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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바람 캠프에도, "영화·드라마 인기 최고"
[버마 난민촌을 가다 8] 난민촌 교육환경 최악, 국제NGO 지원으로 충당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11 [10:56]
아침 술자리를 끝으로 아쉬워하는 13구역 '전사'들과 아픈 이별을 준비하며 짐을 꾸렸다. 라 한의 친구 부인에게 좋은 숙식에 감사하고, 숙박비조로 얼마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곤 메사량에서 캠프로 올 때 동행했던 마크네 학교로 향했다. 동네 모정처럼 생긴 교사(校舍)에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이 맞이한다. 마크, 그리고 학생들과 잠시 인터뷰를 가졌다. 이곳 직업학교의 공식 이름은 '카렌 청년지도자 양성 경영훈련센터'(KYLMTC)다.

캠프 안에서 고교를 졸업한 이들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해 영어, 경영, 지도자과정 등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20~25살의 젊은 남녀 70여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물론 취업의 길은 제한 적이다.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주 정부가 가끔 이들 난민을 데려간다고 했다. 그 기회를 잡으면 호주에서 취업하는데 유리하다는 것.
 
▲호주인 자원봉사자 마크가 교사로 있는 '카렌 청년지도자 양성 경영훈련센터'. 교단에 서있는 이가 마크.     © 최방식

하나 있는 직업학교 졸업해도 일자리 없어
 
영어로 인터뷰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니 야챠우(21, 남)라는 청년이 나선다. 떠듬거리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다른 캠프에 거주하다다 2004년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조국과 이곳 난민촌 카렌 젊은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하는 사정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은 꼭 뭔가를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멜라웅 캠프 안에는 4개의 고교가 있다. 학제는 유치원 1년, 초등학교 2년, 그리고 중고교 10년제다. 고교마다 3과정의 학제를 동시에 운영한다. 우리가 찾은 곳은 '야웅 니 우 기본교육 고교'(이하 야웅고교)였다. 4백31명의 학생이 있으며 95%가 카렌족 자녀였다.

▲멜라웅 캠프 안에 있는 4개 고교 중 하나인 야웅고교.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을 통합한 고교이다. 정글 속에 자리한 이 학교 교사(校舍).     ©최방식
 
▲교정에서 만난 리 나 웨이.     © 최방식
야웅고교에 막 들어서는데 예쁜 꼬마 아가씨 한명이 웃으며 달려온다. 숙박했던 집 딸 리 나 웨이다. 친구들 몇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해가며 열심히 설명한다. "저 아찌들 어제 우리집서 잤어. 아빠 친구들인가봐." 그랬겠지...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그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티크 오두막에 오르니 교무실이란다. 한 행정 교원이 막대기로 천정에 매달아 놓은 자동차 휠을 세차게 쳐댄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조금 뒤 네이 투어(40)라는 부교장(교감)이 다가왔다. 그에게서 학교 운영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학비가 7백바트였다. 20달러쯤 되니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 난민들에게 무슨 돈이 있어 학비를 받는지 모르겠으나, 학교를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버마의 민간단체와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버마위원회 지원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연 총예산은 7백만원 정도. 그 돈으로 학생 교재와 학용품을 지급하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 음식을 대는 데도 빠듯하다고 했다. 교사 월급도 없다. 
 
"산사태로 매년 학교 옮겨야 하는데 큰 걱정"
 
▲야웅고교의 학교종. 자동차 휠로 대신했다. 한 교원이 시작종을 올리고 있다.     © 최방식
이 학교에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110명이나 된다. 부모가 국경지대에 거주하다보니 그 곳에 학교가 없어 이리로 유학을 보낸 것이었다. 그나마 매년 교사(校舍)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일반인 거주 가옥에 비해 교사는 규모가 크다보니 가파른 계곡의 나무를 베어내고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산사태 위험이 커서 그렇단다.

유치원부터 고교생까지 한 학교에 있다 보면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 같은 것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한 교사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카렌족 출신이라는 서른 살의 교사 사우 클 와는 아직까지 사고는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적령기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야웅고교 초등과정 교실. 영롱한 눈망울이 이방인을 반긴다.     © 최방식
 
멜로웅 캠프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캠프오피스를 찾았다. 난민촌 전체를 관리하는 자치기구다. 의장이 대표이며 부의장과 함께 선출직이다. 이른바 자치 집행기구인 셈이다. 그 아래 의료, 교육 등 분야별 관리자들이 선임돼 있다. 최고 의결기구인 자치의회는 13곳 섹션 장들로 구성한다. 섹션장 역시 선출직이다.

▲멜라웅 캠프 자치기구(관리소) 존 니톤 의장.     © 최방식
주요 업무는 지원품 배당, 캠프 안보 관리, 보건·의료·교육 등이다. 연예산은 보안상 밝히기 어렵다는 캠프관리소 존 니톤 의장(남)은 유엔기구와 각종 NGO가 보내오는 보급물품(주로 음식과 의복)을 모아 한 달에 한번 배급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기독교 선교단체와 치과의사들이 방문, 지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캠프 안에 교회 15개, 성당 4개, 사원 3개가 있단다. 거주민 90%가 기독교인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비디오·CD 보내주세요"
 
섹션별로 젊은이들을 일부 선발해 캠프 보안을 책임지게 한다. 물론 무기는 없다. 아직까지는 별 문제 없으나 캠프의 위치가 썩 좋은 건 아니라고 클로 쉬 사무총장(남)이 귀띔한다. 버마 국경과 가까워 버마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캠프 관리 자치기구의 교육담당 국장인 질리아.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CD나 DVD가 인기가 좋다며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 최방식
교육자재, 의약품 등도 국제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교육담당 국장을 하고 있는 카렌족 출신 질리아(30대 후반, 여)는 학용품, 컴퓨터, 발전기 등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가 좋다며 모아서 보내달란다. 한류의 영향이 이 곳 난민촌까지 미쳤던 모양이다. TV는 보지 못하지만 전기는 자체 생산해 컴퓨터나 비디오는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 하루 묵었던 집 벽에 버마 연예인들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는 것을 봤다. 이 곳 어린이들에게 한국 연예인 사진이 인기가 좋다는 말도 오갔다. 그날 밤 리 나 웨이의 오빠가 우리가 가져간 한국산 휴지 봉지에 젊은 연예인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탐냈던 게 문득 생각났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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