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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황색보도 메인호 사태 닮아간다
[김영호 칼럼] 보수언론은 예단으로 몰아가지 말고 원인규명 노력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0/05/12 [05:59]

1898년 2월 15일 밤 9시 40분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중이던 미국 전함 메인호가 원인불명의 폭발로 침몰했다. 이 사건은 미국-스페인 전쟁의 촉매제가 되었고 미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로써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당시 미국 언론계를 풍미하던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선정성이 군중심리를 자극하고 전쟁을 독려했다는 점에서 언론사적으로도 평가적 의미가 크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0분께 백령도 근해에 항해중이던 천안함이 두 동강나 침몰했다.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앞으로 사태전개에 따라 최악의 대립국면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파장은 중국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동북아 정세를 뒤흔들 소지가 커졌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보수언론으로 지칭되는 주류매체의 선정적 보도가 있다.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예단하고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1868년 쿠바에서 스페인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민중항쟁이 일어났다. 10년 동안 저항했지만 1878년 진압되었다. 17년후인 1895년 다시 항쟁이 시작됐다. 미국의 황색언론은 스페인군의 진압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촉구했다.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의 외교적 노력으로 진압군 사령관이 1897년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그는 황색언론에 의해 도살자로 악명을 날렸다. 이듬해에는 친스페인 반란이 일어났다. 미국이 자국민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려고 파견한 순양함 메인호(6,789t)가 1월 25일 아바나항에 입항했다.

 메인호는 현지인과의 마찰을 우려해 수병에게 금족령을 내렸고 스페인은 외교적 예우를 해주었다. 그런데 2월 15일 밤 메인호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적재한 폭약 5t이 폭발하면서 함수가 파괴되어 침몰했다. 그 시각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수병들은 취침하거나 휴식중이었다. 메인호가 폭발하자 인근에 있던 미국상선과 스페인 순양함이 구조에 나섰다. 이 폭발로 260명이 사망했다. 해군은 즉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인규명에 나섰다. 위원회는 3월 28일 메인호가 기뢰에 의해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폭발 직후 함장 찰스 시그스비는 스페인의 소행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고 추후 보고할 때까지 여론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전문을 보냈다. 하지만 황색언론은 누구의 소행인지, 폭발원인은 무엇인지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즉각 스페인을 지목하고 복수심을 불태웠다. 뉴욕 저널은 수중에서 기뢰를 설치하고 육상에서 폭발시키는 그림까지 게재했다. 2월 19일자는 ‘어떤 적의 소행’(the work of an enemy)란 머리기사를 올려 스페인을 암시했다. 바로 그 기사의 사진설명은 ‘해군장교들은 메인호가 스페인 기뢰에 의해 파괴됐다고 생각한다’며 스페인을 명시적으로 지목했다. 

당시 뉴욕에는 조셉 풀리처의 뉴욕 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이 100만부 확장경쟁이 치열했다. 독자의 눈을 끌려고 사실조작을 예사로 알았다. 쿠바에서 작은 충돌만 일어나도 과장보도했다. 수용소는 사형장, 만행은 식인 따위의 선동적인 제목을 달았다. 뉴욕 저널이 쿠바에 파견한 삽화가가 여기에는 전쟁이 없고 그림꺼리도 없으니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사주 허스트는 이런 유명한 전문을 보냈다. “당신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전쟁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는 그 약속을 지켜 메인호 침몰 이후 매일 8면 이상을 폭발기사로 도배하며 복수와 응징을 부르짖었다. 딴 신문들도 허스트를 열심히 따라갔다. 

황색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여론의 흐름을 장악했다. ‘메인호를 기억하라’, ‘스페인을 타도하자’는 외침은 거리를 휩쓸고 마침내 의사당을 지배했다. 대통령 맥킨리는 쿠바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4주후 해군이 조사결과를 발표할 즈음에는 여론은 이미 발화점에 달해 있었다. 여론에 밀린 맥킨리는 4월 11일 의회에 쿠바 개입을 요청했고 21일 해군에 쿠바 봉쇄령을 내렸다. 이에 대항하여 스페인이 23일 전쟁을 선포하고 이튼 날인 24일 미국 의회는 21일자로 소급해서 전쟁을 선포했다. 

 메인호 폭발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색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전쟁을 촉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황색언론이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몰고 갔지만 100년 동안 5 차례의 조사에서 폭발원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하나는 석탄저장고에서의 자연발화이고 다른 하나는 기뢰에 의한 폭발이나 스페인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첨단기술의 발달도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반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지 못해 결국 폭발원인은 불명으로 남아있다. 그 까닭에 자작극이란 주장 또한 심심찮게 나온다. 

분명한 사실은 황색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집단적 광기를 일으켜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켰다는 점이다. 동시대의 언론비평가 윌 어윈은 황색언론은 ‘단서’에서 ‘사실’을, ‘소문’에서 ‘역사’를 만든다고 비판했다. 황색언론은 그들을 믿는 독자들을 위해 흥분과 선정으로 가득 찬 세계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극장처럼 밤낮 없이 간판을 바꿔 달면서 군중을 끌어들일 새롭고 깜짝 놀랄 방법을 찾느라 늘 혈안이었다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국방책임자들은 문책대상이다. 그런데 그들의 입과 자료접근이 제한된 전문가의 견해에 따라 언론보도가 한 달이 넘도록 북한소행설, 어뢰피격설, 기뢰폭파설, 암초충돌설, 선체결함설, 피로파괴설, 내부폭발설로 난무했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이제는 북한소행설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습니다. 그 중에서도 원인규명을 위한 확실한 증거-근거를 찾는 노력보다는 북한에 대한 복수-응징을 부르짖는 보수언론의 모습이 100년전 미국의 황색언론과 너무나 닮았다. 

설사 어뢰피격설, 기뢰폭발설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더라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확보하기란 더 지난하다. 보수언론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데는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남북대립의 첨예화와 중국과의 관계악화가 초래할 사태를 직시하는 책임도 함께 성찰해야 할 것이다. 심증이 아닌 증거확보야말로 중요하고 급선무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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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2 [05: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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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2010/05/12 [22:39] 수정 | 삭제
  • 며칠 전 일본 쿄토 통신 기자가 천안함 침몰 내막에 대해서 보도를 했습니다.
    참고로 쿄토통신은 일본내에서도 우파 보도매체에 속합니다.


    한국 군함 “천안”호 침몰의 내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