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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죽어버렸나? 다시 ‘하나님'을 생각함
[정연복의 민중신학] 사람을 속박하고 노예화하는 하나님은 죽어 버려야
 
정연복   기사입력  2007/12/02 [20:34]

1. 200그램 죽 속에 있는 하나님
 
 “매일 낮 열두 시쯤 그 찌는 듯한 열기 속에서 하나님은 내게 오신다. 200그램 죽의 모습을 하시고.”
 
 인도의 한 여성 신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녀의 이런 하나님 고백은 전통신학에서 이야기하는 전지전능하고 거룩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깔아뭉개는 신성모독적 발언인가? 자신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는 “200그램 죽”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느끼는 그녀의 소박한 생활신학은 세련된 종교언어로 추상적인 신학적 개념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들의 이론신학보다 열등한가?
 
 그녀의 하나님 고백 한마디 한마디에 담겨 있는 뜻을 조용히 묵상해 보자.
 
 “매일 낮 열두 시쯤 그 찌는 듯한 열기 속에서.”
 
 그녀에게 하나님은 어느 날은 존재했다가 어느 날은 존재하지 않아도 그만인 명멸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매일” 하나님을 느낀다. 그 느낌이 있기에 그녀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 가운데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하나님은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그녀를 하루하루 살게 하는 구체적인 생명의 힘이다.
 
 “하나님은 내게 오신다.”
 
 그녀의 생활신학은 1인칭이다. 그녀는 하나님에 “관해서” 3인칭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그녀의 하나님 고백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신학적 유희가 아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울부짖었듯이, 그녀에게 하나님은 “내게” 오시는 하나님이다. 저 하늘에 초연한 모습으로 계신 초월적 하나님이 아니라 “매일” “내게” 오시는 다정한 하나님이다.
 
 “200그램 죽의 모습을 하시고.”
 
 그녀의 신학은 추상적이며 관념적이지 않다. 물질적이며 구체적이다. 그녀의 신학은 거창하고 현란하지 않다. 그야말로 작고 소박하다. 그녀는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세련된 종교언어를 동원하거나 교리를 들먹이지 않는다. 그녀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기 위해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다. 그녀는 그녀를 살게 하는 “200그램 죽”에서 생명의 하나님을 느낀다. 그녀의 삶과 하나님은 아무런 거리를 두지 않고 밀착되어 있다. 하나님은 “200그램 죽의 모습”으로 그녀의 삶과 동행한다. 아니, 하나님은 “200그램 죽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말없이 먹혀 그녀의 여린 생명을 지탱시켜 준다. 하나님은 그녀의 밥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밥이다. 하나님은 공허한 관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밥으로 오셔서 그들을 살리시는 물질이다. 하나님은 세상살이에 지쳐 절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오셔서 그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정신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정한 친구로 오셔서 그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지시는 따뜻한 손길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그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신다. 하나님은 예수, 성령, 전태일, 마더 테레사 수녀, 문익환 목사, 그리고 “200그램 죽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과 사랑과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이루어 가신다.     

 다시금 묻는다. 그녀의 하나님 고백은 신성모독인가?
 
 대만의 민중신학자요 문화신학자인 송천성은 말한다. “삶 자체가 신학의 원자료다. 신학은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요인들을 다루어야 한다. 신학적 두뇌로만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들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문제라면 그 어떤 것도 신학에 부적당하거나 중요성이 없다고 판결해서는 안 된다. 신학은 하늘이 아닌 땅과 씨름해야 한다.... 살아 있는 인간 상황과 무관한 신학이라면 그것은 이론신학일 뿐이다. 이런 종류의 신학은 머리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영혼을 울리거나 가슴을 찌르는 신학이 될 수 없다.... 아시아의 신학이 밥을 거부한다면 그 신학은 영양실조에 걸리고 병이 들고 말 것이다.”
 
 신학만 그럴까? 신앙도, 목회도, 예배도, 선교도 “하늘이 아닌 땅과 씨름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나의 신앙, 나의 목회는 혹시 “밥”을 거부한 나머지 “영양실조”에 걸려 있지나 않은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2.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까/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가엾은 하나님 (김흥겸, ‘민중의 아버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시절부터 빈민운동에 애정을 갖고 서울의 쓰레기가 집결되는 난지도의 개척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던 김흥겸. 그는 하나님을 “혀 짤린 하나님”, “귀먹은 하나님”, “화상당한 하나님”으로 읊는다.

 난지도의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와 그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빈민들을 앞에 두고서 그의 신학적 상상력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는 하나님을 “죽어버렸”거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거나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르는 “가엾은”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전통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지 않는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을 수 없는 “귀먹은 하나님.”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 그의 이러한 하나님 고백 속에 전통적인 하나님이 자리할 곳은 없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하나님 고백을 담고 있는 그의 노래 ‘민중의 아버지’가 입에서 입으로 번지며 80년대와 90년대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비단 빈민들뿐만 아니라 대학생들, 노동자들, 기독청년들의 입술을 통해서도 이 노래는 불리고 또 불리었다.

 왜일까?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가 봄바람에 민들레 홀씨 날리듯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간 그 의미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는 전통적인 하나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엎었다. 그는 전지전능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죽여버렸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 묻혀 사는 빈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러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존재할 수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가 전통적인 하나님 개념과 함께 믿음마저 깡그리 버린 것은 아니다. “혀 짤린”, “귀먹은”, “화상당한” 하나님. 그는 그런 하나님을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로 고백한다. 없어도 좋고 있으면 더 좋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내게는 하나뿐인” 하나님,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그렇다. 전통적인 하나님은 죽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이 죽은 자리에 또 다른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고된 삶에 지쳐 “어두에서 울고 있”는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을 하나님으로 되살아난다. “민중의 아버지”, “민중의” 포기할 수 없는 희망으로 부활한다.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하나님은 처절하게 살해당한 게 아니라 죽음으로써 부활한다.

 죽음을 통한 부활! 비단 예수만이 아니라 하나님 개념도, 우리도 죽음을 통한 부활의 대열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시인은 몇 해 전 바싹 야윈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떴다. 어린 딸 하나를 남긴 채로. 하지만 시인이 영영 죽은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입으로 ‘민중의 아버지’를 응얼거리는 한, 시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한 빼어난 신학적 상상력의 그리운 사람으로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우리도 조금은 그렇게 닮아가야 할 그런 그리운 사람으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포이에르바하의 뒤를 이어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의미한 하나님은 바로 비뚤어진 신관에 비친 가짜 하나님이었다.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잘못된 하나님, 사람들을 속박하고 노예화하는 그런 종류의 하나님은 죽어 버려야 마땅하다는 것이다”(오강남·종교철학자).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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