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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 전여옥 대변인의 콤플렉스
[정문순 칼럼] 최소한의 합리성과 규칙마저 말살시키는 가진자들의 망언
 
정문순   기사입력  2005/06/09 [14:11]
내가 사는 서민아파트는 바람잘 날이 별로 없다. 한밤중에 어디선가 부부싸움이라도 났는지 고함이며 울음소리, 뭔가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갈라놓거나 노상 취객들의 고성방가가 새벽까지 이어지기 일쑤이다. 밤뿐인가. 대낮에도 술에 취해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우리 동네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부유한 아파트촌은 벤치에 앉아 맥주캔을 따는 것도 교양 없는 행동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 동네 사람들은 품위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과는 사고 방식이나 생활 태도가 사뭇 다를 것이다. 남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은 자제할 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별로 잘못하지 않아도 미안하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사람들일 테지.
 
하찮은 일에도 감사나 사과의 말이 튀어나오는 사람들은 교양인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이 넘친다면 세상은 밝아질 것이다. 만약 하찮음의 경계를 넘어선 일이라면 ‘교양인’들은 그들 특유의,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대처 방식이 따로 있다. 아쉽지만 교양이니 품위니 하는 말은 더 이상 딸려가지 않는다.
 
가진 자들 중 이익이 걸려 있는 일에까지 점잖게 행동하는 이는 무척이나 희귀하다. 이들로서는 아무 데서나 술을 마시지 않는 정도의 절제와 예절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며, 그건 오히려 든든한 물적 자본이 받쳐준 한 자락 마음의 여유에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품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터럭이라도 건드리지 않을 사소한 데서나 발휘될 뿐, 제가 가진 것에서 부스러기라도 남한테 떼이겠다 싶으면 짐승만도 못하구나 싶은 ‘교양인’들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기득권자들에게 돈과 권력으로 쌓아올린 자신의 철옹성은 어떤 양보나 타협도 허락되지 않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과 인터뷰한 잡지사 기자가 끼니를 걸렀음을 간파하고 샌드위치를 듬뿍 챙겨주어 그를 감동시켰던 한나라당 대변인 모씨는 남의 배를 채워줄 아량은 있어도 학벌이 낮은 이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건 봐주기 힘들다.
 
대통령 노릇은 자기 집단만의 몫인데 대학 구경도 못해본 자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얼마나 분하겠는가. 그런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대학 못 간 사람들의 이유 없는 박탈감으로 간단히 치부하고 마는 것은 그를 포함한 이 나라 기득권자들의 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1%의 투정이나 시기로 모는 삼성 재벌의 태도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가진 자들에게 공통된, 잘 난 자신을 못난 이들이 배 아파한다는 심사는, 자기 것의 정당성을 그런 식으로 강변할 수밖에 없는 초조함을 잘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초조함이나 불안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공정한 경쟁에서 이긴 결과가 아님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품고 있는 한탄은 최소한의 합리성과 규칙마저 저버린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관련되어 있다. 없는 ‘것’들이 자신을 저주하리라 보는 가진 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소시민들은 희망 없는 사회에 대한 좌절감을 자신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간 기득권층에게 돌리지 않는다.
 
헌법재판관이 탈세하는 나라에서 서민이 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도리어 자신을 향해 고스란히 겨누는 것이다.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갈지자를 걷는 우리 아파트 취객의 절망감은 자기 몸을 갉아먹는 결과밖에 얻는 것이 없다. 가진 자들이 콤플렉스에 사무쳐 소외된 이들을 바닥까지 능멸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여옥 부류의 망언이 결코 관용을 입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옆 동네의 고급 아파트 주민들은 몇 년 전 주변의 노점상들을 모조리 몰아냈다. 자가용이 드나들 때 불편하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이권과 무관한 사소한 불편에는 너그러운 것이 기득권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하긴 부유촌 자락에 줄지어 있는 남루한 노점상들이 ‘교양인’들의 눈에 거슬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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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6/09 [14: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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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만 2005/06/12 [23:57] 수정 | 삭제


  • ‘초졸의원’과 학벌사회


    그 (이 상락)는 너무나 가난했다. 그래서 학교엘 못 다녔다. 겨우 초등 학교를 마친 후, 곧장 생활 전선에 나서야 했다. 노점상, 목수, 포장마차, 밑바닥 인생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했다.
    그러다가 빈민 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 때 얻은 별명이 ‘거지 대왕’, 그 ‘거지 대왕’은 똘마니들에게 한컷 폼을 잡느냐고 악의없는‘거짓말’을 했다. “나는 이래뵈도 고등학교를 나왔다구~”

    그 ‘거지 대왕’이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금배지를 달았다. 시대의 바뀜을 보여주는 한 상징이었다. 당당히 39.2%의 득표를 했다. 시의원, 도의원 세 번을 거쳐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진력하는 사람”, “의정 활동에 너무나 성실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인물평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학력 사항/고교 졸업장 위조 혐의로 금배지를 떼이고 감옥엘 갔다. “피고인이 학력을 속인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교 졸업 증명서를 TV 토론에서 제시하는 등 죄질이 불량해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 판결문의 요지다.

    자, 우리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이제 공인은 눈꼽만치의 거짓 말도 용납치 못한다”는 사법부 판결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거짓 말을 떡 먹듯하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 경우, 그의 악의없는 이 거짓말이 그 누구에게 얼마만한 피해를 주었을까? 상대 후보에게? 아니면 유권자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가 얻은 표는 결코 그의 학력을 보고 던진 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작 ‘고교 졸업’ 거짓말이, 진정 “죄질 불량…엄정 처벌” 대상이고, “금 배지 박탈…1년 징역”감이 될 것인가?

    고개가 갸웃둥 해진다. 물론 그는 실정법을 위반했다. 그런데 그 위반 사항이 겨우 ‘고교 졸업’ 행세다. 국/내외 석/박사 고학력이 넘쳐나는 시대, 그들이 보기엔 참으로 웃으꽝스런 학력 과시다. 여기서 필자는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가치 척도의 다름을 새삼 확인한다. 배운 자에겐 별 것도 아닌 일이, 못 배운 자에겐 생애를 몽땅 앗아가는 이 가치의 다름, 그러면 한국같이 학벌이 일종의 패권주의가 되어있는 사회에서 못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선 안된다 (must not)”고 처벌을 일삼는 법만으로써는 이 세상은 너무나 살벌해 진다.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법을 넘어선 인정이고, 동정심이고, 약자에 대한 배려다. 그리고 배워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아는 힘 (knowledge’s power)’을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만치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 삶의 터전에서 숱한 불이익 (disadvantage)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느 만치 바쳐야 한다. 그것은 마치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사회 정의를 위해 그 부의 일부 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당위와 맥을 같이 한다. 참 지식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다.

    이에 비추어, ‘고졸 행세-금배지 박탈-1년 징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의 법체계가 대륙법 실정법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참 지식인 었다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죄질 불량…엄벌 대상이나…피고가 지금까지 살아 온 생애의 정상을 참작…국회 의원 재임 기간 중에 반드시 고등 학교 과정을 이수토록 하라”.

    이런 멋진 판결이 나왔다면, 군사 독재 시절 시국 사범에 대해 외부에서 날아 오는 ‘형량 쪽지’를 보고 거기에 적힌대로, “징역 1년, 2년, 3년” 판결을 했던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으리라. (추기: 국회의원 웹사이트 명단에 그의 학력은 “독학”으로 되어있다.)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