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성을 둘러싼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작 황 교수 본인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오히려 네티즌들이 황 교수 연구의 비윤리성 문제를 공론화한 MBC PD수첩에 대해 테러 수준의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오죽 심각했으면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금의 사태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확실히 네티즌들의 태도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PD수첩에 광고하려는 회사를 상대로 해서 불매운동을 전개하자고 선동해서 광고주들이 광고를 취소하게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로 봐 줄만 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의 가족 사진을 공개하고 “가족들을 다 죽여라”는 등의 글들을 올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명백한 범죄수준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민족주의’
황우석 교수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윤리논쟁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강력한 논리 중에 하나는 역시 ‘일그러진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민족'이라는 존재는, 이민족으로부터 숱한 외침을 받은 데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일제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지고의 가치로 숭배되어 왔다.
기실 매우 추상적인 개념일 뿐더러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근대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고까지 평가받고 있는 '민족'이 머무는 거푸집은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이후 인류는 ‘팽창적, 공격적 민족주의’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경험하였고,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는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민족주의’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은 복음이었나 아니면 재앙에 가까운 것이었나? 순기능이 있다고 평가되는 ‘저항적 민족주의’조차 사정이 호전되면, 즉 그 민족의 힘이 세지면, 자주 팽창적 민족주의로 전화해 온 역사적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족주의’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은 유익보다 오히려 커 보인다.
본디 민족주의란 태생적으로 타민족에 대한 배척을 천형처럼 안은 채 출생한다는 점에서 '차별과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혐오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쉽게 굴복하고마는 ‘인종주의’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멀게는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부터 가깝게는 유태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가 인류의 정신과 육체에 아로새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
황 교수 사태에서 ‘일그러진 민족주의’의 기미를 읽는 것은 불쾌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를 ‘미국의 음모’로 보는 시선, PD수첩에 대한 범죄 수준의 공격-아마도 친일부역자들에 대한 매도가 이 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성 싶다- , 황 교수를 민족영웅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신성시하는 태도 등은 한국사회 구성원, 특히 젊은 네티즌들의 내면이 얼마나 ‘추악한 민족주의’에 감염되어 있는지를 방증한다.
거의 항상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었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행하고도 위험한 일이다.
독일인들을 파멸로 이끌었던 히틀러가 표방했던 것이 ‘게르만 민족주의’였음을 생각해보면 이번 황 교수 사태는 우리에게 ‘민족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도 박정희는 우리 안에 있다
이번 사태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한국사회가 여전히 박정희식 ‘결과 만능주의’의 자장(磁場)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황 교수도, 보수언론들도, 여야정치인들도, 네티즌들도 예외 없이 이 자장 안에 갇혀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윤리적 기준 등을 지극히 하잖게 여기는 현상을 초래하기 일쑤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난자기증과 관련한 국제 윤리기준은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창안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하면서 이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칭한 것을 연상케 한다.
사람을 고문하고 투옥하고 사법살인하는 것이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면 양해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권’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강변하는 것과 황 교수의 연구는 국제 윤리기준에서 자유로워도 무방하다는 논리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박정희가 남긴 여러 유산들을 끔찍이도 혐오하는 사람들마저 박정희식 개발이 낳은 ‘결과 만능주의’에 깊숙이 침윤되어 있다는 사실을 황 교수 사태는 잘 말해주고 있다.
‘민족주의’와 ‘결과 만능주의’를 넘어서
위에서 살핀 것처럼 황 교수 사태는 '민족주의‘와 ’결과 만능주의‘가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세계를 점령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족주의’와 ‘결과 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민족주의’를 넘어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고려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아쉬운 대로 ‘개인주의’의 확산을 ‘민족주의’를 넘어설 방안으로 제시하면 어떨까 싶다.
무리를 아늑해 하지 않고 집단의 논리와 정서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한국사회에 늘어날수록 ‘민족주의’가 뿜어낼 독기는 중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결과 만능주의’를 단기간에 극복하는 것 역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는 것이라 특히 고치기가 어렵다.
결국 제도의 정상화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하는 태도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법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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