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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미국의 영원한 호구인가?
파병에 돈까지 내라는 야만적 요구, 단호히 거부해야
 
권태윤   기사입력  2003/09/25 [23:37]

▲김경수 만평 [파병과 명분]     ©뉴스툰
부시 미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피의 코미디’를 계속하고 있다. 유엔의 승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라크 침략을 감행했던 부시 대통령이 뒷감당이 힘들자 이제는 유엔을 이용해먹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전투병 파병은 물론이고 그 숫자까지 제시하고 있다.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가 “미국이 기대하는 이라크 파견 한국군 규모는 5000명 선이며 파병 여부를 10월 중순까지 결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숫제 강압이다. 명분도 없는 전쟁에 비전투병을 파병한 것도 모자라, 이제 자신들이 두들겨 팬 사람 자기 대신 때려주라며 협박하는 꼴이다.

게다가 문제는 전투병 파병과 운용에 따르는 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감사에서 “이라크에 1개 여단 3000여명을 1년간 파병할 때 2000억원 규모가 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파병을 하게 되면 정부 예비비나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야 할 판이다. 결국 싸움은 누가하고 뒷감당은 엉뚱한 이가 목숨 내놓고 빚까지 내서 부담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황당하고 무례한 짓은 하지 않는다. 미국정부의 도덕성과 양심이 지금 얼마나 형편없이 더럽혀졌는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자살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 허튼 조사위원회에 증거로 제출된 이메일을 통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비서실장이 전쟁의 명분으로 활용된 이라크 대량파괴무기(WMD) 보고서의 ‘내용 변조’를 지시한 사실이 영국언론들에 의해 확인됐다고 한다. 미국 역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생산했다는 증거는 물론 생산 후 시리아 등 제3국으로 옮겼을 가능성에 대한 그 어떤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스스로 잘못된(의도된) 정보를 마음대로 해석해 무모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이제 상식 축에도 못 끼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두고 갈등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두고 명분이냐 국익이냐를 따지는 모양이지만,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명문은 물론이고 국익을 위해서도 전혀 득 될 것이 없다. 만약 전투병을 파병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그것은 미국 스스로 얼마나 치졸하고 지저분한 나라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침략전쟁이 일방적으로 끝난 후에도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계속되고 미군 사상자가 늘어나,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부시정권을 대신해 바보 같은 희생양이 될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진정한 주권국이라면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우리 돈 써가며 우리의 젊은 생명을 사지로 내모는 짓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문제는 명분이나 국익이 아니라, 생명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보복은 반드시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온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고 보면, 지난번의 9.11테러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지른 더러운 전쟁과 음모의 대가일 뿐이다. 그런데도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아무런 증거도 없는 혐의를 멋대로 덮어 씌워 상대도 안 되는 나라를 침략해 숱한 생목숨을 끊어놓은 미국이, 이제 와서 유엔을 찾고, 남의 나라더러 군대를 보내라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생명은 그 어떤 민족, 그 어떤 나라의 국민이든 다같이 소중한 것이다. 자기 국민들 죽음을 이용해 또 다른 무고한 타국의 생명을 도륙하는 야만의 국가에게 언제까지 굴종만 해야 한단 말인가. 타인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나라의 부름에 응해 우리의 젊은 목숨을 내보내는 것은 아무리 큰 국익이 주어진다 해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생명의 존엄이 붕괴되고 하찮은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948년 선포된 세계 인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 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제 30 조에는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한다면, 유엔이 선언한 인권선언을 위배하는 것이요, 스스로 생명의 가치를 무시하겠다는 ‘야만국가 선언’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과 이상을 아무리 분리해서 생각하더라도 이것은 정말 아니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http://www.pen21.com/)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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