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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처세술, 소설에서 배운다
[서평] 이동연 작가의 '소설 손자병법'
 
김철관   기사입력  2024/06/15 [16:35]

▲ 표지  © 창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자연현상과 인간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 처세술을 담은 <소설 손자병법>(2024, 4월, 창해)의 저자 이동연 작가가 강조한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은 손무와 그의 5대손 손빈에 의해 만들어진 총 13장 6천 여자로 구성된 병법서이다. 소위 손자의 <손자병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손자는 공자, 맹자, 노자, 묵자처럼 한 사람의 성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손무와 그의 5대손 손빈을 통칭해 ‘손자’로 칭한다.

손무는 춘추시대 오나라 합려를 도와 천하를 제패한 인물이고 5대손 손빈은  전국시대 제나라를 도와 최고의 강국으로 만든 병법의 전략가이기도 하다.

 

이동연 작가의 <소설 손자병법>은 공자, 자공, 오자서, 귀곡자, 범려, 방연 등 춘주전국시대 이름깨나 있는 장군이나 전략가, 성인들을 등장시키지만, 단연 손무와 손빈을 주인공으로 해, 병법을 해설한 소설이다.

 

제나라 경공이 ‘전서’에게, 손씨 성을 하사해 ‘손서’라고 칭했다. 이때부터 손씨가 등장하는데, 손빙은 손무(545~470)의 부친으로, 무에게 천하의 전적지 답사를 지시한 인물이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춘주전국시대 후기, 무가 열여덟 살 되던 날 손빙이 물었다.

 

“무야 ‘육도삼략의 요점이 뭐냐.” 무는 즉시 “싸움 없이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손빙이 빙그레 웃으며 “그렇고말고,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무는 “상하가 같은 마음을 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이겨놓은 후에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손빙은 아들 무에게 병법을 기초하는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무에게 전적지를 볼 때 ’양측의 전략과 지형 등이 승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살펴봐야 현실감각이 생긴다‘라고 주문한다. 특히 부친은 책략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병법 세 가지를 무에게 일러둔다. ▲병법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란 점 ▲전쟁은 참전하되 공실 내부 권력다툼만큼 끼어들지 말 것 ▲전공을 세우면 반드시 물러나야 할 것 등이다.

 

또한 손빙은 왕의 통치철학 ‘무위지치(無爲之治)’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왕이 소박한 것은 무위지치의 시작이다. 무위지치의 과정은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다. 각자 재능에 맞는 직무를 맡겨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억지로 다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스릴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손빙은 늘 손무에게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공자의 윤리를 세우라고 전한다.

 

“공자의 말씀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는 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노자께서는 그런 인위적인 예의 이전의 무위로 돌아가라는 말씀이로다. 너도 인위적이 병법을 통해 천하의 안녕을 세우도록 노력한 뒤엔 반드시 무위의 자연으로 돌아가거라. 그것이 두 선생의 가르침이다.” - 본문 중에서

 

훗날 손무는 병법의 첫머리 ‘계편’에서 병법의 대원칙을 기술하는데, “도란 임금이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과 일체감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썼다.

 

손무는 부친의 말대로 전적지를 돌아다니며, 무엇을 보듯 병법과 연결 지어 생각을 했다. 갑골문을 뒤지다가 ‘치수낙서’편에서 수로이도해(水路而到海)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바다로 가는 수로를 연다’는 뜻으로 ‘기존의 물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뚫는 방식’을 택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착안해 무는 “군의 형세도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작전도 강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쳐야한다.”라고 생각한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신하가 폭군을 몰아낸 방벌(放伐, 이신벌군 以臣伐君)인 신하 탕이 하 왕조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하늘의 뜻으로 받들던 하 왕조(걸왕)의 민심에 일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 이를 기점으로 후대 폭정을 명분으로 많은 방벌이 이어졌다.

 

바른 정치, 백성 일자리 마련, 호화생활, 후궁 감언이설, 뇌물, 충신 멀리 간신 가까이 등 탕왕의 반성을 담은 ‘자책육사(自責六事)’에, 요순 우임금의 행적을 참고해 병법 제1편 오사칠계(五事七計)를 작성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임금과 백성의 일체감(도, 道), 정세(천, 天), 환경(지, 地), 장수의 자질(장, 將), 조직과 규율 그리고 군수물자 보급(법, 法) 등 ‘오계’로 성찰하고, 양쪽 군주의 민심, 양쪽 장수의 유능성, 양쪽 천시(天詩)와 지리(地利), 양쪽의 병력 수와 무기의 우수성, 양쪽의 병사 훈련상태, 양쪽의 상벌의 엄격함과 공정성 등 ‘칠계’로 아군과 적군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전쟁은 나라의 흥망이 달려 있는 중대사이기에 싸워야할지 말지부터 결정하고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쟁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손무는 강조한다.

 

병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에게 적전지에 가 직접 확인하라고 했던 부친 손빙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자연에서 와 자연으로 돌아간다. 천지의 시초가 바로 무(無)이거늘, 태어났다고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간다고 너무 슬픈 일도 아니다. 물처럼 흐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것을 좋게 여겨야 한다. 손무야, 이 생애서 부자로 맺은 인연이 이제 끝나는 구나. 병가를 연구하는 동안 세 가지만 기억하라. 병법은 전쟁을 종식 시키는 것이며, 전공을 세운 후에는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는 법이다. 칼로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인(仁)으로 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손무가 동시대 사람이고 일곱 살 많은 공자를 만나 ‘인(仁)과 예(禮)에 대해 물었다.

 

“진리는 늘 평범한 것이다. 인이란 내게 싫은 짓은 남에게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도 해주는 것이다. 예란 각자 자기 신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정명, 正名)이다. 인간의 육신은 충동적이지만 본래 천성은 순수하다. 인과 예에 따른 행동을 하려면 천성을 덮고 있는 사욕을 멀리해야 한다. 그것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이며 그런 삶을 사는 이를 군자(君子)라고 한다.” - 본문 중에서-

 

손무가 병법을 만들 때 <도덕경>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자, 공자가 답을 한다.

 

“손 선생의 병법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싸우지 말고 이겨라, 이겨 놓고 싸워라, 신속하게 승리하라, 앞으로도 땅의 도리를 이만큼 밝혀내기 힘들 것이오.” - 본문 중에서

 

요나라의 책사 오자서가 손무에게 ‘만일 적에게 허(虛)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아무리 완벽해도 필연적 허가 있다. 승리란 상대의 강점을 피하고 허를 치는 자의 몫이다. 먼저 주도권을 잡아야 하고, 적의 오판을 유도해야 하고, 아군은 집중하고 적은 분산시켜야 하며, 승리란 만드는 것이다. 특히 군대의 형세란 물과 같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듯 적과 싸울때도 적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쳐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손무의 5대손 손빈(382~316)도 손무의 병법에 기인해 싸우지 않으려 했고, 꼭 싸워야 한다면 이겨놓고 싸울 구상을 했다. 손빙이 손무를 낳았고 손무에게는 손치, 손명, 손적 등 세 아들이 있었다. 손빈은 손무의 둘째아들 손명의 4대손이다. 가계도를 살펴보면 손빙, 손무, 손명(손무의 둘째아들), 손순, 손기, 손조, 손빈으로 이어진다. 증조부 손순, 조부 손기, 부친 손조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손무 가문은 과거부터 병법을 연구하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문화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150년이 흘러 가풍을 깬 후손이 나타났는데, 바로 손빈이었다. 아버지 순조가 아들 손빈을 당대 최고의 전략가 귀곡자의 문하생으로 보낸다. 여기에서 귀곡자의 문하생으로 절친 방연을 만난다. 하지만 방연은 혜왕을 만나 손빈을 모략했고, 그로 인해 혜왕은 군졸을 시켜 손빈의 연골을 잘라내 앉은뱅이 신세가 된다.

이 때 대도를 깨달은 손빈은 불구가 된 몸과 달리 정신은 어느 때보다 자유스러웠다. 와신상담 끝에 제나라 군사로 임명돼 군권을 쥔 손빈은 위나라 장수 방연에 대한 복수의 힘을 가졌던 것이 차분해 졌다. 그는 그동안 익혔던 병법의 세 가지 대원칙을 정리한다.

 

손무의 가름침인 ‘할 수 있으면 싸우지 말고 이길 것, 싸워야 한다면 이겨놓고 싸울 것, 싸움을 시작했으면 빨리 끝낼 것’을 정리한 후 ‘적에게 이익을 주어 본심을 드러나게 하면서도, 적을 두렵게 해서 실수하게 해야 한다는 점과 상대의 강점을 피하며 기회를 타 약점을 칠 것 그리고 자신을 덜 노출하고 적을 더 많이 노출할 것 등 귀곡자의 가르침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자는 천하를 잃고, 함께 누리려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라는 묵자의 가르침을 적었다.

 

이렇게 손무, 귀곡자, 묵자 등 세 사람의 교훈을 비단에 적어 벽에 걸었다. 며칠 뒤 당시의 영웅 진기가 찾아와 걸어놓은 족자를 궁금해 했다.

 

“제 조상 손무께서는 멀리 보되 치밀하게 시작하는 법을 강조했으며, 스승 귀곡자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르쳐 주셨고, 묵자께서는 독점욕을 버리면 무용의 용으로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본문 중에서

 

손빈을 죽이려던 친구이며 위나라 장수 방연, 그에게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손빈, 결국 손빈이 이끈 제나라 군졸들에 의해 계곡에 갇혀 스스로 자결을 택한 방연. 방연이 손빈을 죽이려다가 도리어 손빈의 명성만 높여주는 꼴이 된 것이다.

 

손빈은 군세가 열악한데도 삼사법과 감조유적 등의 전략으로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비록 친구에 의해 앉은뱅이가 됐지만 생애의 마무리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춘추전국시대 영웅들인 오자서, 오기, 상앙, 전기 등의 말로가 대개 비참했으나 손무나 손빈은 누구도 부러울 것 없는 평안한 노년을 보냈다.

춘추 초기 180여 제후국이 말기에 14개국으로 줄었고 다시 전국시대 7대 강국으로 재편된, 춘추전국시대 1600여 차례 전쟁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영웅호걸이 명멸하고 온갖 전술전략이 난무했다. 이 책은 손무와 손빈의 활약성을 그렸지만 <손자병법>의 의미인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자연현상과 인간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저자는 재차 강조했다.

 

어부지리, 관포지교, 와신상담, 이열치열, 오월동주, 군파군망, 구천상분, 상분지도 등 수많은 사자성어들이 이 시기에 등장해 지금까지 전해온 점도 일독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 특히 인간의 지혜와 처세술에 대한 얘기가 독자들의 시선을 끌듯하다. 소설 끝머리에 <손자병법> 총 13장의 원문을 담았는데, 원문과 비교해 읽은 것도 재미를 더할 것 같다.

저자 이동연은 <소설 삼별초>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심리학으로 읽는 손자병법>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그리스 로마신화>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 <명작 뒤에 숨겨진 사랑> <사상사로 본 중국왕조사> 등의 수많은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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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6/15 [16: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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