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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지배할 신들, 그 미래 신들의 이야기
[생명창조시대의 자기경영 38] 남신의 시대는 가고, 지금 신화는 혁명중
 
이동연   기사입력  2004/08/06 [23:03]
인간도 꿈을 꾸고 사회도 꿈을 꾼다.
인간은 무 의식의 꿈을 꾸고 사회는 집단의 꿈을 꾼다.
개인의 꿈과 집단의 꿈이 조화를 이룰 때 그 개인은 그 집단의 사회에 잘 적응하고 효과적인 삶을 산다.

그럼 어떻게 개인의 꿈을 집단의 꿈을 일치시킬 수가 있을까? 
개인의 꿈은 성취되지 못한 삶의 트라우마 덩어리-정신적 상처들- 인데 어떻게 집단의 꿈과 일치시킬 수가 있을까?
   
수직형 문화에서는 삼각점의 꼭지점을 위해 하변이 추구하는 자유를 광기라는 이름으로 매도했다  

다행히 원시부터 누적되어온 개인의 집단 무의식을 언제나 억압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던 계층 구조적 문화가 수평형 문화로 일대 전환하면서 개인의 집단 무의식과 사회의 집단의식이 하모니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다.
   
매 시대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집단적 꿈이 있다.  
이 집단의 꿈이 그 시대의 신화이며 그 신화가 시대가 품는 꿈의 내용을 정해 준다. 

강가에서 최초의 원시적 도심문명이 시작될 무렵에 정립된 고대 신화들, 수메르 신화, 인도 신화, 그리이스 신화, 가나안 신화 등은 농경 사회, 산업 사회 등을 거치며 어느 문명에든지 나름대로의 타당한 꿈의 내용을 제공해 주었다.
  
어느 문명이든 그  문명의 주도 세력들은 언제나 신화의 유리한 부분을 취사 선택해 신화적 배경을 원용하였으며 대로는 자신들의 입지를 신화로 각색해 대중들을 집단 마취시켰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신들의 이야기가 난무했고 무계사회에서는 남신들의 놀이터였다
    
미군의 침공으로  위대한 인류 문명의 수 많은 유산을 파괴당한 이라크의 티그리스 강변과 유프라테스,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이며 이 강들은 여신(女神)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지구 문명의 자궁인 그 강가에서 여신은 곧 대지이고 강물이었으며 하늘이며 우주였다. 이 여신들이 뒤로 물러가기 시작한 까닭은  B.C 4000년경부터 유목민들이 몰려 오면서 호전적인 남신(男神)들이 점차 우위를 점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지나며 난폭한 성격의 바벨론의 마르둑(Marduk), 모든 신들의 아버지라는 가나안의 엘(El)과 그의 아들 바알(Ball). 전투적이며 정복욕이 강한 히브리의 야훼(Yahweh), 유목민인 인도-유럽어족의 신이었다가 그리스의 주신(主神)이된 바람둥이 제우스(Zeus)등이 탄생한다.
   
남자 신들의 공통점은 번개와 벼락을 주무기로 가는 곳마다 정복하며 여신들이 이미 창조한 세계을 교묘히 재 창조해 창조주 노릇을 한다.      

이처럼 어머니 신이 물러나고 아버지 신으로 채워진 농경사회는 세상 만물에 대한 자비대신, 자기 그룹내의 자비, 즉 폐쇄된 자비의 사회로 변한다.  
   
수평과 연합의 신화는 점차 힘을 잃고 수직과 지배의 신화가 힘을 얻으면서 가문을 빛내고 자기 이름을 빛내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신화가 농경사회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나마 농경사회의 남신들은 그룹내의 도리(道理)라도 강조하였으나 산업사회의 남신들은 오직 개체의 이익만을 위한 존재가 되었다.
  
산업사회의 남신들은 거의 예외없이 물신화(物神化)되어 있다. 
가나안 신화의 후손인 기독교, 힌두신화의 자매인 불교등 고대 신화의 담지자들이라는 종교들도 물신의 그늘에 덮여 물량적 확대가 마치 종교의 본질인양 선전해 대고 있다.

이처럼 이 시대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신은 물신이다. 물신은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세계인들로부터 경배를 받고 있다.
   
세계 최초의 신화는 애니미즘(Animism)에서 출발했다.
애니미즘의 신은 누멘(Numen)적이다. 라틴어인 누멘은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지닌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실재이다.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지닌 누멘적신 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이원성을 초월한 신이었으며 이 신들이 여신으로 진화하였다가 다시 남신으로 우뚝 솟았다     
   
21세기가 들어서면서 이 남신들의 세계가 저물어 간다.
남신들이 설치던 문명에 의해 억눌려 왔던 여신의 신화, 보다 더 고래의 누멘적 신화들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속에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이러한 개인들의 집단 무의식이 물신으로 표상되는 남성 신들의 광기어린 굿판으로 억눌려 있으면서 표출될 기회만을 엿보다가 기존의 거대담론들이 해체되는 시대를 만나 바로 그 억눌렸던 신화의 회복을 꿈꾼다. 그래서 지금의 신화는 혁명중이다.
   
그 혁명은 우선 남성위주의 신화에서 여성의 신화들로 거슬러 올라 갈 것이며 다시 여성 신에게서 누멘적 신화로까지  올라 가면서 과학이 밝혀가는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의 행복을 위한 최대 공약수들을 스토리로 풀어낼 것이다 
   
남성도 아닌 여성도 아닌 모든 이원성을 초극하는 누멘적 신화에 다 다르기까지는 우선 모성신적 신화가 다시금 인류의 보편가치로 자리잡을 것이다.
  
신화는 인간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이며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내면의 동기이다. 따라서 문명은 신화다.  

따라서 집단의식인 신화와 발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당대사회와 무난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다. 지금 변해가는 신화의 편린을 약 2세기전 미합중국 정부가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했을 때 그 추장이 답변한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시애틀 추장의 편지]  "어떻게 땅과 하늘을 사고 팔 수 있나?"

우리에겐 이 생각은 너무 생소하다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 
       
이 땅, 하나 하나가 우리에겐 모두 신성하다.
반짝이는 솔잎 하나, 해변의 모래알.
숲속의 안개 자욱들, 찌르르 노래하는 풀벌레 한마리 까지 모두 신성하다. 
나무의 수액은 우리 혈관의 피와 같다.
우린 이 땅의 일부이며 땅은 우리의 일부이다.
       
향기나는 꽃은 우리 누이, 
곰 사슴, 독수린 우리의 형제.
바위, 험한 산 봉우리, 숲 이슬, 조랑말의 체온, 사람들 모두가 다 한 가족이다. 
맑은 호숫물에 비치는 형상들은 우리 삶의 기억을 말해 주며
흐르는 물의 나지막한 소리는 내 아버지의 음성이다. 
      
강도 우리의 형제.
마른 목을 적셔주고, 카누를 옮겨 주며 아이들을 먹여준다.
그러니 당신들은 형제를 대하듯 강을  대해야 한다. 
       
우리가 땅을 당신에게 판다면,
공기가 모든 목숨있는 것들에게 소중함을 기억하라.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이 바람은 우리 자녀들에게도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우리가 우리 자식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단신들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칠건가?
땅은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땅이 사람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의 것임을. 
우리는 안다. 모든 사물은 우리 몸의 핏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은 인생의 직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실 한가닥일 뿐임을.
       
우리에게 당신들의 운명은 수수께끼이다. 
들소를 모두 몰살하면 어떻게 될까?
야생마들 다 길들이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숲속의 신비한 곳곳마다 사람 냄새로 가득하고
언덕마다 전화줄로 뒤엉킨다면 어떻게 될까?
독수리는, 귀뚜라미는 어디에 살까? 
      
마지막 붉은 인간-인디언-이
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 추억이 초원을 지나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에도
이 숲과 해변은 여기 있을까? "
 
부성적 신화의 시대가 모성적 신화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여신은 대지와 같다. 대지가 식물을 낳고 그 식물은 동물과 인간을 기른다.

21세기를 서서히 지배할 모성적 신화는 위에 간략히 옮겨놓은 시애틀의 추장의 글에 보여진 인디언의 심성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인디언의 심성은 공산사회에서나 가질 법하다. 맞다 역사적 의미에서의 원시 공산사회가 인류 문명의 방향이다. 물론 거기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 하며 좀더 세련되고 좀더 현실적 작동원리가 가미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패권주의나 수구적 권위주의, 교묘한 자본의 논리를 들이밀며 역사의 진행을 가로막으며 자꾸 구시대로 퇴행하는 구태의연한 구석기형 지식인들, 언론들, 정치인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 사람들은 자기자신들의 취향과 방향이 지금 시대의 신화와 불화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깨달으려면 시대불화의 대가를 더 처절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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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06 [23: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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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종현 2004/10/13 [20:08] 수정 | 삭제
  • 지난번 대구에서 강연과 저녁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연대의 틀을 게속 연구해야겠지요
  • 헤롯 2004/10/05 [06:05] 수정 | 삭제
  • 대형교회사람들 우루루몰려와 조용기목사의 인도로
    궐기하는 모습보니 남성신 수하들이더군요
  • 산악인 2004/09/22 [14:19] 수정 | 삭제
  • 재미있에요
    오늘에야 이글을 소개받고 읽어보는데 깨소금..
    매일 한편식 아래로 쭈욱 읽어 볼깨요
    공자로 좋은글 내놓으심 감사..
  • 봄비 2004/08/24 [13:39] 수정 | 삭제
  • 기독교 불교 이런거 말고
    좀 쌈빡한 종교 하나 안 나옵니까?
  • 열렬팬 2004/08/08 [05:57] 수정 | 삭제
  • 종교권력도 교체되겠군요
    대형종교로 헌금챙기고 목에 힘주고 다닌 종교는 다 가라
    나긋나긋한 모가지로 누구에게나 친근한 신을 만나고 싶다
    옥필에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