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게 MBC FM의 「FM 영화음악」의 DJ 정은임 아나운서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건 1년 전 이맘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병명은 ‘췌장암’과 ‘십이지장암’이었다. 췌장은 질병에 걸릴 경우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봉합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선뜻 수술을 하기도 망설여진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50여일 전부터 아버지는 병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 한모금, 미음 한 숟가락 넘기지 못한 채. 그러나 잔인하게도 의식은 또렷한 채. 혈소판 링거와 주기적인 수혈 만이 유일한 영양공급원이었다. 입안은 온통 핏덩이가 엉겨 있었고, 몸뚱아리는 나비보다 가벼웠다.
먹은 것도 없는데, 하루 서너 번 정도 그야말로 ‘피똥’이 나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루 걸러 한 번 쯤 의식을 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제선이(올해 4살인 큰 조카)였다. 그 놈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는지 모르는지 제선이는 할머니 보다는 할아버지를 더 따랐다. 옛날 양반답게 손녀 보다는 손자를 더 선호하는 아버지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내 새끼인 것을.
마지막 날이었다. 담당의사가 나를 찾았다. 형은 출근하고 난 뒤였다. 연락 가능한 친지들에게 연락을 미리 해 두란다. 그리고는 레지던트 한 사람을 소개했다.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해 줄 의사란다. 착하게 생긴 여의사였다. 나는 내내 아무 말이 없고, 의사는 미안해 했다. 그가 내게 미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주말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는 사람이었다.
오전부터 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대전에 사시는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급히 오신단다. 고위공직에 계시는 분이라 몸 빼기기 쉽지 않음에도 (그날은 대통령이 대전에 오는 날이었다) 지금 출발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강릉에 사는 모든 친척들이 다 온 것은 아니었다. 연락 드린 친척도 몇 안된 까닭이다. 평소에는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가, 누군가 죽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서야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드는 ‘집안 어른들’을 나는 우리집 말고도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들께만 연락 드렸다.
정오가 지나가자 동공이 풀리기 시작하고 심장 박동이 차츰 느려졌다. 어머니는 담담했다. 2년여 동안 병수발을 한 까닭이리라. 눈가에 언뜻 언뜻 물기가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머니는 그저 침묵 뿐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와전히 감지 못한 상태였다. 눈동자가 하도 건조해 보여서 눈꺼풀을 감겨 드리면 슬며시 떴다. 무의식 중에 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저녁 7시 작은아버지가 도착하고, 친한 친구분 내외도 왔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심장박동을 유지해 주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것. 이미 동공은 완전히 풀렸고,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 발끝부터 서서히 차가워지는 몸. 사람의 몸이 그렇게 복잡한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냉기가 가슴까지 올라오면 그게 바로 ‘죽음’이란다. 그런가 보다 했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다.
저녁 10시 46분 23초. 심장박동을 체크해 주는 기계에서 가늘고 긴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비로소 터지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와 형수의 울음. 그리고 작은아버지와 친구분의 긴 한숨. 여전히 눈은 감지 못한 얼굴로. 단 한 마디의 유언도 없이, 그게 다였다. 죽음은 TV나 영화에서처럼 근엄하지도 숭고하지도 그리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 영상들은 우리의 얄팍한 이기심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죽음은 오히려 지저분하고 역겨우며 토악질 나는 현실을 우리의 눈 앞에 펼쳐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이별을 한다. 그리고 그 이별의 뒤안길에는 늘 근원을 알 수 없는 허허로움과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 별들도 영원한 이별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초신성(超新星)’이라 부른다. 그 별의 잔해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한다. 하루에도 수십개 씩의 별들이 사라지고 나타난다. 다만 우리의 아둔한 눈이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사랑법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이별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소유한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하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할테니까. 그 작은 어깨를 우리에게 수없이 빌려준 사람. 정은임, 그녀가 떠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저 일 년에 한 두 번 기억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종종 외롭거나 쓸쓸할 것이다. 그 이유도 모른 채.
외로움이란 나를 찾아 올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정은임이 떠난 오늘, 그처럼 결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아마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새벽마다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같이 울어주고 같은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자체로도 우리의 선천성 외로움을 나누어지던 사람. 요즘 내가 쓸쓸한 까닭이다. 내가 기꺼이 찾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 말이다.
내 마음의 변방에서, 감자꽃 필 무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