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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8일간의 '별보기 운동'
시장에서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삶의 소중함 느껴
 
박미경   기사입력  2005/02/21 [15:12]
보름 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바쁜 일손을 거들기 위해 아이와 함께 부산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하십니다. 
 
평소 생활패턴이 부모님과 정 반대인 나는 늦게 자는 버릇 때문인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아예 수면을 포기하고 새벽 1시30분에 부모님을 따라나서기도 했지요.
 
아파트 입구의 닫힌 문을 열자마자, 세찬 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려들었습니다. 캄캄한 하늘의 별을 바라봤습니다. 추위 때문인지 작은 별빛마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새벽에 장사할때 모닥불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입니다. 모두들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가지요.     © 박미경

 시장에 도착해서 판매할 물건들을 정리하다보면 장갑을 꼈음에도 손이 무척 시립니다. 주위 상인들이 지펴놓은 모닥불에 틈틈이 손과 발을 쬐었습니다. 바삐 지나는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모닥불에 손을 쬡니다.
 
다들 힘들게 살아가지만 얼굴은 모두 순박하고 정이 많습니다. 새벽엔 시간이 참 잘 가더군요. 일도 많이 안 했는데 새벽 4시가 다 되어갑니다. 내가 시장에서 주로 하는 일이란 손님들에게 물건을 판매하거나 틈나는 대로 대추와 오징어, 쥐포, 땅콩 등을 포장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끔은 수레를 이용해 배달도 하지요.
 
내가 결혼 전이었을 때는 가뿐한 체중 탓인지 무거운 상자(20kg) 두 개를 포개어 어깨에 메고 배달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나이도 들었고 육체노동을 안 해서인지 20kg짜리 상자도 겨우 들 정도로 힘이 없습니다.
 
하루종일 장사하면서 주위 상인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과거엔 무심히 지나쳤는데 기사를 쓴 뒤로는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에 관심이 갑니다. 시장 한복판 사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모자와 목도리를 두른 채 좌판에 생선 몇 마리를 놓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혹한에 얼마나 추울까'
 
인근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손님이 없는 시간에 서로서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나는 이번에 한 달치 약을 지어 먹고있다."
"나도 약 지어서 먹고있다 아이가. 약 안 먹으면 걷지도 못한다."
 
모두들 약의 힘에 의지하며 몸을 혹사시키고 계셨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식후 고혈압과 당뇨, 신장, 다리 통증 등의 약을 복용하십니다. 찬바람을 많이 맞은 탓인지 아버지는 눈도 시리고 따가워 자주 안약도 사용하시지요. 남들 곤히 자는 새벽부터 고생한 탓일까요? 가끔 보는 얼굴들이지만 내가 아는 상인들은 같은 연령층의 사람들에 비해 폭삭 늙어있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찬바람에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큰 모자와 스카프, 목도리로 얼굴을 감싼 채 장사를 하셨습니다. 인사를 하려고 가까이 가보니 코가 빨갛게 부어 올라 이상하더군요. 
 
"아줌마, 코가 좀 이상하네요?"
"저번에 억수로 추울 때 감기 걸렸었는데, 그때 떨어지는 콧물에 코가 얼었다 아이가."
"네? 콧물에도 코가 얼어요?"
"얼마나 추운지 콧물이 떨어지는 순간 바로 얼어뿐다 아이가."
"세상에…. 어떡해요?"
"괘않타. 봄 되면 녹는다."
 
우리 어머니의 양 볼도 얼었습니다. 붉고 좁쌀 만한 크기의 보석(?) 같은 게 볼 안에 오돌오돌 들어있습니다. 어머니 또한 "따뜻한 봄이 되면 녹는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마음이 짠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여자는 얼굴에 신경이 많이 쓰일텐데 말입니다.
 
나는 평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운동시간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빈 좌석이 있어도 일부러 앉지 않고 서있을 정도이지요.
 
그런데 시장에서 하루종일 서서 장사하다보니 다리가 무척 아팠습니다. 배달을 다닐 땐 다리를 질질 끌고 걸을 정도였지요. 어머니께서는 오래 전부터 다리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난 그때마다 연세 탓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체험해보고 나서야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저도 다리가 아파서 손님이 없을 땐 틈틈이 의자에 앉아 쉬었습니다.
 
악 건성피부인 탓에 겨울만 되면 생살이 저절로 찢어지는 내 손은 하루종일 찬바람을 맞으니 더더욱 난리였습니다. 여러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일을 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장사를 마쳤습니다. 귀가를 서둘다말고 뒤돌아 시장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천막 아래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백열등이 정겹게 느껴지더군요. 하늘을 보니 어느새 별이 총총 떠있었습니다. '별 보기 운동'이 따로 없는 듯했습니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잡생각이 안나니 살만했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이면 조금 심해지는 우울증도 사라지는 듯하고 우중충한 내 마음 또한 백열등처럼 밝게 빛났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 절망에 빠진 분들이 계신다면 시장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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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2/21 [15: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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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돈 2005/02/27 [00:41] 수정 | 삭제
  •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순박한 삶이
    저의 모습인양 빠져 보기도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고있으나
    요즘 민초들 삶이 그 희망을 접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힘드신 분들도 많지요.
    덕분에 저자신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것 같습니다.
    힘드신 중에도 이뿐 삶 사시는 모습 보기좋습니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글 잘 읽고갑니다.
    행복한 가정 되시구
    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