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러기 아빠, 아나운서, 그리고 '마시멜로 이야기'
[도끼빗의 갈라치기] 보이는 것이 전부가 돼버린 코메디 속 비극들
 
도끼빗   기사입력  2006/10/15 [05:58]
What appears to be only matters
 
어떤 기러기 아빠가 있었다. 아내와 딸을 캐나다로 보내고 자신은 학원 선생과 과외까지 뛰며 월 6백만원을 보내주었다. 아내는 그 돈으로 집까지 사면서 호화롭게 살았고, 아빠의 삶은 황폐해져갔다. 견디다 못해 태평양을 넘어간 아빠 기러기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었고, 이런 남자의 가정 폭력을 알카에다의 테러와 동일시하는 캐나다 경찰은 그에게 접근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다. 결국 아빠가 아내와 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둘이 한국으로 나올 때 뿐이었다. 아내는 자기들을 보고 싶으면 비행기 값을 더하여 부치라고 하였다.
 
아빠는 절망감과 분노와 증오에 휩싸였다. 그래서 어쩌다 한국으로 나온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고 말았다...이후 사태의 진전은 자세히 신문에 나오지 않았으나, 어찌되었건 거의 알거지가 되다시피 한 그 가정은 다시 셋 다 한국에서 아주 어렵게 살게 되었는데, 아빠의 성폭행은 상습적이 되어 결국 딸이 경찰에 신고하고 말았고 아버지는 수갑을 차게 되었다.
 
정지영이라는 아나운서가 있었다. 지적인 외모에 더해 이대 정외과 졸업에 요즘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아나운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한경 BP라는 출판사가 있었다. 갈수록 껄렁해져가는 한국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띤 그들은 정말로 대단히 껄렁한 경제 처세서 하나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제목인즉슨 머쉬맬로우 이야기....달콤한 머시멜로우 과자를 바로 먹어치우지 않고 저축해두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이다라든가 아침마다 사자와 사슴이 바쁘게 뛰는 이유는 한 쪽은 먹어야 하고 다른 쪽은 먹히면 안되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아이큐를 논하기 이전에 정신 상태를 점검해봐야 하는 하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는 마치 심오한 진리인 것 같이 통하는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란다.
 
출판사는 이 껄렁한 책이야말로 "경제처세서"가 난무하는 껄렁한 한국 도서 시장의 지적 수준에 찰떡 궁합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대박 신화의 씨앗으로 삼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이 책을 1억 2천만원의 거액으로 판권을 샀다. 번역은 원고지 1매당 4천원에 어떤 전문 번역가에게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화룡점정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껄렁한 독자들에게 삼신할미가 짝지어주신 운명적인 천생연분 껄렁 도서가 있다고 해도, 사랑은 그다지 쉽게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전달되는 데에는 아름다운 얼굴이 도움이 된다 (Fair face reveals inner virtue)". 내면의 수준이 맞는 두 존재가 서로의 인연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얼굴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지영 아나운서는 졸지에 그 책의 번역자의 감투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녀는 이 감투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듯 하다. "하룻밤에 100페이지를 번역했다"는 괴담을 스스로 유포시키는가 하면 이 또다른 번역자의 존재는 전혀 언급을 않은 채 4 차례나 자신이 몸소 나와 싸인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 덕에 이 책은 만인의 연인이 되었고, 무려 1백만명의 한국인들이 머쉬맬로우 과자는 먹지말고 아껴두어야 하며 사자는 먹어야 하고 사슴은 먹히지 말아야 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 곳곳에서 머쉬맬로우를 주머니에 가득 채운채 사슴피에 입이 젖은 사자들이 드글거리게 되었다고 한다.
 
도끼빗은 moralist가 아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오늘의 교훈" 따위를 추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이 두개의 이야기 - 하나는 horror story 또 하나는 comedy of error - 의 진정한 주인공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감상이 들 뿐이다. 저 기러기 아빠가 혐오스럽고 정지영 아나운서가 가증스러운가.
 
누가 자기 블로그에다가 "머쉬맬로우를 저축하자"든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먹고먹히는 사자와 사슴" 이딴 이야기를 써놓았다 하자. 누가 올까. 설령 온다고 해봐야 아마 개그 내지 엽기 블로그인 줄 알고 욕지거리 댓글만 달릴 것이다. 그런데 이 껄렁한 내용에다가 이대 정외과 + SBS + 아나운서 + 미인 + 지적 외모 + 대중적 인기 = 정지영 (이 허술한 방정식에 사과. parameter와 constant 를 제대로 된 regressive analysis로 구해야 옳을 줄 알지만 도끼빗이 좀 바쁘다) 이 하나의 렛떼루에 홀려 100만명이 배춧잎 몇 장씩 뿌려가며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익히고 또 그윽한 은혜를 받지 않았는가.
 
그러다 번역자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는 이 100만명. 이 comedy of error 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 100만명이 아닌가. 그리고 출판사니 정지영 아나운서니 는 모두 그 100만명이 벌이는 사상 최대의 집체극의 연출자 정도였다고 할까. 가슴이 벅차온다. 100만명 규모의 집체극도 연극사상 드물건만 하물며 comedy of error  장르라니. 갑자기 생각나는 광고 카피. "1000만명이 쓰는 카드면 좋은 거 아닐까요".
 
멀쩡한 가정이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사이에 졸지에 아버지는 고독한 돈벌이 장수에서 급기야 인면수심의 괴물로 변해버렸고, 딸은 일생 지우기 힘든 고통스런 멍에를 몸에 지고 말았고, 아내는 이 모든 광경에 조역으로 주역으로 출연해야 했다. 며칠간 십자가에 매달리는 게 힘들까 위의 일을 몇 년간 겪는 게 힘들까.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지점은 여기다. 십자가에 매달린 이는 전 인류의 죄를 씻고야 말겠다는 숭고한 목표가 있었다. 이 기러기 가족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딸아이 캐나다 대학 학사모였다.
 
영어 능력 보장하는 영미권 대학 졸업장은 이제 골고다의 보혈과 견줄 만한 聖物이 된 것일까.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기러기 가족들이 태평양을 꺼이꺼이 날고 있는 것일까. 영어로 된 졸업장을 聖物 로서 봉헌한 자들은 누구인가. 기업 대학 정부 그리고 그 알량한 영어 실력의 영미권 출신 지식인들과 교수들 등등등. 더 우스운건 그 말에 속아 사람이기를 멈추고 기러기로 변신하는 우리들.  
 
그래서 이 horror story 와 comedy of error 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있다. 바로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라는 철학적 원칙. 르네쌍스 시절 마키아벨리는 전통적인 중세 철학에 조소를 날리며, What Is 가 아니라 What Appears to Be, 즉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사물의 보이는 외양이 모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아이러니를 노린 것인지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진실은 마키아벨리쪽에 있다는 것이다.
 
정지영 아나운서라는, 영어로 된 대학 졸업장이라는 두 개의 "보이는 것"에 맞추어 꼭 슬램덩크 1권에서 유도부 주장이 휘두르는 소연이 사진에 넋을 잃고 헤롱거리는 강백호처럼 수백만 수천만이 얼이 빠져 mass game 을 벌인다. 때로는 그것이 근친상간과 가정파탄이 수반되는 공포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백만이 머쉬맬로우와 사자와 사슴 가면을 쓰고 charade를 벌이다가 경찰이 들어닥쳐 졸지에  망신을 당하는 코메디가 되기도 한다.
 
떠오르는 금언이 하나 더 있다. Umberto Eco가 전하는 바, 지금은 없어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의 첫 줄은 이렇다고 한다. "어리석은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웃고 즐기도록 하라". 이 모든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가혹하고 잔인한 코메디임도 모르고 엄숙한 표정으로 매체에 나서서 교훈적 말씀을 "비판적 시각"이랍시고 있는 대로 쏟아붓는 지식인 나부랑이들. 나의 그리고 우리들이 숨기고 싶은 이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폭로되고 있는 이 울지도 웃지도 못할 가혹한 코미디. 이 극작가의 천재성은 바로 이 이 어릿 광대들에서 극치점을 이룬다. 자기들이 광대들인 줄 모르고 있기에 그들의 연기는 더욱 휘황찬란하다.
 
도끼빗은 모럴리스트가 아니다. 누구를 욕하거나 비판할 생각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칠 이야기도 없다. 그저 이 밑도 끝도 없는 코미디를 어떻게 감당해야하는지 혹시 극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10/15 [05:5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도끼빗 2006/10/15 [23:36] 수정 | 삭제
  • 저는 대학에 뜻을 둘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만 오늘 어쩌다가 이런 저런 학과의 교수들과 8시간 동안 같이 밥먹고 술먹고 하다가 질식하는 줄 알았습니다. 대학에서 황당한 꼴 많이 보시면서 "인간 조건" 생각나는 때가 많지 않았을까...가방끈 긴 분들의 고생이 눈에 보입니다.
    도끼빗은 힘들 때는 그저 하늘 보고 땅보면서 삽니다. 특히 사람들이 싫고 피하고 싶을 때는요. 하늘하고 땅은 변함이 없고 또 몇 십년만 개기면 나도 거기로 돌아갈테니까요. 그러면 또 힘이 나데요.
  • OK 2006/10/15 [18:04] 수정 | 삭제
  • 글 참 좋습니다.
    자주 쓰세요.
    이런 글이 많아야 우리 국민이 교화가 될듯합니다. 한국은 지금
    age of Apathy 이니까 내가 헛소리를 하는지도 모르지요.
    지금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분단된 조국은 모든 국민을 정신분열증 환자를 만들었고 기러기 아빠니 딸을 강간했느니 하는 모든것들은 도피심리학에서 해답이 나올것 같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이상, 악에 찬 우리국민은 불상하기만 합니다. 정신분석학자인 Eric Fromm 이 Freud 보다 Marx 에 비중을 더 둔것도 바로 이런점에서 일것입니다. 그는 경국 미국 사회당의 창시자가 되지않았읍니까? 그의 명저 Anatomy of Human Destruction 의 심리를 나는 한국이라는 기형아에서 보고있읍니다. 지금 한반도로 몰려오는 전운(戰雲) 은 노일전쟁 당시의 100년전 한국운명보다 수100배 심각할줄압니다. 물론 The name of Rose 와 Foucaut's Pendulum 두개 밖에 읽지는 않았지만 저는 Umberto Ecco를 싫어합니다. 탐정소설도 아니고 Semiotics 도 아니고 물론 중세의 종교비밀을 알리는데 도움이 된듯하나 그게 어데까지가 사실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진실이 우리를 거부할지라도 진실에 충실해야합니다. 그게 우리의 숙명이니까요. 통일이 되야, 기러기 아빠도 정지영이도 사라집니다. 전여옥 (일본은 없다)도 없어지겠지요.
    도끼빗, 이름은 좀 희안하지만 글은 좋은듯하니 많이 쓰세요. 저는 이름없는 지방대학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Arthur Miller 의 Salesman 의 죽엄과 저를 비교하곤 합니다. 평생 공부 (좋아서)만 하다보니 나이도 50 이 넘었고....실력이 없어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배운도독이란 말이 있듯이 그것 외에 해먹을것이 없어 그저 충실하게 살려고 합니다. La condition humane ! 이게 저라고 생각하는것이지요. 그러나 내걱정보다는 나라걱정이 저를 더 우울하게 하고있읍니다. 이북의 핵문제가 나라를 휩쓸고 있는 이마당에...정치인들, 언론인들 보니 이게 경사인지 초상집인지 모르겠읍니다. 요다음에 기러기 아빠에 관해서 재미있는글을 올리지요. 기러기 엄마의 바람난 이야기...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