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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없다. 자기를 찾자
생명 창조시대와 자기 경영 10
 
이동연   기사입력  2003/08/25 [12:19]

우리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리이스 신화나. 경전들, 삼국지 같은 책에나 남아 있다. 

미래의 역사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영웅을 오히려 역사발전의 장애물로 본다.

영웅은 자신의 탁월한 모든 재능을 자기 자신이 아닌, 수난 받는 민족이나 집단들을 위해 기꺼이 던져 투쟁한다. 거기 까지는 좋으나 그후가 문제이다.

정작 영웅들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는 투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 왔을 경우이다.

기꺼이 몸을 던져 그 '몸 던짐'의 효과가 당대에 큰 승리로 나타 난 후 개선장군이 되어 금의 환향한 후 부터가 중요하다.

그렇게 살아서 돌아온 영웅들은 대개가 승리의 열매를 나눌때 공평한 기준이 아니라 자기의 기준을 내세운다. 물론 영웅들 중에는 사심 없이 승리의 잔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세주처럼 자기의 성채를 세우고 야망의 발톱을 드러 내다가 역사의 혹독한 평가를 받고 추해져 버린다.   

그래서 영웅이 영웅으로 남으려면 전투에서 죽어야만 한다.  격렬한 투쟁에서 죽으면 영웅은 성인도 되고 잘하면 신화적 존재로 까지 격상되어 종교의 교조(敎祖)로까지 흠숭(欽崇)을 받기도 한다. 
 
유구한 역사속에서 영웅주의가 탄생하고 소멸해 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인간의 뇌 용량이 커지면서 집단 생활을 하게 되고 집단의 리더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출현한 영웅은 그야말로 전 분야의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있던 영웅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정치적 영웅과 종교적 영웅이 따로이 나타났고  문화의 영웅이 추가되었으며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이 경제의 영웅이 추가되었다. 다시 여기에 다양한 쟝르의 영웅들이 부가되었다.

영웅의 분야가 늘어 갈수록 영웅의 영향력은 줄어갔다.
영웅의 숫자가 늘어 갈수록 영웅 신분의 기간은 줄어 든다.
이젠 결국 모두가 나름대로의 영웅인 시대를 맞이 하고 있다.

흔히 지금을 '사(士, 師)자들의 수난시대'라고 부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과거 제도를 통해 무인들보다는 문인들의 시대를 더 활짝폈던 조선조부터 근래까지 뒤에 그야말로 사(士,師)'들의 시대였다. 변호사. 의사. 판·검사. 교수 등등. 소위 먹물들로 총칭되는 인텔리겐쟈의 시대였다.  

미래학자인 스텐 데이비스(Stan Davis)는 그의 저서인  미래의 교훈(Lessons from the Future)에서 의사의 권력마저도 환자에게 넘어온다고 예측한다.

앞으로 10년 안에 환자들이 의사를 평가하는 평점이 병원 웹 사이트에 공공연하게 게시될 것이다.

권리가 독점되는 곳에 영웅이 있고 권리가 하방(下方)하는 곳에선 영웅이 사라진다.
 
이렇게 영웅신화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영웅이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면서 덩달아  퇴장하는 것이 있다. 즉 인류 사회의 중심담론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

정치적 , 종교적 영웅들이 지정하고 제시해주는 표준, 즉 사회의 중심담론이 영웅들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 빈 자리에 '자기 찾기'의 열풍이 불고 있다.

▲ 색깔이 제각각인 병아리들. 각자의 개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나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자기 찾기의 열풍은 언제나 전통과의 단절 지점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정체성. 인간으로서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 야 될 일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즉 인간은 어떻게 자기화가 되어 가는가?

미드(Mead)에 의하면 인간들이 각자 '독특한 자기(self)'가 되어 가는 과정을 두 단계로 분류한다.

첫 단계에서는 '일반화된 타인(generalized others)'을 모방한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된 타인들이다. 예를 들면 신사임당 같은 열녀, 이순신 같은 충신, 안중근 같은 열사, 최영 장군 같은 지조, 순교자 등이다.

이처럼 일반화된 타인에 의해 촉발되는 모방은 개인으로 하여금 은연중에 자발적 복종을 유도한다.
  
다음은 '의미 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s)'단계이다. 사회적으로 은근히 주입되었던 일반화된 타인들에게서 벗어나 각 개인이 스스로 모방하기를 원하는 타인을 찾는다.

각자가 자기의 개성과 취향과 삶의 방향에 어울리는 타인을 모방하며 자아를 형성한다.

첫 단계와 두 단계는 모방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나 다른 점은 일반화된 타인의 단계에서는 타율적이나 의미있는 타인의 단계에서는 자율적이라는 차이이다.

부족사회와 민족국가,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통 털어 조직을 중요시하던 지나온 시대에서는 ' 일반화된 타인' 만이  사회화를 촉진하는 기관들로부터 모방의 대상으로 장려되었다.

그러다가 정보화 사회에  들어 와서는 '의미있는 타인'의 단계로 접어 섰다.  즉 이제 인류는 총체 속의 개인이 아닌 개인 속의 보편을 추구한다.더 이상 개인차를 무시한 일반화된 이미지로서의 '타인'에게는 별 흥미가 없다.
  
자기 찾기(Egonomics)는 바로 '나' 자신의 주문에 의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사회나 타인의 기호에 맞추어 사는 얼굴 없는 존재가 되기를 거부한다.  국가를 위해, 회사를 위해, 즉 '......', '......'를 위한 존재로 남기를 사양한다.

과거 사회에서 자아 찾기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이단아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자아 찾기를 포기하고 집단 속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이단아로 불리 우는 세상이 되었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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