을 프로이드가 여지 없이 짓 밟아 버리고 인간은 오로지 '무의식의 성적 메카니즘에 의해 충동을 받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여기에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은 상담사. 심리학자, 정신과가 가세했고, 뒤이어 인문 학계등이 활발히 인간의 성적 본능을 대단히 긍정하며, 그 시각에서 사회와 역사를 재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성은 인류 최대의 담론으로 격상되었다.
   
이렇게 인류최대담론으로 부산된 인간의 유일한 본능이 성이라는 인간관에다 기름을 부은 사람이 얼마전 창립 50주년을 맞은 플레이 보이지의 '휴 헤프너'였다.

휴 헤프너는 미국의 은폐된 성을 자유롭게 풀어 준 성 혁명아이다. 당시  세계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던 미국에서의 성 혁명은 곧 바로 세계의 성 혁명이 된다.    

 '나는 지상에서 제일 운 좋은 사나이'라고 말하는 휴 헤프너, 77세의 나이임에도 '샹그릴라'라고 부르는 펜트하우스에서 7명의 미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호텔,  카지노, 모델에이 전시 등을 운영하며 대제국의 제왕처럼 살고 있는 그는 미국의 전형적인(WASP) 중산층 자녀로 태어났다.     

청교도적 엄격한 가풍을 지닌 감리교도의 가정에서 애정 표현을 나누지 못하고 자란   휴프너는 늘 일탈을 꿈꾸었다. 1953년 잡지사의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그는 누드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여러 출판사에 접촉했으나 거절당하자 혼자 누드 집인 플레이 보이지를 자기 집 부엌에서 만들었다.          

마침 영화 '나이아가라'로 인기가 수직 상승중인 마릴린 먼로의 사진 판권을 500달에 사 들여 창간호에 실었다.  헤프너조차도 플레이보이지의 초판이 얼마나 팔릴지 확신하지 못하고 연속해 발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창간호에 날짜도 찍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 밖의 반응을 얻자 자신감을 얻은 헤프너는 두번째 플레이 보이지에 스타가 아닌 보통사람의 누드를 싣는다. 플레이보이지의 판매 사원이며 자신의 여자 친구를 모델로 삼고 그녀의 사진 아래 출산사의 여 사원이라고 밝혔는데 빅히트를 쳤다.

헤프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당시의 청교도적 분위기, 즉 플라톤적 인간 이해를 강요받던 시대의 뒷면을 읽었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지가 창간되던 1953년도는 인간의 하부구조(下部構造)를 물질로 파악하고 있던 소련과 그 위성국들에 맞서던 플라톤적 청교도의 나라인 미국에서 한참 메카시 선풍이 휘몰아 치던 해였다. 
  
헤프너는 미국정계의 메카시즘으로 위장한 정치적 암투,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한다는 명제를 표면에 내 걸고는 있으나 그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일탈의 열망을 읽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미국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플라톤과 프로이드가 국가 경영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었다.
  
프로이드는 차라리 막스에 가까우며 플라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아담 스미스에 가깝다. 플라톤적 청교도 정신 위에 세워진 미국정부와 프로이드적 인간관에 물들어있는 미국 문화사이의 갭을 헤프너는 간파한 것이다.     

당시미국에서의 플라톤적 청교도주의는 껍대기로만 남아 있었다. 이미 모든 국민들은 프로이드의 이론에 경도되어 '인간이란 뜨거운 성애(性愛)를 하루에도 수백번씩 상상하고 사는 존재'라고 믿고 그 믿음 때문에 성적 자유을 꿈꾸는 미국인들의 내면을 헤프너는 현실세계로 노출시켰다.
 
이리하여 성 혁명의 대명사, 프리 섹스의 전도사가 된 헤프너야 말로 어느 정신과 의사들 못지 않게 프로이드의 진정한 제자였다.

▲성인잡지 [허슬로]의 발행인 래리 플린터  
여기에 래리 플린터가  저질 포르노를 지향하는 '허슬러'를 발행하면서 고혹적 자태를 드러내는 글래머들의 사진 사이 사이에 카스트로나 사르트르 같은 거물들의 인터뷰를 배치했다.
  
그 인터뷰의 앞 뒤로는 최 고급 오디오, 패션, 자동차들의 광고를 삽입하여 소위 지식인과 중산층들의 허위의식을 교묘하리만큼 날카롭게 드러냈다. 얼마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까지 뛰어든 래리 플랜트는 뛰어난 장삿꾼 답게 '레리 플런트의 역설'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살인은 불법이고 섹스는 합법이다. 그런데 전장에서 살인 장면을 찍어 뉴스위크에 실리면 퓰리처 상을 받는다. 그러나 섹스장면을 찍으면 감옥에 간다.  섹스와 살인, 과연 인간 세상에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
    
레리 프랜트의 역설은 나름대로  인생의 이면을 꿰둟는 통찰이 담겨 있다. 단지 자신이 벌여 놓은 성 산업을 옹호하고 변명하려는 의도를 빼 버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 정작 사안의 경중에 비추어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판을 깨고 관계를 악화시키며 상황을 왜곡하는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서구 자본주의는 표명하고 있는 정치 이념과는 전혀 다른 인간해석을 하고 있다. 서구문화는 철저히 인간의 인격형성과 상황판단, 행동결정의 역동적 근원(dynamic motive)은 성욕이라고 가설을 세운 프로이드를 받아 들였다. 이렇게 생겨난 이념과 문화의 이중성을 휴 헤프너가 드러냈고, 겉과는 다른 문화의 속살을 래리 프랜트가 다시 노출시켰다. 
 
헤프너는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는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나는 내 시대에 섹스를 가치롭고 긍정적인 일로 만들었다. 우 하하하, 내가 이겼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헤프너의 승리가 단 50년만의 승리가 아니라 몇 세대를 거쳐가는 역사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성적본능이 절대 유일의 욕망으로 계속 존재해야만 한다. 인간은 성 없이는 살 수 없는가?

과연 인간에게는 성만이 제일 중요한 본능인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누구도 그 질문에 '노'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인간에게는 성욕 못지 않은 아니 그 보다도 더욱 원초적 본능이 있다. 더 나아가 분명히 성욕은 더 이상 인류 보편의 본능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 매니아에게 국한된 즐거운 잡기(雜技)로 전락할 것이다. 곧 잡기로 전락할 성욕때문에 인생을 망가 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인간이라는 종(種)이 전체가 보편으로 가지는 절대적 본능이라면 어느 조건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 본능은 과연 무엇일까?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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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2/22 [14: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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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6/07/06 [19:14] 수정 | 삭제
  • 프로이트를 위시한 서구문명과 성산업의 연결은 좀...허접하네요.

    '프로이드=섹스'?

    그 후 융 심리학이라기 보다는 융의 '무의식'에 근간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왠지.....도덕주의 냄새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