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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군이 언제 습격할지 몰라 항상 불안"
[버마 난민촌을 가다 6] 태국 내 멜라웅캠프는 틀림없는 포로수용소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07 [12:31]
카렌족 난민캠프가 버마 민주화운동 세력의 아지트가 된 것은 1988년. 버마 민주화투쟁으로 군부정권의 체포, 구금 등 강경탄압이 계속되자 활동가들이 버마 남동부 카렌자치구로 피신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가 결성한 '버마학생군'도 카렌족 무장투쟁지역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곳엔 카렌족 무장투쟁본부와 버마 민주화를 위한 학생무장투쟁 지도부가 자리하고 있다. 버마군이 공격을 멈춰 이들도 무장대응을 중단한 상태란다.

멜라웅 캠프 내에서 이 곳 13구역은 다른 구역과 달리 카렌족 출신이 아닌 버마 민주화운동을 하다 밀려들어온 학생무장투쟁 조직원 일부가 머무는 곳이었다. 다른 구역은 거의 모든 주민들이 기독교도들이지만 이 구역 주민들은 대부분 버마의 전통종교인 불교 신도들이다.
 
카렌족 독립투쟁과 버마민주화운동 한배타
 
조금 있으니 13구역 지도자인 파오 탓(Pao Htet, 36)이 우리 앞에 앉는다. 난민촌 삶을 물으니 대뜸 태국 경찰이 통제하고 있으며 캠프 안에만 머물도록 허용되고 있단다. 초소라야 경찰 몇 명이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오가는 사람을 검문하는 정도여서 외부로 나가려면 못 나갈 것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도 갈 데가 없고, 가는데 마다 태국 경찰의 검문을 받으니 사실상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멜라웅 캠프 13구역에 있는 한 가정. 우리를 안내한 라한 친구의 집이다. 티크와 대나무로만 지은 집인데, 제법 튼튼하고 아늑하다. 이 곳에서 일행은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잠을 잤다.     © 최방식

 먹거리와 생필품은 국제기관과 NGO들의 지원으로 해결한단다. 음식은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이 공식 지원한다. 지원품을 난민사무소가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배급한다. 그걸로 모자라 독일, 일본, 호주에 본부를 둔 NGO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 품목은 음식, 의복, 생필품, 의약품, 교육자재와 책 등이다. 한국의 한 치과의사단체와 교회의 지원도 한 두 차례 받았다고 밝힌다.

난민촌 주민들은 집주변에 채소를 조금씩 기른다. 고추, 오이, 콩 등이다. 집집마다 개와 몇 마리의 닭도 사육한다. 하지만 사료가 없어 가축들도 삐쩍 말랐다. 몇 몇 집에서는 음식물 몇 가지를 놓고 팔기도 한다. 돈과 물건이 없어 큰 규모의 장사는 없다. 계란, 과일, 곡물을 길가에 내놓고 파는 구멍가게들이 몇 있다. 태국화폐인 바트로 거래하는데 버마쪽 가족이 몰래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구매한다고 한다.

난민촌 가옥들은 태국의 가옥들과 조금 다르다. 치앙마이에서 본 태국의 가옥들은 겉으로 보기엔 근사한 2층 집들이다. 목재와 콘크리트를 사용해 건축해 튼튼해 보였고 규모들도 제법 컸다. 하지만 이 곳 집들은 티크와 대나무로만 지은 집들이다. 티크로 기둥을 세우고, 거실인 2층의 바닥과 벽은 둥근 대나무를 납작하게 펴 댄다. 지붕은 티크 잎을 엮어 덮었다.
 
먹거리와 생필품은 국제NGO 지원으로 해결
 
티크는 이 곳 열대림 국가인 버마와 태국이 자랑하는 목재다. 강도가 커 우기나 건기에 뒤틀림이 적고, 곤충들이 잘 서식하지 못한다. 잎사귀는 가로세로 두 뼘 정도로 넓어 천정에서 비가 새드는 걸 막기에 충분하다. 정글지역의 전통 가옥인데 태국 도시들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건축자재가 없어 난민들은 정글 지천에 널려있는 티크와 대나무로 전통가옥을 만들어 거주하고 있었다.

▲13구역의 대표인 파오 탓. '8888민중운동' 출신으로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다. 그는 언제 습격을 받을 지 모르는 이 곳의 안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제 시민사회단체의 구호품으로 먹거는 그런대로 해결된다고 했다.     © 최방식
티크 전통가옥 2층에 둘러앉은 김에 13구역장인 탓에게 가장 큰 문제를 물으니 안전이라고 서슴없이 토로한다. 버마 국경에서 30km 밖에 안 떨어져 있다 보니 버마 군부(SPDC)가 언제 월경을 해 들이닥칠지 몰라 가장 불안하다고 했다. 실제 20km 인근에 있는 메단블로 캠프의 경우, 1995년 버마군이 국경을 넘어 급습한 적이 있다고 한다. 휘글로 캠프에도 1993년 버마군이 들이닥쳐 6명을 살해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생겼다. 태국 쪽은 어떤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다. 난민들이 캠프밖으로 나가는 것만 막고 있을 뿐이다.

먹을거리는 유엔이 보내주는 음식물로 근근이 해결한다고 했다. 옷은 호주, 영국, 노르웨이, 일본 등 국제 구호NGO들이 보내준다. 꽤 많은 이들이 TV로 봤던 유명 축구구단 로고가 새겨진 티를 입고 있어 물으니 싸고 질길 뿐 아니라 구호단체들이 많이 보내줘 그렇다고 했다. 다만 아이들 교육은 좀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학교가 몇 있는데, 시설이 형편없고 교재나 학용품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아이들 점심도 각자 집에서 싸간다.
 
티크와 대나무로 만든 전통가옥 인상적
 
13구역 장을 맡고 있는 탓의 경력이 궁금해 물으니, 부인과 2명의 아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카렌족 출신이 아니며 1988년 민주화운동 때 군경에 쫓겨 버마쪽 정글에서 피해 다니다 위기를 느껴 결국 1995년 국경을 넘어 카렌족 난민촌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88년 고교생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단다. 대부분의 학생운동 주역들이 당시 고교나 대학생이었다. 같이 운동을 했던 3천여명은 88년 운동 과정에서 버마군부에 살해됐다. 그는 난민 캠프를 전전하다 2001년 카렌족 여인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난민촌의 삶만이 아니었다. 지금 버마인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고, 교육받을 권리나 건강할 권리 등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을 더 걱정했다. 그는 고교시설 88학생운동에 참여한 이였지만 1957년, 62년, 74년 버마 군부정권의 만행과 카렌족 핍박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정말 가장 시급한 것은 모든 걱정을 접어두고 평화롭게 살고픈 바람이라고 털어놨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     ©최방식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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