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고개 숙인 오바마에게 열흘 간의 아시아 4개국 순방길은 고마운 탈출구다.
자신의 리더십이 왜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됐는지, 그동안 말(言)만 너무 앞세운 것은 아닌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곰곰이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재충전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코끼리 군단(공화당 상징)의 위세와 민심의 비아냥으로부터도 잠시나마 눈과 귀를 닫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완패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 오바마로서는 순방 기간 내내 '귀국 이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지형 변화로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앞으로 상생(相生) 정치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머리가 아플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이번 선거에서 확인된 '경제를 살려내라'는 성난 민심부터 달래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은 오바마의 임기 후반기 최우선 국정과제인 동시에 차기 대선에서 재임 성공 여부를 가를 중대 요소다.
사실 향후 5년내 수출을 2배로 늘리겠다는 오바마의 대국민 약속도 차기 대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일단 오바마는 큼지막한 '귀국 보따리'를 국민들 앞에 내보이는 것으로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계산을 한 것 같다. 순방에 앞서 오바마는 마치 인도, 인니, 한국, 일본 정부에 들으라는 듯 이번 방문의 목적을 밝혔다.
"아시아 시장을
개방시켜 미국 기업의 번영과 미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미국 상품의 수출확대와 무역장벽 해소책 등을 집중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해당국가의 양보를 이끌어 내겠다는 압력성 발언에 다름 아니다. 오바마 자신의 정치적 활로 모색과 자신에게 등 돌린 국내 여론을 달래기 위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선물'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어찌됐건 오바마는 첫 방문국인 인도에서 미국내 5만개 일자리 창출 효과와 맞먹는 100억달러에 달하는 20건의 무역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머지 방문 국가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인 셈이다.
우리 정부로서도 오바마의 방한 기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원만히 매듭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오바마는 지난주 NYT 기고문에서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의 자동차 업계와 근로자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타결 쟁점을 매듭짓겠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무역협정은 제대로 된 조건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한국 시장에서 미국 상품은 판매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미 FTA는 수백억달러
규모의 수출 증가와 미국내 일자리 수천개의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는 한.미 FTA를 타결짓겠다는 오바마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국가 이익과 국내산업의 피해를 무시하면서까지 정치적 타협을 선택할 수는 없다.
천안함 사건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한미동맹 관계가 돈독해졌다 하더라도 지난 2008년 쇠고기 협상을 서둘러 추진했다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때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쇠고기는 불가하고 자동차 부문에 대해서는 타협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 같다. 다만 G20 서울 정상회의라는 시간표에 맞춰 촉박하게 이뤄지고 있는 양국의 FTA협상이 적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아쉽고 조급한 쪽은 탈출구 찾기에 바쁜 오바마 아닌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마이 웨이'를 고수했다 낭패를 당한 오바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민심의 현주소를 냉철히 살펴야 한다.
국민보다 너무 앞서가도 안되지만 만일 국민들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반걸음 물러서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