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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우리 곁에... 정은임 아나운서여
[추모] 영화의 어머니, 고공크레인 농성자의 따뜻한 동지를 다시 그리며
 
한상훈   기사입력  2004/07/25 [10:58]

* 본문은 지난 2004년 7월 정은임 아나운서의 교통소식을 듣고 쾌유를 기원하는 <보도사진닷컴> 한상훈 기자의 7월 25일자 기사입니다. 정 아나운서는 수많은 누리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8월 4일 운명했습니다. 이제 2주년을 맞아 정 아나운서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본문을 다시 올립니다-편집자 주.


돌아오라, 라디오의 시간이여!
정은임 아나운서의 회복을 애타게 빌며...(2004. 7. 25)

 

"선배, 소식 들었어요? 몇 시간 전에 정은임 아나운서가 교통사고를 만나서 중태래요."


 후배의 입을 통해 정은임 아나운서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난 한동안 그 명명백백한 한국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간신히 그 의미를 파악했을 땐 필사적으로 사실이 아니기만을 바랬고, 몇 시간 뒤 그녀의 사고가 엄연한 현실임이 분명해졌을 땐 알 수 없는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심하게 마음이 얼룩졌다. 이건 분명 처음으로 맞는 기분이 아니다. 8년 전 가객 김광석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 닮아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의 쉼터를 마련해주고, 희망의 증인이 되어주었지만, 결국 자신들의 삶을 빠르게 연소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지금 어떠한 종류의 도움도 줄 수없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구를 뿐. 그저 막연히 떠올린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세상의 빛으로 내려앉길 진심으로 기원하자.  

    '안녕하세요. FM영화 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정은임 아나운서    
 
새벽 찬 공기를 맑게 울리며 퍼지던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는 처음 MBC FM 영화음악의 진행을 맡았던 십 수년 전부터 아쉽게 작별인사를 건네던 세달 전까지 사시사철 생생한 진짜배기였다. 풋내나는 감수성을 지닌 고등학생 영화광이었던 내 귀에 대고 그녀가 틀어놓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인터내셔널가’, 그리고 채 민주화의 장막을 걷히지 않은 시대에 툭툭 가슴 떨릴 정도로 불거지는 세상을 향한 직언. 그녀는 삶이 어두워 질 때 은근히 길을 밝혀주는 불빛이었고, 지친 나를 언제라도 반겨주었던 넉넉한 안식처였다. 9년 전 그녀의 작은 직언에 몸서리치던 MBC가 그녀를 좌천시키고 귀양 보내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녀를 잊게 만들려 노력할 때에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녀의 자리가 있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질 때면 이따금 지난 방송녹음테이프를 재생시켰고, 수없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왔던 귀로 듣는 영화들을 떠올렸다.

대구지하철 참사 시민사회단체 대책위 간사로 일할 때 - 비록 성사되진 못했지만 - 추모행사의 진행자로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리던 그녀를 단박에 추천했고, 열린우리당으로 흡수될 예정이던 대구 개혁국민정당의 사무국 일을 그만두고 다시 영화의 아이로 돌아갈 용기를 준 것도 그녀의 영화음악 복귀 소식에서 얻은 용기덕분이었다. 지역방송국의 라디오 영화꼭지의 진행자를 맡았을 때 나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그녀의 방송처럼 영화광들의 해방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그녀, 아나운서 정은임은 몇 안되는 내 인생의 참스승이었다.  

 

“초코렛과 사탕, 여자친구, 남자친구, 선물. 3월 14일은 그렇게 요란하게 지나갔습니다. 화이트 데이라고요... 그렇다면, 3월 15일 지난 하루를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3. 15 마산의거. 4.19 혁명의 씨앗이 된, 우리 역사의 달력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날이죠. 35년전 마산땅을 울린 그 민주의 함성이 이제는 거대한 사탕더미에 깔려서 신음 소리로 변하고, 또 어느새 우리의 달력에서는 사라져 버린 날이 된 것 같네요. 영화 베르린덴 중에서 헨델에 사라방드. 리차드 커프가 지휘하는 뉴욕 필 하모니의 연주였습니다. 오늘 첫곡이었어요. 너무 비장했나요? 오늘 첫곡이... 음, 사실 우리는 역사속에 새겨진 날들을 얘기할 때, 항상 이렇게 마음부터 무거워 지는 것 같애요. 좀 일상적으로 그 날들을 얘기하고, 떠올리고, 그래서 그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바라보는, 좀 그런 미래지향적인 그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우리 영화 얘기할때 굉장히 편하고 좋잖아요. 일상 얘기할 때 어제 뭐했니 너 초코렛 받았니 못받았니,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듯이, 우리의 과거들도 편하게 얘기를 할 때, 비로소 그때 우리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 정은임의 FM영화음악 1994년 3월 14일 오프닝 멘트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 정은임의 FM영화음악 2003년 10월 23일 오프닝 멘트    
                                                                                                                       
▲ 정은임 아나운서 
정은임을 향한 나의 사랑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결코 사적인 의미로만 그칠 성질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지난 95년 적절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FM영화음악에서 물러나기를 종용받은 후, 많은 애청자들이 수년동안,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녀의 복귀운동을 펼쳤었다. 그것은 그럴듯한 옴부즈맨 제도조차 도입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었던 본격 시청자운동의 효시였고, PC통신, 온라인 매체의 대안언론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여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나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현재 지속되고 있는 관객1000만의 시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하도록 만든 중요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의 숨골이 트이던 90년대, 영화광세대들에게 FM영화음악의 올바른 정보와 적극적인 시선은 앞으로 도래할 영화의 시대에 넉넉살이를 가능하게 한 풍부한 자양분이었다. 또한 영화라는 것이 절대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인자하지만 강렬하게 일깨워준 다른 이름의 어머니였다.

90년대 중반의 주춤하던 민주화시대, 어둑하던 정보독점의 시대의 저물어가는 공포를 정은임은 왜소하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정면돌파했다. 그녀는 결코 대단한 사상가나 뛰어난 선동가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밝고 너른 빛을 내는 인물이었다.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 곧추서서 흔들리지 않는 양심으로 올바른 말을 내뱉는 용기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제도권 방송국에서 쉽지 않은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영화의 아이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한다던 빛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화판의 스탭으로 잡지사의 기자로, 또는 꾸준한 영화관객으로, 아니 영화판이 아니라 세상 어디든 너르게 퍼져있는 그녀의 배다른 아들들은 관객 1000만이 보는 초대형영화와도 그녀를 바꾸지 않으려 한다.  

   

▲ MBC 노조 파업시 정은임 아나운서, 뒤로 손석희 아나운서가 보인다.   

     



     2004년 4월 25일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를 아끼던 애청자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9년 만에 복귀한 그녀는 퇴출되었고, 15년간 계속된 FM영화음악은 잔인하게도 그녀가 앉은 책상머리에서 종말을 고했다. 시청률 하락이 겉으로 드러난 원인이었지만, 실은 이전부터 엿보인 MBC의 영화음악프로그램, 전문프로그램 폐지 움직임이 현실화된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시간의 간극을 극복하고, 새벽 3시라는 살인적인 시간대를 지탱하며 겨우 프로그램이 제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그들은 단호하게 폐지를 단행했다. 잇따른 흥행실패로 전전긍긍하며 투자자가 없어 영화평론계에서 기생하던 이단아 박찬욱이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하고, 정은임의 추천을 통해 비디오방의 켜켜이 내려앉은 묵은 먼지를 탈출한 - 플린트 출신의, 당시로써는 생짜 무명감독이었던 - [로저와 나]의 마이클 무어가 미국의 대선향방을 좌지우지 할만한 거물이 되고, 마치 습작처럼 보이던 [열혈남아]의 감독 왕가위가 세계영화계가 공인하는 거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광에게 알려진 신출내기 감독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동안 정은임에게는 자신을 위한 단하나의 마이크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독립영화제와 부천영화제 행사의 사회를 부탁할 정도로 영화광들은 그녀에게 걸맞는 자리를 잘 알고 있었지만, 방송계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나보다. 영화를 전공한,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전문 방송인은 물리적인 교통사고 이전에 이미 깊은 상처를 받았었다. 영화관객 1000만의 시대는 야만의 시대였던가. 누가 감히 영화의 어머니에게 칼을 겨누었는가. 

 

    희미해져 가는 라디오의 시간은 잡을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나도 그녀를 버린 몹쓸 사람 중에 하나인지도 모른다. 애타게 기다리다 강제로 생이별을 맞이했음에도 안타깝다 입속으로 뇌까리다 굳게 입술을 다문 나는 무의식중에 그녀의 유통기간을 정해놓고, 그녀를 과거의 사람으로 치부하며, 효용가치가 끝났다고 단언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이별을 준비하고는 상대를 탓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책장에 보물처럼 쌓아두던 잡지 키노와도 덤덤하게 이별을 고했던 게 아닐까. 영화가 경제지표로 그려지는 관객 1000만의 기형적인 시대, 영화의 홍수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표류하는 우리들은 누구인가. 아, 사람의 목숨이 온전치 못한 지금 이 무슨 해괴한 넋두리인가.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그저 용서를 구하고 싶다. 여의도 성모 세브란스 병원에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일 그녀가 예의 낭랑한 목소리로 입을 떼는 것을 보고 싶다. 듣고 싶다. 우리는 아직 그녀를 필요로 한다. 여전히 정은임 그녀가 발하는 빛이 세상을 맑은 빛으로 물들게 하기를, 돌아와 우리에게 라디오의 시간을 돌려주기를 애타게 기원한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 입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 2004년 4월 26일 마지막 방송의 오프닝 멘트

 

*필자는 보도사진닷컴(www.bodosajin.com) 문화담당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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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25 [10: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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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됴시대 2005/08/04 [10:41] 수정 | 삭제
  • 오늘이 세상을 뜨신지 1년.. 세월 참 빠릅니다.
    참 아름다운 분이었는데... 대자보가 기사를 다시 올려주셔서 반갑고 아쉽고... 무더운 날이지만 가슴이 서늘하네요^^
  • 희망 2004/07/30 [00:38] 수정 | 삭제
  • 떠나지 말고, 여기에서 희망으로 남아주세요.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쉬운길을 향하지 않았듯이, 부디 험한 고비를 이겨내시길...
  • 애청자 2004/07/26 [00:22] 수정 | 삭제
  • 방송 3사 중 그래도 mbc 사람들이 사회의식이 높앗습니다.
    혹독한 군사정권 아래 노조가 만들어지고
    방송민주화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죠. 그 전면에 정은임 아나운서가
    잇었습니다. 편한 길을 버리고, 멘트 중간 중간 마다 암호문 날리듯이
    우리에게 힘을 던져 주는 말들...

    힘내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세상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은임 아니운서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장미 2004/07/25 [20:46] 수정 | 삭제
  • 예전에 중국에서 공산당창당기념일에 온 거리에 울려퍼지던 국제가 내 머리위에 황혼녁에 나부끼던 오성홍기...그리고 오래전 그 밤에 새벽을 가르며 그녀가 들려주던 인터내셔널, 지친몸을 기대며 최루가스 매운내 나는 손등을 타고 내 목을 타고 넘어갔던 소주와 핏기어린 내 눈을 어루만졌던 그녀의 맑은 목소리...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마음 그대로 그녀에게 바친다.

    힘내라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 고모령 2004/07/25 [13:57] 수정 | 삭제
  • 정은임 아나운서 열렬한 팬이었던 모양입니다.
    정은임 관련 글 가운데 가장 좋네요.
    정은임 아나운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양질의
    청취자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 좋았던 방송이 수난을 받고도
    그이가 당당하게 부활했을 때
    우린 그를 잊고 살았죠.
    아무쪼록 정영음으로 부활신화를 보여줬던
    그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과 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의 기도로 우리와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빕니다.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