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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브르주와(bourgois)여, 브르주아들이여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경영 36
 
이동연   기사입력  2004/04/07 [16:47]

브루주아는 통상 자본가들인 유산계급으로,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들인 무산계급으로 분류한다.  이는 브루주아의 탄생이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어인 부루주아는 봉건 말기에 경제적 파워를 갖게 된 신흥 자본자들을 지칭했다.

당시의  브르주아들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의 계몽 사상가들의 철학을  전통권력인 욍족과 귀족들에 대항하는 윈리로 삼는다.

자율과 이성, 평등을 모토로 한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브르주아들과 피 지배 평민들은 억눌렸던 비판 의식을 분출하며 프랑스 대 혁명을 일으킨다.
 
당시 혁명군이 불렀던 진군가 '라 마르세예즈'는 지금 프랑스 국가(國歌)가 되었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과 딸이여
영광의 날이 왔다
  ...
무기를 들어라. 대오를 따르라
나가자, 나가자, 우리 모두
폭군의 피로 옷 소매를 적시자'
  
상상해 보라.
저 한 맺힌 노래를 부르며 대 연회를 열고 있던 바르세이유 궁전을 향해 달려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프랑스 혁명의 주인공들은 시민-상인. 수공업자. 변호사. 문필가. 하급관리-과 농민, 노동자 들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이 끝난 후 권력의 핵으로 부상한 세력은 시민들, 즉 브르주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역사는 반복되나 보다. 4.19혁명, 광주 혁명, 6.10 시민항쟁 등이 일어 난 후의 한국에도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었다. 혁명과 항쟁에 동참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낸 민초들의 이익은 간데 없고 몇몇 명망가들과 기존의 기득권 대 다수가 다시 결합해 이익을 챙겨 갔다. 

앞으로는 이처럼 재주는 다 같이 부리고 공은 한쪽만 차지하는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혁명후의 브르주아 세력들이 돈과 권력을 움켜 쥐면서 계몽성은 사라지고 대신 낭만주의가 도래하게 된다.       

그러나 원래의 브루좌적 인간은 본래는 낭만주의가 아니라 계몽주의의 형제였다. 권력의 아웃 사이더였던  브루좌적 인간들은 계몽의 사명감을 가졌었다. 자신의 천부적 권리를 빼앗기면서 빼앗긴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 도리어 귀족과 황제, 사제들에게 무한 충성을 바치면서도 충성 행위 그 자체를 감읍해 사는 사람들에게 평등을 가르쳐 주고 자율을 가르쳐주는 소명의식을 가졌었다.    

이런 계몽주의의 기본 원리를 칸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성의 자율(autonomy)을 누리는 것'이라 말했다.

이성의 자율은 무엇인가?
인간의 미 성숙상태, 즉 누군가의 지도 편달없이는 스스로 자신의 이성을 구사할 수 없는 미 성숙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성의 자유는 언제나 소위 '...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황제로 부터의 자유, 교황으로 부터의 자유, 교리로 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황제나 교황이 누구든지에 관계없이 그런 사람의 우산 아래들어 가면 분명히 안전은 보장된다.

칸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고 그 안전의 댓가로 내 이성의 자율을 반납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을 끌어 내려 했다.  권력에게 억눌리던 시절의 브르주아들도 이성의 자율이라는 대의명분을 감명하여 대중을 계몽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다.  
  
여기서 이성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마치 오늘날 자본의 힘에 경도된 계산 이성(calcaurating reason)을 계몽주의가 말한 이성의 전부라는 판단은 금물이다.

부르주아가 태동할 당시의 계몽주의자들 역시 '계산 이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지금처럼 인간을 이기적 동물로 격하시켜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현실을 분석하는 비판적 이성(critical reason)으로 당시의 교회와 국가에 대한 타율적 예속관계의 극복하려 했고 비판적 이성의 목표는 보편적 이성(universal logos)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보편적 이성의 로고스는 세계 운동의 원리이다.

로고스는 만유 안에 편재해 있으며 각자안에 있다.  그 표시가 양심이며 윤리의식이다. 보편적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란 우리의 양심, 윤리 의식을 따라 사는 사회이다. 물론 계몽주의적 양심은 평등과 자율이다  
    
브르주아 혁명은 계몽주의 혁명이었고 계몽주의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이처럼 초기의 부루주아는 봉건주의의 권위 체제와 항거해 타율적 인간을 자율적 인간으로 진보시킨 쾌거를 이루어 냈다.
 
권력의 소외지대에  떨고 서 있던 브르주아들은 계몽주의 이념과 결합하여 브루주아를 억눌렀던 세습 특권층을 해체하였다. 그러나 그 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즉 권력 중심이 된 브르주아들은 대중을 선동했던 계몽주의 이념을 던져 버렸다. 함께 혁명에 동참했던 대중들은 또다시 민중으로 돌아 와 뼈아픈 배신감을 감내하여야 했다. 

필자는 계몽주의 이념 모두를 다 받아 들이지는 않지만 브루주아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자율의 용기와 평등만큼은 높게 평가 한다. 계몽주의적 브르주아들은 계몽의 모토로 당시의 하늘의 질서를 대변한다는 교권(敎權)과 그 교권을 모사한 정권(政權)의 계층적 구조의 사회를 뒤집어 엎었다. 

그후 초기의 브르주아는 먼저 종교에서 수직적 차원을 없애고 수평적 차원 만을 남겼다.  교권을 수호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최후 심판과 지옥은 없어져야 했으며 은총이나 기도 같은 초월적 연결고리도 사라져야만 했으며 오직 인간의 자율적 이성만 남겨 주었다.          

계몽주의적 브르주아 인간들은 점차 교권과 정권에 대한 투쟁의 목표가 사라지고 잊혀지면서 계몽의 내용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평등에 대한 신념을 망각한다.

평등이 빠져 버린 자율은 권력을 선점한 자의 자유일 뿐이다. 베르사이유의 평등 없는자유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브르주아들이 다시 베르사이유 궁정만의 자유를 누리려했던 것이다.      

이처럼 권력을 잡은 브르주아들은 점차 비평이성과 보편이성을 인간이성의 범주가운데서 슬그머니 빼 버리고 자유와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계산 이성'만 남겨 둔다.

'계산 이성'에 매몰된 브르주아들은 칸트의 언급처럼 계시종교도 이성종교(reasonable religion)로 변질시켰다. 세계 내적 경건주의(inner-wordly)는 무시하고 세계 외적 경건주의(extra-wordly)를 찬양 고무하였다. 
현실을 개혁하고 변혁하는 치열한 경건은 접어두고 수도원적 형태의 고상한 이성종교를 추구한다.   

문화나 예술의 형태도 개혁의 내용을 띠면 갑싼 정서주의(情緖主義)로 매도된다. 오직 자극의 최고봉에서 터지는 눈물흘릴 황홀한 일을 찾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브르주아 경향의 문학 작품들에는 '운다'라는 동사가 많이 나온다.  놀라서 울고 좋아서 울고 신기해서 울고 황홀에 마취되어 계몽의 치열함은 잊어 버린다.     

부르주아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Burger이다. Burger들은 중세기의 성(城)내에 살던 사람들로인. 성주의 친척이나 시종들로 성주를 받들고 마을의 농부들의 각출해 먹고 산다.

인간의 이성을 자본으로 계산하고 그 자본으로 사회를 조절하여 더 많은 자본을 끌어 안으려는 현대판 브루주와는 더 이상 프랑스 혁명을 함께 일으켰던 Bourgois는 아니라 바로 Burger들이다.

이 Burger들은 자율과 이성, 평등의 계몽 내용은 없다.

오직 초기 브르주아들이 가지고 있었던 계몽의 형식만 폼으로 자유롭게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지니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을 기억하자
'컨텐츠가 없는 폼으로서의 계몽은 늘 실체 없는 이미지로 만 끝난다.'
'컨텐츠 없는 이미지으로서의 계몽은 언제나 기회주의적이다.' 
'컨텐츠 없는 기회주의로서의 계몽은 더 큰 배신감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냉소와 회의를 남겨 놓는다.'

특별히 자기에 엄격한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사람들은 대개 다 변한다. 프랑스 혁명의 브르주아들이 burger로 변하듯, 오늘 개혁을 외치고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burger가 안 된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어느 개인에 대한 전적 올인보다는 개혁적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와 그 프로그램의 이행을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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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07 [16: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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