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 사태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6일 오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는 매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황 교수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아이러브 황우석'주최로 '1천명 난자 기증의사 전달식'이 열린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난자 기증 의사를 밝힌 200여명의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여성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데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 행사의 백미는 참석자들이 주최 측이 마련한 무궁화 한 송이씩을 직접 황 교수 연구실 책상에 놓은 대목과 주최 측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입구에서부터 2층 황우석 교수 연구실까지 분홍색 조화 진달래꽃을 길게 이어 놓은 퍼포먼스라 할 것이다.
"황 교수님 사랑해요" "황 교수님 돌아오세요"를 연호하며 눈물을 훔치는 여성들과 황 교수가 즈려밟길 고대하며 이들이 깔아놓은 진달래꽃, 이들이 황 교수 연구실 책상에 놓은 무궁화와 행사 도중에 부른 애국가가 범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과민한 것일까?
애국적 난자 기증운동, 한국사회를 강타하다
황 교수에게 쏟는 난자기증희망 여성들의 정성과 사랑은 확실히 과도한 감이 있다. 이들이 이 행사에서 보인 일련의 행동들은 가히 성인(聖人)들을 상대로나 함직한 수준의 것이었다.
본인이 불치병을 앓고 있거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둔 사람으로서는 황 교수가 구세주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인류애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황 교수를 갖은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인류를 질곡에서 해방시켜 줄 초인으로 여길 법도 하다.
그러나 황 교수에 대한 난자기증 희망 여성들의 애정은 절박한 개인사정이나 인류애의 발로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무언가가 이들의 개인적 사정이나 취향과 결합하여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감정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이다.
위의 '무궁화'와 '애국가'와 상징하듯이, 아마도 그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애국심'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황 교수 사태'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MBC PD수첩을 융단 폭격해 치명상을 입힌 네티즌들이 무장한 무기도 바로 '국익'과 '애국'이었다.
실체도, 근거도 모호한 '국익'과 '애국'으로 무장한 네티즌들은 황 교수에게는 극진한 존경을, MBC PD수첩 등을 위시한 황 교수의 반대자(?)들에게는 가혹한 응징을 가해 대한민국 네티즌의 힘을 세계에 뽐냈다.
'애국'이 여자들이라고 무심히 지나칠 리 없다. 난자기증 희망자들이 줄을 잇고 이들이 미담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현금의 상황에서 한국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애국'의 기운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정을 한층 악화시키는 것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거나 도구의 일종으로 여겨온 한국사회의 문화다. 다양한 형태의 매매춘이 아직까지 성행하는 것만 보아도 새삼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의학의 발전을 위해, 궁극적으로는 소중한 생명을 위해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자기증운동은 '애국'이라는 집단 이데올로기와 '국익'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부가가치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부분 언론에서 난자 채취에 따르는 고통과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경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난자기증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측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난자 채취는 백사장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백사장에서 하는 모래채취도 무분별하면 재앙을 초래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여성의 몸에서 생성되는 난자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인류애에 기초한 개인적 결단으로
이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난자채취에 수반되기 마련인 고통이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설익은 '애국주의'에 미혹되었을지도 모르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해서 펼쳐지고 있는 난자기증운동은 그 나름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난자기증을 독려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난자 기증이 내포하는 신체적, 정신적 위험성에 대한 설명과 경고이며, 모든 것을 삼키고 있는 애국의 열정이 아니라 균형 잡힌 이성의 눈이다.
앞뒤 가리지 않는 '애국'의 열정에서 벗어난 개인들이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경고를 들은 후 의학 발전을 위해 난자 기증에 동의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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