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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과학>, 산만하고 지루해서 유쾌하다?
[도끼빗의 갈라치기] 미셀 공드리의 꿈과 현실, 그리고 초현실의 세계
 
도끼빗   기사입력  2006/12/26 [16:03]
모처럼 운동하고 나서 운동복 그대로 씩씩 거리고 종로 가서 이 영화 봤다. 음하하.
 
남자는 아주 어렸을 때에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했고, 그 때 아버지가 좋아서 아버지를 따라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다. 어머니는 프랑스에서 다른 무슨 작곡가인가 하는 잘난 체 하는 남자와 살고 있고, 아이는 어쩌다 보니 멕시코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늙어가며 그 작곡가와도 썰렁해진다. 그러다 보니 애 생각이 나고, 무슨 벌거벗은 여자들이 즐비한 싸구려 달력 만드는 회사의 가장 지루한 직업 - 기억도 잘 안난다. 무슨 제작자들의 이름을 출력하여 달력 디자인 한 구석에 박아 넣는 뭐 그런 일이다 - 을 구하여 아이를 불러온다.
 
얼떨결에 파리로 끌려간 20대 청년인 하지만 여전히 아이인 그 남자...온 첫날부터 어머니는 공항에도 숙소에도 나타나지 않고 조만간 함 보자는 차가운 전화 메시지만 남겨 놓는다. 남자는 자기가 아이 때 살던, 그 조그만 옷과 조그만 침대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하지만 꿈과 현실을 헤매면서 헤롱거리던 아이 시절의 그 침대에서 그대로 잔다. 그러면서 또 자기 꿈의 텔레비젼을 켠다. 
 
▲ 영화 <수면의 과학> 포스터     © 스폰지 제공
"잠자는 공간이 화려하다"는 무슨 침대 회사 광고 카피가 생각이 난다. stephan 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아예 꿈 속에서 텔레비젼 스튜디오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름하여 "스테판 TV"! 부모가 헤어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무도 없는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영어 섞어가며 자라 이제 그 닭살돋는 (영화 속에서는 뭐라더라 불어 씨부릴 때마다 온몸에 털이 돋는다고 하던가) 불어를 쓰며 살아야 하는 상황...하지만 그 꿈 속의 스튜디오에서 그는 완전 자유다 음하하.
 
그런데 바로 그 옆방에 여자가 나타난다. 그때부터 남자의 삶도 또 꿈 속의 텔레비젼 방송도 온통 난장판이 된다. 별로 이쁘지도 별로 색스럽지도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그냥 좋은 여자다. 따라서 남자는 그녀에게 sex 라는 코드로 느껴야 할지 닳고 닳은 romance 라는 코드로 느껴야 할지 뭐 도대체 정리가 안 된다. 그런데 그녀가 항상 손으로 뭔가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방에 온갖 재미난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게 불을 질러서, 가뜩이나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이 된 남자의 머릿 속에는 온통 오만가지 애니메이션과 인형과 장난감이 난무하기 시작하고, 깨어나서도 그 연장 속에서 말도 안되는 행동과 말들을 하여 주위 사람들을 또 헷갈리고 정신없게 만든다. 특히 이름까지 비슷한 바로 그 옆방 여자가 최대의 희생물이 된다....
 
미셀 공드리 감독이 재주를 피우기 시작하니, 그 환상 속의 애니메이션과 장난감들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이건 가서 직접 보고 웃자. 근데 실로 어설프기 그지 없다. 이 현란한 CG의 시대에 아니 저런 말도 안되는 물건들이 말도 안되는 행동들을 하나 싶다. 특히 그 말,  Golden Phony Boy 라는 이상한 이름의 말은 가관이다. 그래서 구슬프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고 그렇다.
 
아마 그 옆방 여자도 별로 젊지도 않으니 오만 남자들의 하지만 뻔하기 짝이 없는 온갖 접근 방식과 등등을 다 알테지. 근데 여기서 도대체 미친놈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 이상한 남자의 환상과 기상천외의 대쉬 - 그런 것도 대쉬라면 말이지만 - 를 바로 옆방으로부터 왼종일 겪게 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뭘 어쩌라고. 연애를 하자는 거야 데이트를 하자는 거야 아니면 그냥 fuck을 하자는 거야 뭐야.
 
각각의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대처할 만한 경륜과 깊이를 가져보이는 그녀도 이 상황에서 넋을 잃고 그 남자의 페이스에 완전 휘말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느날 아침 출근길 그 아파트 계단에서 거의 눈알이 180도 쯤 돌아간 남자가 갑자기 결혼을 하자고 한다. 막 다그치니 농담이라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네가 좋아" 그딴 소리를 한다. "romantic 한 의미에서냐" 그랬더니 그렇다고 한다...그래서 "나 지금 남친 사귈 경황은 없어" 그랬더니 그 남자 바로 그 자리에서 먹던 사탕 빼앗긴 아이같은 울상을 하고 왕 울어버린다. 짜증이 잔뜩 나서 "아니 그렇다고 바로 면전에서 똥씹은 얼굴을 하는 건 또 무슨 매너에요!" 라고 꾸짖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남자는 아니 아이는 "너랑 안 놀거야!" 그러면서 엉엉 울고 도망가 버린다.
 
여자도 힘들다. 어느날 그래서 계단에 앉아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우리 같이 만들기로 한 장난감 배도 있고 숲도 있고 또 그걸로 애니메이션까지 만들기로 했는데...그 때 참 재밌었는데...이제 친구도 안할 거니. 아이는 소리친다. "친구 아냐! 너 싫어! 저리가!" 그러니까 여자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그러는 게 어딨어. 뭐 다 네 맘대로야 뭐야. 친구 하다가 그냥 맘대로 돌아서면 친구는 뭐고 너는 뭐야.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데이트? 그래 까짓 거 데이트 해 그럼." 그래서 여자도 아이가 되어 엉엉엉 울어버린다.....
 
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떼와 상황으로 어거지로 데이트 약속이 잡혔다. 남자는 드디어 신이 났다. 그의 꿈속에는 온갖 신나는 상상이 펼쳐진다. 잘 타지 못하는 스키장으로 여자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러면 리프트 뒷자리에는 직장 동료들이 온갖 응원 게임을 벌인다. "야, 절벽의 염소라는 체위 아냐? 여자를 벽에 몰아부치고 뒤에서 그냥 해부러" 뭐 이딴 못된 소리부터 해서 벼라별 소리가 다 꿈속에서 오간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왜일까. 아마 그도 그 자신이 그녀에게서 원하는 게 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 엄마는 옛날에 자신이 버리고 떠났다. 아빠의 사랑? 아빠는 옛날에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다. 여자와의 사랑? 그것도 해본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기껏 원하는 것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하는 정도가 다이다. 일생을 반려로 보내고 함께 늙어가는 것? 그 난리를 치고 딴 남자를 따라간 엄마는 엊그제 그 작곡가 남자와 헤어졌다...그녀는 저 커피숍에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거기로 갈 엄두도 자신도 용기도 없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여자한테 무얼 바라고 무얼 받고 무얼 또 해줄까. 아이는 환상 속에서 결국 아무도 없는 하지만 자기의 온갖 꿈 속에서 그 텔레비젼 방송의 배경이 되었던 그녀의 방으로 뛰어간다. 그녀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고. 아무도 없이 닫힌 문에 혼자 박치기를 하던 그는 결국 머리가 찢어지고 만다.
 
찢어진 머리에서는 피가 꽤 나왔고 남자는 지난 몇 달간의 환상에서 겨우 깨어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옆방 여자에게도 작별하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래서 짐까지 다 싸들고 여자 방에 잠깐 들어가서 작별 인사를 한다. 그냥 쿨하게 점잖은 인사말 하고 나오면 될 것을...그 방에 들어가 온갖 장난감을 보니까 또 아이 모드로 되돌아와서 삐죽삐죽한 헛소리로 여자에게 또 온갖 심통과 생떼를 다 부리기 시작한다. 뭐 이런 식이다. "야...너 이빨 교정 좀 해야겠다. 아니면 너 나이들면 이빨 다 빠진 합죽이가 될 걸...아니다. 우리 70살 되면 결혼하기로 했지...그때 네가 나한테 오럴 섹스 해줘야 하니까 그땐 이빨이 없는 편이 안전하잖아 그지...교정하지 마라 야"  여자는 지난 몇달 간의 그 힘들었던 상황이 시작되어 괴로와서 비행기 늦겠어요 이제 그만 가세요 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생떼 모드는 계속되어 마침내 그녀의 2층 침대 위까지 기어올라가서 막 투정을 부린다.
 
거기서 남자는 보았다. 지붕 아래 바로 붙은 그녀의 2층 침대 구석에는 그 남자가 막 신이나서 상상력을 부린 장난감, 그러니까 조각 배 위에 온갖 나무와 풀이 다 심겨진, 그야말로 "노아의 식물 방주"가 만들어져 있다.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든다. 여자는 침대 위로 올라와 아이가 그 배 장난감 옆에서 코 자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이의 꿈 속에서는 그 남자와 여자가 그 어설픈 장난감 말을 타고 막 달려 그 노아의 식물 방주에 올라타 어디론가 한없이 흘러가는 꿈이 나온다. 아마 아이는 드디어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을. 이 사랑스런 여자와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배는 계속 흘러간다.
 
자막이 올라온다. 나와서 종로 길거리에서 꼼장어와 소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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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26 [16: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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