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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정글계곡에 2만5천 세대 거대타운
[버마 난민촌을 가다 5] 2002년 건설된 멜라웅캠프에 도착하니...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05 [02:21]
난민촌에 들어선 차가 계곡사이 캠프촌을 이리저리 오르내린다. 가는 길마다 난민촌 주민들이 멈춰선 채 낮선 차와 이방인을 탐색한다.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난민촌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개울이다. 가파른 산등성을 흘러내린 물이 이 도로를 따라 흐르고 난민들이 거주하는 가옥 아래쪽(탁 트인 1층)을 통과해 계곡으로 흐른다. 차가 간신히 통과할 만한 길 양 옆으로 원두막 같은 난민 가옥들이 쭉 늘어서있다. 길가 집집마다 모여앉아 있던 이들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4륜 반트럭 엔진소리에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이방인들 방문에 빠끔히 얼굴 내밀고 응시
 
캠프에 들어서고 20여분을 달렸을까. 난민촌이 거의 끝나갈 무렵으로 보이는 곳에 차가 멈춰 섰다. 동행한 마크를 내려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5분여를 더 달려 차가 완전히 시동을 껐다. 어디선지 아이들이 "와"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모여들었고, 이곳저곳에서 어른 남녀들이 나오더니 트럭 뒤에 싣고 온 물건을 옮긴다. 서로가 아는 눈치다.

▲일행을 태운 차는 10시간 운행 끝에 멜라웅 캠프에 도착했다. 잠시 비가 그치고, 길가 집들마다 모여앉아 있던 주민들이 낯선 차량과 이방인의 방문에 궁금한듯 얼굴을 내민다.     © 최방식

10시간의 악전고투를 기억하며 진흙투성이가 된 차와 사람들을 기념촬영 하려고 제안하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도착한 곳이 난민촌의 '13섹션'인데 그들은 오랜만에 도착한 메신저와 물품이 더 반가웠고, 도착한 이들은 그들과 인사하고 짐을 옮기느라 정신없다. 빗줄기도 굵어지고 해서 사진촬영을 포기하고 그들이 몰려든 집으로 들어섰다.

짐을 모두 옮긴 13섹션 주민들이 어느새 거실(2층 원두막 같은 곳)에 모여 앉아 올라서는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이미 누군지 다 알고 있다는 투다. 이곳으로 안내한 라 한이 메신저였고 이곳 13섹션과 연결된 이였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라 한 친구의 집이었다. 난민촌에게 하룻밤 묵게 될 집이었다.

이곳 난민촌에는 13개 섹션이 있으며 일종의 구역(우리로 말하면 동)이다. 난민촌은 섹션별로 대표를 뽑아 자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도착한 멜라웅 난민캠프에는 태국의 국경지대에 있는 9개 난민촌 중 하나로 버마 소수인종인 카렌족이 95%이상으로 2만5천4백명 살고 있다. 다른 8개 난민촌의 다수도 카렌족이다.
 
13섹션에 도착하자 꼬마들 몰려나와 환영
 
버마는 1885년 영국이 동진정책으로 인도를 점령할 때 같이 식민지로 통합됐다. 영국은 버마의 130여개 소수민족 중 최대(6백만명, 전체 인구 중 7%)인 카렌족을 대리지배자로 내세워 식민지지배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카렌족은 다수족인 버마족과 원한을 샀다. 2차대전이 일고 일본이 버마를 침략했을 때, 버마족은 일본과 협력해 영국과 카렌족 지배에 대항하기도 했다.

▲\'8888민중항쟁\' 주역들이 거주하는 13구역. 오른쪽 맨 앞에 있는 집에서 방문단 일행은 하루밤을 묵었다. 이 집 주인장은 우리를 메사량에서 안내한 라한의 친구다.     © 최방식

일본이 전쟁에서 잠시 승리했을 때 버마족은 카렌족에 복수의 칼을 들이댔다. 기독교로 개종한 카렌족의 교회를 불태우고 카렌족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8년 버마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독립을 이루었다. 버마족이 통치를 시작했고, 카렌족 탄압이 시작됐다. 이듬해 카렌족은 '툰구'라는 자치 국가를 세우고 버마정부와 독립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55년간 기나긴 무장투쟁을 하고 있다.

카렌족은 버마의 탄쉐(74) 군사정권에 밀려 1997년 거주지마저 빼앗겼다. 많은 이들이 무장독립투쟁을 지도하는 임정격인 '카렌민족동맹' 지배지역인 버마 남동부로 피난길에 올랐다. 일부는 아예 국경을 넘어 태국의 메홍손주(북서부, 우리 일행이 순방한 지역)로 밀려들었다. 태국 땅으로 넘어온 이들이 멜라 캠프 등 8개 난민촌을 형성했다. 그 수가 2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영국, 식민지시절 카렌족 내세워 대리통치
 
탄쉐 정권은 지난해 버마 수도를 양곤(랭군)에서 카렌족의 전통적 거주지 인근 피인마나로 옮겼다. 그리고 카렌족을 수도 건설현장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말을 안 듣는 이들은 죽이거나 잡아가두고 여성은 강간하는 등 탄압정책을 강화했다. 지금도 카렌족 일부는 군부학정을 피해 버마 내 난민촌과 태국의 난민캠프로 이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폐쇄된 카렌족 마을이 3천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멜라웅 캠프는 태국 국경지역에선 가장 최근 건설된 9번째 카렌족 난민캠프다. 기존의 8개 캠프 중 한 곳에 머물던 이들이 2002년 물난리로 큰 피해를 당했다. 강 건너 미얀마군부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정글 산중턱에 난민촌을 건설하고 거주해왔는데 장마철 산사태로 36명이 사망한 것이었다. 일부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이주한 곳이 바로 멜라웅 캠프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     ©최방식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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