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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이 박사 처음 만나지만 할아버지 같이 친근"
[버마 난민촌을 가다 16] 수지 여사 생일 '귀국투쟁' 좌절 뒤 방콕 거주
 
최방식   기사입력  2006/11/06 [15:21]
살라이 박사는 2001년 양곤대 교수로서 양곤 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영화 '비욘드 랭군(Beyond Rangon)'을 보면 박사모를 쓰고 길거리서 확성기 하나 들고 시위를 하는 노교수 한 명이 나오는데 바로 살라이 박사다. 그는 군부정권에 체포됐고, 2년 남짓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결코 군부에 굴하지 않았다. 감옥 안에서도 재소자 인권개선 투쟁을 벌였다.
 
영화 '비욘드 랭군'서 1인시위 하던 노 교수
 
▲90년대 아웅산 수지여사의 민주화운동과 버마 군부정권의 억압정책을 다룬 영화 '비용드 랭군'. 휴가차 버마를 여행하다고 군부정권의 탄압을 목격하고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한 교수를 따라 정글지대를 숨어다니던 피난대열에 끼었던 주인공의 목격담을 담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최방식
살리이 박사는 석방되자마자 다시 저항을 시작했고, 군부는 결국 2005년 그를 미국으로 강제 추방해버렸다. 미국에서 1년여 거주하며 살라이 박사는 버마 민주화운동을 위한 각종 활동을 벌였다. 국제사회에 버마 군부정권의 폭정을 알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NLD(버마민족민주동맹) 요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활동을 모색해나갔다.

그렇게 1년여. 올 6월 19일 아웅산 수지 여사의 61회 생일을 앞두고 그는 생각을 바꿨다. 미국에서 편하게 시위 몇 번 하고 언론플레이 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나이 일흔여덟으로 언제 이승을 뜰지 모르는데 그냥 앉아만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버마인들이 군부에 맞서 싸워야 민주화가 가능할텐데 군부정권이 철저하게 억압하고 있고 국제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도 차단하고 있어 문제였다. 그는 결국 조국에 돌아가 뭔가 불씨를 당겨야겠다고 결심했고, 자신이 목숨을 바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문제는 군부정권. 그를 외국으로 내 쫓아버린 군부가 그를 받아줄리 만무했다. 결국 그는 한 장의 유서를 썼다. 자신은 이제 살만큼 살았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조국에 가서 그들과 싸우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귀국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귀국길에 일본, 한국, 태국을 거쳐 양곤으로 입국키로 했다.
 
"조국에서 죽겠다"고 유서 들고 귀국투쟁
 
살라이 박사는 그래서 6월 초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그의 '유서 투쟁' 소식을 한국사회에  알린 건 NLD한국지부 관계자. 편집장인 조모아(35)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그 사실을 알렸고, 결국 종순 형이 살라이 박사의 소식을 듣고 돕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살라이 톤 딴 박사.     © 최방식
종순 형은 서둘러 ‘버마 민주화를 위한 모임’(이하 버마모임)을 결성하고 사회단체 몇 곳에 호소해 박사의 귀국 여비도 모았다. 입국하자마자 체포될 게 뻔한 박사의 귀국투쟁을 국제 언론에 알리기 위해 자신이 동참하겠다고 한 것이다. 난 종순 형이 살라이 박사와 버마로 떠난 뒤 이 소식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를 쓰는 역할을 맡았다.

살라이 박사와 종순 형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생일을 하루 앞둔 18일 방콕에서 버마의 양곤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향했다. 사전에 표를 예약해두면 들통날까봐 출발 직전 창구에서 발권키로 했다. 헌데 어찌 알았을까. 태국당국이 표를 사려는 살라이 박사를 알아봤고, 출국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

살라이 박사는 본의 아니게 태국에 체류하게 됐다. 종순 형은 별 문제 없이 일행 몇과 버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웅산 수지여사 61회 생일 기념식에 참여하고 살라이 박사 소식과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대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버마에 있는 NLD 본부도 방문해 임원진도 만났다.
 
방콕공항 당국, 박사의 양곤행 탑승 불허
 
▲태국 당국의 통제로 귀국투쟁을 성사시키지 못한 살라이 톤 딴 박사가 머물고 있는 방콕의 한 아파트.     © 최방식

버마를 방문하고 귀국한 종순 형이 후속활동으로 태국에 있는 버마 난민촌을 방문할 겸 살라이 박사의 태국생활도 알아보기 위해 이번 여행을 기획했던 것이었다. 기자는 살라이 박사 귀국투쟁 때 같이 가자던 종순 형의 권유를 뿌리친 바 있어 이번에는 꼭 같이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난 살라이 박사를 처음 만나는 셈이다. 하지만 마치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친근하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사는 새벽 1시가 되도록 노구를 이끌고 우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눴다. <다음호 계속>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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