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신자유주의깨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도끼빗 디제이] 은임아, 행복해라
故 정은임 아나운서의 어느 초등학교 동창생의 추억
 
도끼빗   기사입력  2004/08/06 [03:25]
음악성을 추구하는 고독한 인기 디제이 도끼빗입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사망 소식을 듣고 오랫만에 판에 얹은 먼지를 털어내고 디제이 박스에 앉았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도끼빗 디제이는 은임이와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老子는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 모습이었다는 속설이 있지요. 제가 보고 기억하는 5학년 짜리 은임이도 어른 모습과 똑같은 바로 그 얼굴 그 말투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제가 보지 못한 갓난 아기 시절도 똑같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예쁘고 똑똑하고 어른스런 정은임이 그저 크기만 작아진 채로 매일 우리 눈 앞의 교실과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지나다닌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어찌 전교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의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 꼬맹이들이 기껏 찾아낸 정은임 험담이라는 게 “흥, 쟤는 키도 작은 주제에 무슨 엉뎅이가 저렇게 크냐” 머 이런 거였습니다.

도끼빗은 은임이와 같은 아파트 바로 뒷동에 살았더랬습니다. 그래서 가끔 방과 후 집에 오는 길에서 마주치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말도 좀 붙이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전교적 왈가닥이라는 것 말고는 자신있게 내놓을 것이 없던 도끼빗, 어서 옆에 가지도 못하고. 기껏 한 짓이라고는 주변에 항상 드글거렸던 왈패 패거리들과 함께 집에 가는 은임이 한 20미터 뒤에서 짖궂은 소리나 해대는 거였죠. “야 엉뎅이 한번 크다..” 머 이딴 소리. 도끼빗 같은 못난 머스매들의 이 따우 “히야까시”에 시달려 익숙해진 은임이는 가끔 한번 돌아보고 그냥 킥 웃고 말아서 되레 우리만 머쓱해지곤 했습니다.

은임이가 중학교 졸업할 적에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조직하려고 도끼빗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14살짜리 소녀 그리고 대학들어온 여대생 모습의 은임이도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네요. 정말 믿을 수 없는 “비눌리아” 정은임. 생김생김도 말투도 그리고 하는 행실도 전교 어린이 부회장 시절의 꼬마 정은임 그 모습 그대로. 똑부러진 말투에 너무 어른스런 생각. 한번은 무슨 남녀 미팅 비슷한 자리였는데, 한참 웃고 떠든 후 끝날 때에 우리의 정은임 선수 “자, 그럼 우리 이제 이 자리를 정리하는 의미에서…”하는 멘트를 날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은 한창 여드름 뻗치던 왈패 소년 도끼빗에게는 너무나 낮선 것이었드랬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못난 도끼빗, “엉뎅이” 운운 대신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신포도” 대사를 찾았습니다. “에이, 재수없어”.

도끼빗은 90년대 정은임 아나운서의 프로를 한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알던 그 “비눌리아” 정은임이라면 뭐 안보고 들어도 비디오 오디오려니 했을 뿐이었죠. 그런데 새로 알게 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은임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다가가서 곰살궂게 어루만져주었는지. 영화라는 게 그저 찍 늘어져 팝콘 씹으며 보는 강건너 불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있어야만 하는, 있을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있지 않은” 바로 우리들 세상이라는 것. 그것을 일깨움으로서 비루하고 너절한 현실에 매일 지쳐가던 우리들에게 기쁨과 꿈을 가져다 주려 은임이가 얼마나 애썼는지. 그래서 그 현실 속에서 천천히 질식해야했던 90년대 어항 속의 우리 금붕어들이 그나마 뽀꼬뽀꼬 숨을 쉬러 모여든 것이 그녀의 음악판이었다는 것. 그리고 걔중 몇 마리 금붕어는 은임이의 그 작은 어깨에 염치불구 아예 눈물콧물 다흘려가며 한없이 파고 들었다는 것도.

“비눌리아” 은임이, 이렇게 따뜻하고 깊은 마음이 있는 정은임 아나운서는 내 기억 속의 꼬마 은임이 그리고 중학생 대학생 정은임양 바로 그 사람이겠죠. 그렇다면 한결같았던 것은 그녀의 예쁜 얼굴 똑부러진 말투 만이 아니고 그 곱고 착한 마음도 그랬었다는 말이었군요. 그녀의 뒷동에 살았던 도끼빗,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살 수 있었던 우리 모두는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老子같이 쭈굴쭈굴한 애늙은이 대신 정은임 “비눌리아”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보았던 사람으로서 감히 증언 장담하건대, 정은임 아나운서는 아마 천국이든 극락이든 어디에서건 똑같은 모습으로 “비눌리아” 그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고달프게 살다간 리버 피닉스랑 김광석이랑 모아놓고 또 예의 그 “자, 이 자리를 정리하는 의미에서…”하는 어른스런 말투로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 풀고 웃어봅시다. 은임이는 지금 저쪽 나라에서 리버 피닉스랑 “바람”이 나서 바쁘다고 그래서 당분간 방송 복귀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 대신 그 바람 대충 정리되면 언젠가 자세히 이야기 해준다고 하네요. 도끼빗, 리버 피닉스가 밉긴 하지만 은임씨의 행복을 위해서 그냥 순순히 보내 주기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 흐르고 있는 음악은 Three Degrees의 When I See You Again 입니다.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8/06 [03:2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walldong 2018/08/17 [09:21]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지인의 증언을 들으니 새롭네요.
  • 저승 2004/08/30 [22:41] 수정 | 삭제
  • 죽은 사람이 행복할 능력이 있나요? 하기는 완전한 무의 세계가 저승이 있는거 보담 낫겠죠.
  • 이렇게 2004/08/16 [15:27] 수정 | 삭제
  • 스타라고...?
  • 은임사랑 2004/08/12 [11:44] 수정 | 삭제
  • 그는 싸우지 않는 투사였고 우리가 닮고 싶은 애인이었다
  • 눈물방울 2004/08/09 [16:07] 수정 | 삭제
  • 가슴이 메이는 노래. 나이를 먹어도 잊혀지지 않은 노래.
    모처럼 이곳에 들어와 듣네요.
    제 기억으로 동경가요제 대상곡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 곡 올려줘 감사합니다.
  • ㅇㅇ 2004/08/09 [11:44] 수정 | 삭제
  • 기득권적 상업주의 방송국에서 월급 타먹고 즐겁게 일했던 라디오 아나운서의 사망에 열광한다?. 죽음이야 안타깝지만,..그 이유는 뭘까?.
    지금 시대는 저항의 본질을 잊고 저항의 스타일만이 남았기 때문.
    미국의 젊은이들은 체게바라가 어떤 혁명을 했는지 모른다. 다만, 그 혁명의 스타일이 멋있어서 열광하는 것. 그 스타일,,그게 전부지..
    마찬가지, 정은임 아나운서가 사회적으로 보수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시키는 방송국에서 연봉3000을 받고 일했느냐 하는 건 모른다. 단지.. 왠지 그 진보적(?)인 스타일이 멋있는 거다.

    철없는 미숙아들이 판치는 인터넷 글쟁이들,,,,한국의 인터넷은 그래서 양만 선진국인 것이다.
  • 미나리 2004/08/09 [11:18] 수정 | 삭제
  • 제 기억에(저도 그 노래 좋아합니다.),
    Three Degrees의 When I See You Again 에서
    'When'과 'I' 사이에 'll(Will)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님 밀고!(어마 뜨거라!)
  • 그럼그렇지 2004/08/06 [16:57] 수정 | 삭제


  •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교통사고로 지난 4일 세상을 뜬 고(故) 정은임 MBC 아나운서에 대한 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 정 아나운서가 미리 자신의 사고를 암시한 것 같다는 기사를 보내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사고 직후인 지난달 23일 '정은임 아나, 교통사고 예견했나?'라는 기사를 통해 "정 아나운서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빗길운전'이라는 사진과 글이 사고를 예견한 듯한 느낌을 준다"고 보도했다.



    스포츠신문 굿데이도 정 아나운서의 영결식이 열린 6일 노컷뉴스와 같은 내용으로 '고 정은임 아나운서 마지막 글서 '운명' 암시 화제'라는 기사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글은 정 아나운서가 "예전부터 내게 빗길 운전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였다. 빗줄기가 형체를 허물어뜨린 풍경은 움직이는 파스텔화. 이제 나는 그 그림속으로 들어간다"며 빗길 운전의 감상을 썼을 뿐 사고를 예견했다고 볼 내용이 없어 '지나친 갖다붙이기식 기사'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게다가 사고당일 비가 온 적도 없고 이 글이 정 아나운서의 마지막 글도 아니어서 "상상력이 참으로 풍부하다", "고인의 죽음마저 장삿속에 이용하나"라며 냉소하는 네티즌들의 비난글이 포털사이트 뉴스코너 등에 수십건 이상 빗발치고 있다.

    ID 'bsbok123'은 "사고로 가족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상처받고 있는데 교통사고를 예지했다니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것이냐"며 "말조심 좀 해 달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Prayer'라는 네티즌은 "평소 그분의 생각과 방송을 접하고 교감했던 분이라면 이런 가십성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한다면 그저 명복을 빌어주고 이상한 기사로 죽음을 우롱하지 않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 도끼빗 2004/08/06 [14:41] 수정 | 삭제
  • 흑흑...요즘 벅스 뮤직 태그 달기가 어찌 이리 어려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