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쇠고기 수입시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집착은 병적이다.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자동차와 함께 쇠고기 수입확대를 압박했지만 이명박 정권을 설득하지 못해 잠시 물러난 듯하다.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선결조건의 하나로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가 농민-시민단체의 반발로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정권 또한 FTA 조기비준을 노려 광우병 위험을 무시하고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의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가 서울의 밤을 촛불로 뒤덮었다. 미국이 국민적 저항을 목도하고도 닦달하는 이유는 미국인이 안 먹는 뼈, 내장 따위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9일 밤 청와대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한-미 FTA 긴급장관회의가 열렸다. 여기에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참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의 참석은 회의의 성격을 말하고 남는다. 2008년 4월 쇠고기 협상 대표를 맡았던 민동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보가 그즈음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 발탁된 사실도 시사점이 크다. 그럼에도 10월 8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통상장관회담을 가진 뒤 쇠고기 문제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토머스 도나휴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론 커크 USTR(미국무역대표부) 대표로부터 들었다는 말은 아주 다르다. “이번 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는 부차적인 논의사항으로 3/4 정도 진행됐고 소소한 조정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옳다면 김 본부장은 국민을 속인 것이다. 지난 9월 다르시 배터 미국 농무부 부차관보가 미국축산육우협회 대표단과 만나 연령제한 없이 모든 부위의 쇠고기를 수입토록하고 관세 40%도 철폐토록 하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이 발언 또한 쇠고기는 거론하지 않았다는 김 본부장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미국이 쇠고기를 FTA와 묶어서 관철시키려는 의도는 맥스 보커스 미 상원 재무위원장 때문이다. FTA가 미국 의회비준을 얻으려면 상원 재무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관문에 그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 목축업 주산지인 몬태나 출신이다. 2006년 12월 4~8일 한-미 FTA 의제와 연관이 없는 그곳에서 5차 협상이 열렸다. 협상단이 비행기를 3번이나 갈아타고 또 버스로 달려 26시간만에 도착했다. 미국이 영하 20도의 오지로 협상단을 부른 속내가 금방 드러났다. 바로 그가 취재기자단 앞에 나와 쇠고기 시식회를 갖고 살코기 이외에 뼈, 내장을 수입하지 않으면 FTA 의회비준이 어렵다는 점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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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도축장의 작업전경. 대형 기계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특정위험부위인 뼈 조각들이 혼입될 수 밖에 없다. © KBS 스페셜 제공 |
그 뒤에는 지구적 규모의 농축산물 생산-가공-수송-저장-유통체제를 구축하고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transnatioal agrifood complex)들이 도사리고 있다. 카길은 세계최대의 비상장 개인기업이며 WTO(세계무역기구) 농업분야의 설계자로 알려졌다. 카길은 13억 인구의 식량시장을 겨냥해 중국의 WTO 가입 위해 로비활동도 벌였다. 카길은 미국 곡물수출의 25%를 차지하고 미국내 육류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타이슨 또한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이다. 미국 최대 쇠고기 생산업자이자 돼지고기 가공분야의 2위인 IBP를 2001년 인수함으로써 세계최대의 육류 생산-판매회사로 떠올랐다. 소만도 1주일에 13개 공장에서 17만1,000마리를 도축한다. 카길과 타이슨은 종자에서 소매상까지 수직적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세계식량시장을 재편해 왔다. 노 정권이 쇠고기 시장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갈비통뼈가 발각되어 반송되었는데 주로 카길과 타이슨 제품이었다.
광우병을 이유로 중국과 호주는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20개월 미만, 대만은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입국인 멕시코도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시장에 유독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한국은 가죽만 빼고 살코기, 내장, 뼈, 피 등 모든 부위를 먹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살코기도 주로 20개월 미만만 유통되고 내장도 간만 먹는다. 미국인이 안 먹고 사료로 쓰거나 버리는 부위를 한국에 팔겠다는 소리다.
뽈떼기라는 대구 머리탕이 비싸게 잘 팔리자 1990년대초 미국은 대구머리 수입개방을 압박해 성사한 적이 있다. 이 또한 미국인이 먹지 않는 부위다. 그 즈음 중국한테는 닭발을 수입하라고 통상압력을 넣었다. 미국인은 닭의 다리, 날개, 몸통만 먹는다. 쇠고기 추가개방은 공돈이나 다름없는 돈이 생기니 통상압력이 그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