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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태국·한국인, 난 딸이 셋이나 둬 행복"
[버마 난민촌을 가다 15] 9시간 버스여행 끝 찾아간 살라이 톤 딴 박사댁
 
최방식   기사입력  2006/11/01 [12:11]
버스 속에서 지루한 8시간쯤을 보냈을까. 정글이 사라지고 사방을 둘러봐도 넓은 벌판이 끝없다. 앞을 보니 고속도로 표지판에 방콕이라는 글자도 보인다. 거의 온 모양이었다. 버스가 도심으로 진입했고 10여분을 달리더니 멈춰 선다. 간이 정류소(하차)인 모양이다. 헌데 우리는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 그냥 끝까지 가기로 했다.

도심을 통과하는데 거의 모든 차가 일본제다. 혼다, 도요타, 닛산, 스즈키. 10여분 만에 현대차를 딱 1대 발견했다. 그리고 기아 트럭 한대. 모두가 일본차였다. 방콕의 도심 역시 교통체증이 심각했다. 하지만 도심 녹지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열대도시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방콕터미널에 내리니 소낙비 억수같이 쏟아져
 
▲메솟에서 9시간여 버스 여행 끝에 찾은 살라이 톤 딴 박사.     © 최방식
최종 목적지인 터미널에서 차를 내리는데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퍼붓는다. 살라이 톤 딴 박사에게 전화를 거는데 목소리가 거의 안 들릴 정도로 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5분여 전화기를 부여잡고 살라이 박사의 주소를 영어로 받아 적었다. 그도 방콕에 산지가 얼마 안 돼 자기 거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냥 주소만 알아낸 모양이다.

헌데 택시운전자들이 태국 발음을 영어로 적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다행스럽게 택시 승강장 곁에 관광안내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그와 한참을 시름해 방콕 도심 지도를 펴들고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태국말로 주소를 써달라고 해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메모지를 보고 고개를 몇 번 갸우뚱거리더니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택시드라이버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니 우린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 별 도리가 없다. 그가 제대로 가기만을 바라면서.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아파트단지 한 건물 앞에 내리니 노신사 한분이 저만치 달려온다. 살라이 톤 딴 박사였던 것이다. 종순 형이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한다. 난 살라이 박사를 처음 본다. '유서'를 써놓고 민주화운동을 위해 자신을 쫓아내버린 조국에 귀국투쟁을 한다며 한국에 들렸을 때 보도자료를 정리하느라 그를 알게 됐지만 당시 내가 일에 바빠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살라이 박사, 집앞 도착하니 한걸음에 달려와 포옹
 
▲방콕에 임시 거처하고 있는 살라이 톤 딴 박사 아파트 거실에 놓여있는 보살상.     © 최방식
전화만 몇 번 걸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 하니, 종순 형한테 얘기 들어 잘 알고 있다며 반갑게 포옹한다. 그를 돕는 한 남자가 곁에 서있다. ABSDF(전버마학생민주전선) 조직원인 부디(가명, 41)다. '8888민중항쟁' 때 통신병으로 무장투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UNHCR의 난민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태국 시민권이 없다. 방콕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했다.

아파트에 오르니 20여평 남짓 되는 모양이다. 살라이 박사가 한 달여 전 '귀국투쟁'을 통해 버마로 들어가려다 거부당한 뒤 줄곧 이곳에 머물고 있다. 두 명의 여성이 있어 물으니 살라이 박사가 딸이라고 소개한다. "한명은 버마인 딸, 한명은 태국인 딸"이라며 웃는다.

그랬다. 한명은 살라이 박사가 이곳에 머물 때 태국인 신분으로 아파트를 계약하는 등 도움을 준 여성이다. 또 한명은 버마 카렌족 출신 난민신분으로 방콕에 살고 있는데, 살라이 박사를 위해 밤낮으로 다니며 음식을 준비하는 등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박사는 한국에도 딸이 한명 더 있다고 해 물어보니 한 달 전 방문 때 통역을 맡았던 한국인이라며 너털웃음이다.

아파트 거실에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니, 두 여성이 음식을 들고 나온다. 저녁 안 먹은 걸 알고 준비한 모양이다. 그날 저녁은 정말 맛있는 태국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즐겼다. 고소한 계란탕(?), 고기와 야채로 만든 상큼한 스프. 거기다가 부디가 사왔는지 쌀 위스키와 맥주도 몇 병 내온다.
 
일행,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에 즐거운 밤 보내
 
▲ 살라이 박사를 돕고 있는 부디. ABSDF출신이다.     © 최방식
그 날 우리는 살라이 박사 덕에 정말 즐거운 태국의 첫날밤을 보냈다. 살라이 박사, 부디(사진 왼쪽), 종순 형, 그리고 나는 새벽이 되도록 음식과, 술, 그리고 담소를 즐겼다. 부디는 영어가 좀 서툴러 살라이 박사와 주로 대화를 나눴다. 부디의 말도 살라이 박사가 영어로 통역해줬다. 헌데 재미있는 건 술이 좀 취하자 부디가 영어를 잘한다. 종순형도 술을 몇 잔 먹으니 거리낌 없다. <다음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난민돕기 캠페인]

"한국 영화·드라마 담긴 CD·비디오테이프·DVD 모아요."
 
국경지역 정글 캠프 안에 갇혀 사는 20여만명의 버마 난민들은 TV도, 영화도 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나오질 않고, 영화관이 없으니까요.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하지만 내부 발전시설로 전기를 생산해 비디오나 컴퓨터(온라인은 불가)는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게 캠프 밖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셈이죠.
버마 난민캠프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는지 남녀노소 한국의 영화, 드라마, 공연비디오(가수) 등을 좋아한답니다. 자치기구 대표를 비롯해 보는 이 마다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또는 친구 집, 사무실 등을 뒤져 먼지 쌓인 영상자료들을 모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양을 모으면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모임(공동대표 림효림, 유종순)
-문의 011-797-7645(평화사랑, 이메일은 bschoi5@naver.com)
-한국NLD를 후원하실 분도 찾습니다.(매달 1만원 계좌이체)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주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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