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기의 남자.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이완구 후보자가 국무총리로 적합한지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자마자 차남이 소유한 분당 땅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토지의 위치, 토지 매입시점, 증여의 방식 등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부동산 투기 의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총리후보자가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 생활을 한 이래 반포, 압구정, 도곡동 등 강남의 요지에서 아파트를 사고 파는 행위를 거듭해 자산을 불려왔다는 의혹이 더해진 것이다.
아래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5일 공개한 이 후보자의 ‘부동산 보유·거래 현황’ 자료를 보면, 이 후보자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듬해인 1975년 서울 서대문구(현 은평구) 응암동 단층주택에 살았다. 이 주택은 52㎡(16평) 크기로 이 후보자의 부친이 마련해줬다. 이 후보자는 이 집을 담보로 1977년 7월 480만원의 대출을 받아, 그해 9월 강남구(현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2차 아파트 103㎡(33평형)를 분양받았다. 진 의원은 “당시 이 아파트 분양가는 평(3.3㎡)당 43만원이었는데, 1년 뒤 입주시점에는 평당 70만~80만원에 거래됐다”며 “프리미엄도 200만~300만원이 붙는 등 투기열풍이 불어 투기억제지역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후보자의 직급인 사무관 5호봉 급여는 월 15만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보자는 다시 이 아파트를 담보로 1980년 7월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1570만원을 대출받고 아파트를 매각해, 같은 단지의 137.66㎡(42평형) 아파트를 샀다. 30살 공무원신분으로 6년 만에 강남의 42평형 아파트를 마련한 것이다.
이어 이 후보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 근무(86~89년)하던 1988년 신반포2차42평형을 처분하고 신반포3차 아파트(46평)로 갈아탔다. 1993년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52평), 2003년 도곡동 타워팰리스(48평), 같은해 도곡동 대림아크로빌(52평) 등으로 아파트가 바뀌었다.
진 의원은 “이 후보자는 정치를 본격 시작하기 전 부동산 담보대출로 새로운 부동산을사는 전형적인 투기수법으로 자산을 불려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이날 오후 서울 금융감독원연수원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20~30대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관련 의혹은) 청문회 때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행시 합격하자 마자…신반포→압구정 현대→타워팰리스로 자산 불려’, 〈한겨레〉, 2015.2.5.
2.
참으로 신묘한 솜씨다. 설사 이 후보자의 행위에 탈법이나 위법의 소지는 없다 하더라도 사회적 질병 가운데 으뜸이라 할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도덕적 비난은 모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후보자의 재산축적 과정을 보면서 일년에 천만원 모으기도 힘든 서민들은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이완구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 후보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귀속시키는 건 적절치 않다. 부동산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누릴수 있는 환경 아래서 돈과 정보와 남다른 이재 솜씨가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의 유혹에서 자유롭기는 매우 어렵다. 잘못된 제도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고위공직자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엘리트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문회가 시행된 이래 얼마나 많은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는가 말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부동산 투기 의혹을 계기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과거에 부동산 투기를 한 사람들도 당당하게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아예 부동산 투기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 엘리트들이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법적 장치가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이다.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의 얼개는 아래와 같다.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대통령, 국회의원, 국회 인사 청문 대상자,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의원 등 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이 취임 시에 실수요-실수요 여부는 신탁대상자가 소명-가 아닌 자신 및 배우자, 직계가족 소유의 부동산을 신탁위원회에 백지로 신탁하는 제도다. 신탁가액은 해당 부동산을 매입했을 당시 취득가격의 원리금과 신탁 시점의 부동산 가격 중 적은 금액으로 한다. 고위 공직자가 그 직을 떠날 시에는 원칙적으로 신탁가액의 원리금을 고위 공직자에게 돌려준다. 신탁 시점 이후의 부동산 운용 수익은 국고에 귀속시킨다. 직무와 관련된 개발 정보 등을 활용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고위 공직자가 취임한 이후부터 퇴임한 후 몇 년간은 실수요 목적이 아닌 부동산 취득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도입되면 고위 공직자 취임 후 직무의 공정성이 담보되고,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부동산 투기혐의로 낙마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3.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 총선 당시 '고위 공직자 자산 백지신탁제'를 도입하겠다고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고위 공직자의 자산 백지신탁제도를 도입하고, 재산 공개 제도를 강화하겠습니다. 현재의 재산 공개 제도는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기에 미흡합니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공직자의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법률이 정하는 금융기관에 백지신탁(Blind Trust)하도록 입법하겠습니다. (중략) 나아가 직계존비속의 재산에 관한 고지 거부 제도를 폐지하겠습니다."
마침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여 휘청거리고 있다. 이참에 박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백지신탁제'도입을 전격적으로 선언하면서 이 총리 후보자를 첫번째 대상으로 넣으면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올리고 이완구 후보자도 구원할 수 있는 묘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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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입니다.
*본문은 [토지+자유 칼럼] 7호 2015. 2. 9.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