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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 경계는 어디쯤일까?
새벽녁 낮은 목소리로 만난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죽음에 부쳐
 
감자꽃   기사입력  2004/08/05 [14:22]
어제 밤 늦게 MBC FM의 「FM 영화음악」의 DJ 정은임 아나운서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건 1년 전 이맘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생전 밝은 모습의 정은임 아나운서    
아버지의 병명은 ‘췌장암’과 ‘십이지장암’이었다. 췌장은 질병에 걸릴 경우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봉합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선뜻 수술을 하기도 망설여진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50여일 전부터 아버지는 병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 한모금, 미음 한 숟가락 넘기지 못한 채. 그러나 잔인하게도 의식은 또렷한 채. 혈소판 링거와 주기적인 수혈 만이 유일한 영양공급원이었다. 입안은 온통 핏덩이가 엉겨 있었고, 몸뚱아리는 나비보다 가벼웠다.
 
먹은 것도 없는데, 하루 서너 번 정도 그야말로 ‘피똥’이 나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루 걸러 한 번 쯤 의식을 놓기도 했다. 그러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제선이(올해 4살인 큰 조카)였다. 그 놈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는지 모르는지 제선이는 할머니 보다는 할아버지를 더 따랐다. 옛날 양반답게 손녀 보다는 손자를 더 선호하는 아버지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내 새끼인 것을.
 
마지막 날이었다. 담당의사가 나를 찾았다. 형은 출근하고 난 뒤였다. 연락 가능한 친지들에게 연락을 미리 해 두란다. 그리고는 레지던트 한 사람을 소개했다.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해 줄 의사란다. 착하게 생긴 여의사였다. 나는 내내 아무 말이 없고, 의사는 미안해 했다. 그가 내게 미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주말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는 사람이었다.

오전부터 아버지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대전에 사시는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급히 오신단다. 고위공직에 계시는 분이라 몸 빼기기 쉽지 않음에도 (그날은 대통령이 대전에 오는 날이었다) 지금 출발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강릉에 사는 모든 친척들이 다 온 것은 아니었다. 연락 드린 친척도 몇 안된 까닭이다. 평소에는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가, 누군가 죽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서야 하이에나 떼처럼 몰려드는 ‘집안 어른들’을 나는 우리집 말고도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들께만 연락 드렸다.

정오가 지나가자 동공이 풀리기 시작하고 심장 박동이 차츰 느려졌다. 어머니는 담담했다. 2년여 동안 병수발을 한 까닭이리라. 눈가에 언뜻 언뜻 물기가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머니는 그저 침묵 뿐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와전히 감지 못한 상태였다. 눈동자가 하도 건조해 보여서 눈꺼풀을 감겨 드리면 슬며시 떴다. 무의식 중에 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저녁 7시 작은아버지가 도착하고, 친한 친구분 내외도 왔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심장박동을 유지해 주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것. 이미 동공은 완전히 풀렸고,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 발끝부터 서서히 차가워지는 몸. 사람의 몸이 그렇게 복잡한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냉기가 가슴까지 올라오면 그게 바로 ‘죽음’이란다. 그런가 보다 했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다.

저녁 10시 46분 23초. 심장박동을 체크해 주는 기계에서 가늘고 긴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비로소 터지는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와 형수의 울음. 그리고 작은아버지와 친구분의 긴 한숨. 여전히 눈은 감지 못한 얼굴로. 단 한 마디의 유언도 없이, 그게 다였다. 죽음은 TV나 영화에서처럼 근엄하지도 숭고하지도 그리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 영상들은 우리의 얄팍한 이기심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죽음은 오히려 지저분하고 역겨우며 토악질 나는 현실을 우리의 눈 앞에 펼쳐 보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이별을 한다. 그리고 그 이별의 뒤안길에는 늘 근원을 알 수 없는 허허로움과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 별들도 영원한 이별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초신성(超新星)’이라 부른다. 그 별의 잔해에서 새로운 별이 탄생한다. 하루에도 수십개 씩의 별들이 사라지고 나타난다. 다만 우리의 아둔한 눈이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사랑법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스스로가 이별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소유한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하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할테니까. 그 작은 어깨를 우리에게 수없이 빌려준 사람. 정은임, 그녀가 떠났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그저 일 년에 한 두 번 기억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종종 외롭거나 쓸쓸할 것이다. 그 이유도 모른 채.

외로움이란 나를 찾아 올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정은임이 떠난 오늘, 그처럼 결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아마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새벽마다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같이 울어주고 같은 시간대를 살아간다는 자체로도 우리의 선천성 외로움을 나누어지던 사람. 요즘 내가 쓸쓸한 까닭이다. 내가 기꺼이 찾아갈 사람이 없다는 것 말이다.
 
내 마음의 변방에서, 감자꽃 필 무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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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05 [14: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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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jddmsdla 2004/08/05 [16:54] 수정 | 삭제
  •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

    cafe.daum.net/wjddmsdla


    당신의 시선, 당신의 감수성, 당신의 ... (보리)


    어제 밤,
    힘들게 투병중이시던 선배님의 빈소에 다녀오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정은임님의 소식에... 정말 절망이 밀려옵니다.

    선배님은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일하는 사람, 힘없는 사람을 향해 손과 마음을 내어놓으셨던,
    나은 세상 하나바라보고 기꺼이 몸을 내어놓으시다 병마가 찾아왔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어찌... 어찌 ...
    그 분들이 아니면 아니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귀하고 귀한 두 분을
    한꺼번에 제 곁에서, 그 분들을 사랑하는 더 많은 분들 곁에서 떼어놓으십니까?


    잊지않을껍니다.

    당신의 시선,
    당신의 감수성,
    당신의 희망들...




    3년만에 글을 쓰네요 - 당신은 추억입니다 - 글쓴이: 안재민


    검색을 해보왔습니다.
    내가 이곳에 글을 써도 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서....!!
    2001년 4월 18일 이후 처음으로 글을 올리네요.

    언제나 지갑 속에 정은임 아나운서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
    그 친구를 따라 반포동 정은임 아나운서 집 앞을 서성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를 가던 중 신촌에서 내려 여의도 MBC까지 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추억과 기억을 남긴 채 먼저 세상을 떠나신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추억입니다.
    당신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을 준 당신에게 나는 아무말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내 소중한 추억은 내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만들고,
    다시금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훗날 시간이 흘러 살아온 날들을 되새겨볼 때,
    그래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은 내가 당신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은임이 누나... 매형도 곱슬머리네... 글쓴이: 민철호


    어제 은임이 누나 매형을 처음 만났네.
    누나 결혼할때는 못갔었는데
    역시나 가봤던 재환이 형 말대로 나를 닮은 구석이 있더라.

    근데 누나가 국화꽃에 둘러쌓인 영정으로 보이는데도
    난 눈물이 나지 않더라.
    그냥 멍한 사람처럼 앉아 정은임팬클럽 같은 회원분들과
    수다만 떨다 왔어.

    누난 그냥 이세상만 등진게 아니야.
    누나와 함께 했던 팬들의 기억도 누난 한꺼번에
    다 들고 가버린거야.

    이제 난 어디가서 전화로 누나에게 밤을 새워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해주었다고 자랑을 하지?
    그 대학생이 이제는 서른 넷 가장이 되었다고
    어떻게 자랑스레 말을 하지?

    수도 없이 누나 프로그램에 나왔던 나의이름들과 사연들의
    진심을 이제 누가 기억을 할까?

    누나처럼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충무로에서 일하는 수많은 스탭들 관계자들
    어디가서 누나와 함께 했던 영화공부와 열정을
    이야기 하지?

    그래 나는 그렇다고 쳐.
    누나프로그램에 한번도 사연 못보내고
    영화때문에 세상때문에 가슴 앓이 했던 팬들은
    이제 누가 기억해 주지?

    이 바보야. 가족과 팬들에게 지금 얼마나 진죄가 많은지나 아는거야?




    아아, 나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출근을 하고... 글쓴이: 咫尺天厓


    나는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밥을 먹고 엄마에게는 지나가는 듯한 말로
    "정은임 아나운서가 죽었네..."

    아아 나는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길옆에 피어난 비비추를 보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놀러가는 듯 차려입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보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아아 정말로 나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출근하여 매일 그랬듯 사무실의 쓰레기를 비우고 따가운 해를 피하기 위한 커텐을 치고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저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카페에 들어와서 지난 2000년 10월 부터의 글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다들 너무들 좋은 분들 같고, 다들 소박한 분들 같고, 다들 닉네임들은 어찌나들 귀여우시던지, 정은임과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만 쓰실 수 있는 이름들. 리버피닉스, 은임사랑, 애정성시, 황약사, billy,,,,등등 다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름들로만으로도 제 추억의 일부분 같고, 꼭 저하고도 성격이 똑같을 것만 같은 분들의 이름들과 글들을 읽으며 잠시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은임님이 식중독에 걸려 아팠던 이야기, 아이가 깰까 헤드폰으로 영화를 보신다는 이야기, 등등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맨 위 두줄에 걸린 공지. 가 ...


    가끔 김광석님의 노래를 부르다 그저 담배만 피워 물 때가
    더 많아질것 같습니다.

    은임누나, 부디 편안한 곳에서 쉬시기 바래요.
    이곳일랑은 아예 잊고 리버 피닉스도 만나고, 장국영도 만나세요.

    우린 괜찮아요. 열심히 살께요. 매미가 제 머리가 터질듯 울어대고 있어요.
    마치 이 곳의 삶은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누나. 영원히 사랑해요.




    아프고 화나고 미안합니다. 글쓴이: 도룡님


    한번도 본적없지만 언제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동지였고
    그래서 소중한 친구하나를 잃은 것만 같아서 너무 아픕니다.

    당신이 내게 힘을 주고 벗이 되었을때만 저는 당신을 찾았고 곧 당신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당신이 이렇게 훌쩍 가버리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알게된 것은 제게는 너무 큰 행운이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듣고 계세요? 사연 한번 보내지 않았지만 당신을 늘 한켠에 담아둔 당신의 수많은 사람들중 하나 저의 목소리를.......


    좋은 곳에 가셔서 이제 좀 쉬세요.

    행복하셔야 해요.....



    은임아, 하지 못한 말이 너무나 많다. 글쓴이: tantpis


    병상에 누워있는 너를 보았어도

    의사들이 힘들거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도

    설마 설마 했단다.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소리로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로

    반겨주던 너를 다시 못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사랑하는 은임아

    하나님은 문을 닫으실 때

    또 하나의 창문을 열어놓으신다고 했지.

    너의 가족과 모든 이들이

    그 창문을 통해서 별을 보면서

    너를 만날 수 있도록

    내가 늘 기도할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글쓴이: Sevenseas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몇 번 지나치긴 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삼성의료원을...
    헤맨 기억도 없는데, 어느 순간 주차권을 뽑으라는 안내방송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의 대형 TV에서 믿기지 않은 그 이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내려가다 말고 잠시 서 있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툭 치기라도 하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12,14,15호실...
    빈소에는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유족을 뵈면 가슴이 아파서 어떻게 견딜까 두려웠는데...

    MBC 사측과 노동조합에서 보낸 화환이 잠시 눈길을 잡아 두었고...
    결국 영정사진을 보았습니다.

    슬프게도 영정의 사진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얼굴은 당장에라도 '누구시죠?'라고 물어올 것 같은데...
    아니면 모르는 아이니 그저 스쳐 지나실 것도 같은데...
    저는 '정은임이야. 정은임'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하여 자랑해야 할 것도 같은데...

    잠시 입구에 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잠시...였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왜... 왜...

    돌아오는 길...
    이른 새벽이니 체증은 그렇다쳐도 교차로의 신호는 잠시도 저를 붙잡아 두지 않았습니다.
    통과... 통과... 통과...

    한 사람을 보내는 길이 이렇게 쉽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만나고 오는 길.
    잘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정신이 없었는데...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그 곳.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고 당신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언젠가는 한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한 해에 한 번 떠올리겠지요.
    이렇게 침통해도 언젠가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하하 웃기도 하겠지요.

    다만... 시간이 좀 흐른 뒤... 어쩌면 많이 흐른 뒤...
    좋아하는 영화음악이 나올 때, 썩 마음에 드는 국악을 들을 때, 읽은 뒤 행복함을 느끼는
    책을 덮을 때, 올바른 우리말이 헷갈릴 때...

    잊지 않고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정''사람'이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