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8년의 세월, 대법원의 양심을 기대하며
[박미경의 삶과 노동] 현대미포조선 김석진씨의 복직판결은 정의와 상식
 
박미경   기사입력  2005/07/20 [00:18]
얼마 전, 현대미포조선 해고자인 김석진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우리 가족모두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는 지난 봄 소풍 때 지나쳤던 길이라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현대자동차를 지나 현대미포조선이 보였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미포 조선의 정문을 보니 몇 년 전 김석진씨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영화필름처럼 스쳤습니다.

저는 당시 구속된 남편 대신 투쟁하던 중 김석진씨의 단식 투쟁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악수를 하는데 단식으로 손에 힘이 하나도 없는 김석진씨의 수척한 모습이 매우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화로 약속한 어느 음식점에 도착하니 김석진씨가 미리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김석진씨 가족과의 만남은 반가운 일이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습니다. 대상은 다르지만 각자 오랜 세월 함께 투쟁하고 있고, 해고자의 삶이 어떠한지 그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동지의 끈끈한 정 때문인가 봅니다.

김석진씨 가족이 살고있는 아파트에 방문하곤 속으로 조금 놀랐습니다. 집안 구석구석엔 절약 정신이 짙게 배어있고, 상상했던 모습보다 빠듯하게 사는 듯 했습니다.

현재 살고있는 사택 아파트는 남편이 결혼 전, 대출로 구입했는데 대출금을 갚자마자 해고가 되어 난감했다고 합니다. 3년이 넘는 시어머니 병 수발동안 외출 한번 못하고 막막한 생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저는 김석진씨의 아내 한미선씨가 우러러 보였습니다.

컴퓨터는 누군가가 준 것이고, 텔레비전(요즘 보기 힘든 제품)과 장식장은 주워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새는 안 쓰는 물건 있으면 이웃에서 먼저 전화를 준다며 김석진씨의 아내 한미선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족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9일 김석진씨 가족과 함께.     © 박미경


김석진씨는 대화도중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체'하는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웃으며 '혹시, 비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김석진씨는 '박일수 열사 투쟁 때 경비에게 가슴팍을 폭행 당한 적이 있는데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갑상선에 팔, 다리가 떨리고 치아도 이상이 있는 아내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색을 안 했기에 몰랐는데, 오랜 해고자 생활로 다들 건강에 적신호가 생기나봅니다.
 
▲판결을 기다리며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김석진 씨  © 한미선


김석진씨는 3년 5개월만에 열리는 오는 22일에 대법원 선고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언제나 환한 미소를 가득 띠고,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김석진씨 가족들의 참혹한 세월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대법원의 양심과 상식을 기대합니다.

 다음은 김석진 씨 가족의 글입니다.
 


아내 한미선 입니다.
 
▲몇년 전, 집회시 남편의 복직을 위해 발언중이던 아내 한미선씨의 모습     ©김석진
회사의 모진 탄압과 회유, 산을 넘고 또 넘어, 대법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또 다시 태산이 되어 첩첩산중으로 변했습니다.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회사인데 모든 것이 뒤집혀 있다며 남편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는 1,2심에서 패소하자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대법원 행정처와 대법관을 지낸 거물급 변호사를 고용했습니다. 회사는 최근 7-8개월 전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남편과 함께 활동했던 노조대의원 92% 서명을 받은 진정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남편이 복직되면 8년 전통의 무 분규가 깨질 우려가 있어 복직을 반대한다는 내용)
 
서명한 노조대의원 중에는 저의 친정 올케 오빠도 있었습니다. 그분도 회사에 찍히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 친정 올케 오빠(사돈)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편과 함께 대의원 활동했던 분들과의 관계도 갈라놓고 저희 가족 관계까지도 갈라놓은 회사의 이러한 행위는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라 생각합니다.
 
남편 해고의 우연의 일치일까 시어머니는 수시로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결국은 쓰러져 3년7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계시다가 한을 품고 떠났습니다. 남편은 불효의 죄의식에 병원의 중고의료기구를 구입해서 시어머니 목에 구멍을 뚫어 저와 함께 주, 야간 30분마다 한번씩 기계로 가래를 뽑고 미음을 갈아 주사기와 호스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하며 대, 소변을 받아내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는 3년7개월 동안 시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지금 남편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단식의 후유증으로 장시간 서있기가 불편하고 여름이면 몸이 무기력해지는 등 수면장애로 힘들어 하고있습니다.
 
회사는 남편의 복직투쟁을 감시하고 방해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하고, 고성능 스피커 두 대도 설치하였습니다. 법원도 회사정문 앞에서 어떠한 복직투쟁도 할 수 없도록 한 금지가처분이라는 명령문의 표지판을 두개나 설치했습니다.
 
회사 정문 밖에서 조합원들을 태워 출, 퇴근시키던 통근 버스를 1년 전부터는 회사 안에 통근버스를 대기하기 때문에 남편은 회사정문 앞에서 조합원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1,2심 복직판결은 받았지만 회사 앞에서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은 철저히 조합원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1980년 입사해서 87년 노동조합이 생겼고 노동조합 1대 체육부장을 하였고 17년 근무하여오면서 97년 해고될때 남편은 대의원과 현장활동가 모임인 "민주노동자동지회" 의장 활동을 했습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어느 사업장이나 현장에는 현장활동가들의 모임이 있고 노조처럼 소식지도 자연스럽게 배포하며 활동들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남편은 최근까지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호소하기 위해 울산지역 노조간부, 시민사회단체 명의의 탄원서를 고충처리위원회,인권위원회,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오로지 재판중인 사항이라 어떠한 답변도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탄원서를 보낸 남편이 법을 잘 몰라서 그러니 법무사 같은 곳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8년의 해고세월 회사의 모진 탄압, 대법원의 판결지연으로 한 가정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철저히 무너져 가고있습니다.
 
남편이 해고되자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인 1261명의 현장조합원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회사가 남편을 해고한 것은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복직탄원서에 서명도 하였습니다. 또 500여명의 조합원들은 꼭 이겨서 일터로 돌아오라고 투쟁기금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도 몇 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덩그러니 혼자가 되어 있습니다.
 
시어머님이 세상을 뜬 후 저는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종일 버스 타고 걸으면서 온가족의 운명을 대법원에 맡겨놓은 저로서는 하루 하루가 피를 말리는 심정입니다.
 
8년의 해고세월은 지옥이고 몸서리쳐집니다. 해고자 아내로서 무너져 가는 가족을 잡고자 몸부림 치고있지만 세월의 무게가 저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혹독합니다.
 


대법원 재판장님께 드립니다.
 
큰딸 김소연(중2.15세)입니다.
 
8년 전 저와 동생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버지는 해고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회사정문에서 180여 일간 철야노숙과 43일간 단식을 할 때 저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과 저는 농성 장에 찾아오는 아저씨들이 주는 용돈과 과자가 좋아서 함께 있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중학교 2학년이고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몇 개월 전 간단하게 쓰여진 전태일 아저씨 관련 책을 읽고 난 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전태일 평전을 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그 당시 전태일 아저씨가 왜!! 분신을 하셨는지 왜!! 2005년 지금도 전태일 아저씨가 존경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울산과 부산법원에서(1,2심) 복직판결이 났는데 대법원에서 3년 5개월 째 판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굉장히 어려운 정치관련 사건이 아닌 생계 사건은 1년 정도면 다 판결이 난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한 달이 지나면 한달 만 더 기다려보자 했고 계속 3년 동안 동생과 저에게 똑같은 말씀만 하여왔습니다.
 
3년 동안 동생과 저는 가지고 싶은 것 하고싶은 것 꾹 참고 한달 한달 아버지 말씀대로 기다려 왔습니다. 동생이 투정을 부리면 아버지께서 힘들어 하실까봐 동생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
 
▲  43일간 단식투쟁을 하던 때의 김석진씨. (84kg인 몸무게가 단식후 63kg으로 줄어듬)     ©김석진 가족

 
아버지께서 복직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전태일 평전도 읽어보고, 대법원의 판결이 왜!! 늦어지는지 들으면서 법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가끔 친구분들과 전화할 때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대법원판결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8년을 해고가족으로 살아온 저희 가족에게는 가족 전체의 희망과 절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 재판장님. 하루빨리 판결을 받아 아버지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큰딸 김소연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와 피플타임즈에도 송고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07/20 [00:1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승리 2005/07/22 [14:29] 수정 | 삭제
  • 대자보엔 아직 안올라왔는데, 좀전에 복직판결 받았다는 기사봤네요.

    온 가족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을까 하네요.

    너무 오랫동안 죄없이 고통만 받은 가족들이 이제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