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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의 녹색없는 녹색정책과 녹색담론
[환경과생명의 눈] 녹색성의 진정성은 철저한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해야
 
조명래   기사입력  2009/12/30 [17:29]
1. 이명박 정부가 일으키는 ‘녹색 바람’

이명박 정부는 녹색을 너무 사랑하는 듯하다. 이 정부가 펼치는 대부분의 정책들은 앞에 ‘녹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도 ‘녹색기업도시’ 혹은 ‘녹색산업도시’로 만들어 유령도시의 망령에서 벗어나겠다고 한다.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열린 4대강 사업 착공식에서도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는 녹색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평가한다’는 국제기구 대표들의 영상 메시지를 소개했다.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의 후속판으로 나온 것인데, 대운하를 추진했던 명분도 녹색물류 혹은 녹색교통을 이룩해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선전된 적이 있었다.

이 정부가 녹색을 화두로 하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출범 이듬해부터다.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환경위기 시대에 녹색성장을 통해 국가의 발전 방식을 일신시켜 가겠다는 국정 방향의 설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녹색성장이란 방식으로 국가의 미래를 열 수만 있다면, 지금의 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도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녹색으로 열린 세상은 생명의 환희가 가득하니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선 현 정부가 토건정부란 ‘오명(?)’도 벗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녹색으로 열겠다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탁월한 정책 선택이라고 한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사이트인 ‘대한민국 정책포털(www.korea.kr, 2009. 8. 27)’은 실제 그렇게 적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호(號)가 잡아 올린 대어(大漁) 중 하나다”라고 말이다. 포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의 주요 외신들은 이에 대해 경제위기를 기회로 만든 새로운 성장 동력’, ‘그린뉴딜 정책의 모범사례’ 등의 호평을 쏟아내며 한국의 녹색성장에 주목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평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토건정부로 낙인찍혀 있던 이명박 정부는 출범 1년 만에 ‘세계적인 모범 녹색정부’로 환골탈태한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사회엔 지금 녹색이 차고 넘친다. 국가로부터 시작된 녹색 변혁의 바람이 국민들이 사는 일상의 낮은 곳까지 불어 닥치고, 또한 그들의 삶을 온통 녹색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포털은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2008년) 8월 15일 미래의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정과 직장에서는 에너지 절약 실천운동이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산업계와 과학기술계를 비롯한 각 계층에 녹색성장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으며, 녹색성장을 구현하기 위한 인프라도 마련됐다.…녹색성장의 성패를 가늠하는 구심점인 국민의식과 생활태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여기에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녹색성장’, ‘국민이 실천하는 녹색성장’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홍보 활동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한 몫 했다. 한국언론재단이 종합뉴스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녹색성장 관련 보도 건수는 2만2966건으로 하루 평균 약 64건의 관련 기사를 통해 녹색성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 지난 2일 '낙동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녹색 바람은 이제 우리의 미래까지 기약하고 있다. 2008년 7월 정부는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 계획이 끝나는 2013년이 되면 대한민국은 그린 카(green car) 생산 4대 강국이 되고, 주력 산업 녹색제품의 수출 비중이 15%로 늘며, 녹색기술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8%에 이를 것이고, 신재생에너지 보급률도 3.8%로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제2의 한강의 기적이 바야흐로 ‘녹색 기적’으로 재현되어, 대한민국은 2020년에 세계 7대 녹색 강국, 2050년엔 세계 5대 녹색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고 한다.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이 녹색 강국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성장과 발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적 삶에 관한 전망을 밝게 해준다. 7대 녹색 강국을 넘어 5대 녹색 강국으로 올라선다니, 국민의 생명적 삶은 아마 세계에서 최고급 수준을 유지할 것 같다.

가난한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이 살아갈 기반을 경제성장을 통해 마련해주었다. 녹색 빈곤의 시대인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건강한 생명적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녹색성장을 통해 마련해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란 강한 국가개입주의를 택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위해 녹색성장 5개년 계획이란 또 다른 국가개입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1의 한강의 기적이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일구어냈다면,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녹색성장의 기적을 불러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대학시절의 별명이 ‘리틀 박’(작은 박정희)이었다고 자랑스럽게 적고 있다. 그는 리틀 박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내가 왜 리틀 박이냐. 내가 키가 더 큰데’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에서 독재자로 오점을 남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도저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흔히들 이는 개발독재 시절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 익힌 것이라고 한다.

불도저 리더십이 독재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독재와 마찬가지로 권력과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오기에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의 퇴행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녹색의 가치마저 퇴행시킨다는 점이다. 녹색으로 지칭되는 생태적 가치, 이를테면 다양성, 민주성, 순환성, 호혜성은 개발독재 혹은 불도저 리더십과 공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불고 있는 녹색 바람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국과 아일랜드의 녹색 바람, 어떻게 다른가?

기후변화, 탄소 저감, 그린뉴딜, 그린 홈, 그린 카, 그린 스쿨, 녹색기술, 녹색성장 등은 앞선 나라들에서도 일상화된 화두다. 이런 것들이 딱히 한국에서만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경우,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녹색 바람은 일찍이 1973년 제1차 석유위기 이후부터 불기 시작했다. 값비싼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했다간 나라살림이 거덜나고 국가 환경의 미래가 담보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경주해온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국가가 앞장서고 국민들이 함께 하면서 대체에너지를 찾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산업 시스템을 바꾸며 자원 재활용을 생활화해왔다. 그 결과 녹색기술을 이용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녹색 일자리를 늘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에너지 자립적인 지역사회가 이곳저곳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녹색의 변화는 어언 한 세대가 지났다. 그동안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사람 중심 복지(사회복지)에서 환경 중심 복지(환경복지)로 바뀌었고, 근대화도 생태적인 것, 즉 ‘생태적 근대화’로 다시 이루어졌다(조명래, 2006).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 나라들이 현재 무결점의 녹색사회로 변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녹색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다. 나아가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하여 녹색 바람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앞선 나라들에서 녹색 바람은 일상 영역에서 주로 불고 있고, 또한 일상세계 속으로 녹색의 의미가 녹아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토건적 리더십의 국가 지도자가 앞장서서 정치적 구호와 치적용으로 녹색(성장)을 외치고 정책으로만 화려하게 포장한 채 국가적․국민적 동원을 독려하는 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 정부는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그린 홈(green home) 100만호 공급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가 말하는 그린 홈은 친환경적인 자재로 만들어지고 에너지 절약적인 시설을 갖춘 주택을 말한다. 녹색성장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린 홈 100만호 공급’은 환경도 잡고 경제도 잡는 양수겸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양적으로 100만호나 되니 ‘규모의 경제’도 확보되고 말이다. 친환경적인 자재나 에너지 절약형 주거시설을 생산하는 데 동원되는 신기술을 일컬어 녹색기술이라 하고,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생산된 주택들은 에너지 효율성 혹은 생태 효율성이 높아 환경보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녹색성장론자들은 이를 두고 ‘산업의 녹색화’라 부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유럽의 강소국인 아일랜드에서도 ‘그린 홈’ 바람이 일고 있다. 쓰는 용어는 녹색성장을 추진하는 우리 정부와 똑같지만 그 내용과 추진 주체는 판이하다. 아일랜드에서 불고 있는 ‘그린 홈’은 글자 그대로 ‘녹색 가정’ 만들기를 위한 사회적 캠페인이다. 녹색 가정은 녹색의 일상생활이 영위되고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녹색의 가족관계가 담겨지는 사회적 삶의 한 단위를 말한다. 녹색의 일상생활은 자가용 이용 횟수를 줄여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의 양을 줄임과 함께 재생 가능한 것으로 대체하며, 자원 재활용을 확대해 환경오염 발생량을 줄이는 것 등을 일상화하는 가정생활을 말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4대강살리기 사업관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이러한 가정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동의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가정의 인간관계마저 녹색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녹색의 일상생활을 가정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치활동과 연계해 공동체적 삶의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그린 홈 캠페인은 현재 ‘아일랜드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단체가 주도하지만 지역사회 단위에서도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추진되고 있는 것이 ‘그린 스쿨’ 운동이다. 학교생활을 통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녹색에 관한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고 실천하는 것을 돕는 이 캠페인에는 아일랜드 전국 초․중․고교의 70%가 참여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앞장서고 있지만 학교,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일종의 풀뿌리 녹색 생활운동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과 아일랜드는 공히 그린 홈이란 용어를 가지고 녹색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 방식과 내용, 그리고 주체는 너무나 다르다.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가정 단위의 일상생활과 가족관계를 통해 녹색 가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런 만큼 주택과 같은 물리적 시설의 개조가 아니라 생활양식의 변화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한국의 그린 홈은 친환경적 주택을 공급하면서 경제성장에 보탬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삶 자체를 온전히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그린 홈은 첨단기술을 새롭게 개발하고 친환경적 자재를 생산한 뒤 토지를 조성하고 건축물을 신축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때문에 자재의 생산, 건축물의 신축, 건축물의 이용, 건축물의 해체 등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에너지 총사용량은 결과적으로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급격히 늘어난다. 반대로 아일랜드의 그린 홈은 추가적인 에너지 투입과 사용을 전제하는 새로운 건축이나 개발 행위와는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기존 건축물의 이용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또한 친환경적인 것으로 대체하며, 근본적으로는 환경에 부하를 덜 주는 삶의 방식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실천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도, 한국에서는 정부만 녹색이란 말을 신나게 사용할 뿐, 국민들은 정부가 저렴하게 제공하는 주택에서 편하게 사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에너지 절약은 기계가 하는 일이다. 그나마 에너지 사용 총량이 더 늘어나니 종국엔 환경보전에도 보탬이 안 된다. 녹색은 그저 정부의 구호일 뿐이다. 이에 견주어 아일랜드에서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일상생활 속에 녹색의 가치를 녹여내고, 또한 에너지 절약 실천을 통해 환경보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녹색은 그래서 시민사회의 언어이자 권리다.

3. 녹색의 패러독스

이 간략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홈 정책은 녹색의 진정성으로 치면 대단히 취약하다. 아마 그것은 녹색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주창되고 수용되며 결과적으로 환경보전에 기여하는 방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이는 녹색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발주의에 종속되어 개발(경제)가치를 극대화시켜주는 도구적 의미로만 활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이 바로 이러하다.

녹색성장은 녹색기술을 이용해 생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환경오염의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고용 창출과 국민소득 향상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는 원리의 경제성장을 말한다. ‘생태 효율성’을 지표로 하여 조직되는 녹색성장은 근본적으로 ‘열린 계’인 생태계의 부양 능력을 초과하는 경제성장을 허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생태 효율성이란 지표 자체의 문제에서 연유한다. 즉, 생태 효율성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경제적 산출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그에 비례하여 환경 비용의 절대량도 증가하게 된다. 문제는 경제활동의 영역이 ‘열린 계’라면 생태환경의 영역은 ‘닫힌 계’라는 차이점에 있다(윤순진, 2009a; 2009b). 경제활동의 성장은 무한대이지만, 경제활동에 상응하는 환경오염의 절대량 증가는 일정한 임계치를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괴를 초래한다.

녹색성장은 저발전 국가의 빈곤 해결을 위한 새로운 성장 방식, 즉 경제와 환경이 선순환하는 방식으로 제시된 성장 방식이다. 따라서 녹색성장 하에서 빈곤 해결을 위해 경제의 총량이 늘어나면 환경오염 비용이나 환경훼손의 상대적 양은 늘지 않는다 해도, 그 절대량은 경제총량의 절대량만큼이나 증가하게 된다.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조화를 이끌어내거나 강제할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 수단이 명확하지 않은 저발전국의 실제 현실에서는 경제성장이 환경보전을 압도하게 되고, 그 결과 환경오염 비용과 환경훼손의 절대량은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한편, 녹색성장은 무한정한 경제적 욕구의 충족을 추구하되 생태 효율성을 높이는 녹색기술 등을 활용해 환경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도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환경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 및 사용이 이루어짐으로써 종국에는 환경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패러독스다. 이는 선진국과 다른 우리의 녹색성장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선진국은 개발과 성장이 어느 정도 멈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개발 행위를 유발하지 않고도 생태 효율성을 높이는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가령, 기존 건물의 용량을 유지하면서 환경친화적으로 개량하거나 개선하는 것 등을 통해 녹색의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이 선진국의 녹색성장 방식이다. 이에 견주어 기존 건물을 허문 뒤 에너지의 절대 사용량이 증가하는 대규모 건축물을 새로 짓는 것을 통해 녹색의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이 우리식 녹색성장의 특징이다. 녹색성장이란 이름으로 녹색기술을 개발하고 녹색산업을 일으키며 녹색도시를 조성하는 것과 같은 정책들은 기실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더욱 높이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이를 ‘제본스 패러독스’라 부른다.

『녹색성장의 유혹』의 서문에서 저자 스탠 콕스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제본스 패러독스에 빠질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바이오 연료, 태양전지, 원자력에너지, 청정 석탄, 친환경 자동차, LED 전구, 바이오 신약, 소프트웨어 디자인 등의 영역을 아우르는 녹색성장이 성공하면 할수록 높아진 에너지 효율성이 경제 확장에 기여해서 결국은 더 많은 에너지 소비와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스탠 콕스, 2009).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는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무한한 성장이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제본스 패러독스는, 외양적으로는 녹색 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은 녹색 가치를 억압하고 왜곡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녹색의 패러독스’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녹색성장이 녹색의 패러독스로 귀결되는 것은 녹색의 진정성이 결여된 방식으로 경제 중심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녹색성장이 녹색의 진정성, 즉 참된 녹색다움을 갖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 실현을 위해 녹색을 도구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녹색의 패러독스는 경제의 패러독스로까지 이어진다. 지켜야 할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이는 자연 자체의 훼손으로만 끝나지 않고, 오염 처리 비용 증가와 같이 경제적 가치의 잠식마저 초래하게 된다. 이는 곧 녹색의 패러독스가 경제중심주의의 패러독스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한다.

4. 반녹색주의와 반민주주의

녹색의 패러독스는 녹색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의 제도와 행태에서 비롯된다. 개발독재, 경제제일주의, 국가주의, 사람중심주의, 사회적 동원, 중압집권주의, 시장경쟁 논리 등의 방식으로 녹색 가치가 정책과 제도로 실현되는 데서 녹색의 패러독스가 움트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녹색을 화두로 하여 국정을 꾸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즉, 녹색성장과 같은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도모하겠다고 하면서, 실제 이를 추진하는 제도와 정책의 운용은 녹색주의와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녹색주의에 역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 정책은 그 지향성이나 원리의 측면에서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 정책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자연(녹색)을 배려하는 듯하지만 정책의 궁극 목표는 경제성장 촉진, 부가가치 생산 증대, 수출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확대, 국민소득 향상 등이다. 과거 성장 정책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표 달성을 위한 에너지와 자원 투입에서 효율성을 최대로 높이고 이를 통해 환경보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러나 이 효율성은 본질적으로 ‘투입 대비 편익의 최대화’로 표현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성장이라는 목표의 달성을 돕기 위한 것이다. 환경보전에 대한 기여는 이 목표를 달성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부수적 효과이지만, 그나마 오염 총량이 종국엔 더 늘어난다는 점에서 허구적이다.
 
▲     © 청와대

녹색성장이 이처럼 전통적인 산업주의 혹은 경제제일주의에 갇히게 되는 것은 녹색성장을 정책으로 생산하고 집행하는 영역을 반녹색주의자들(주로, 토건주의자와 경제제일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뉴딜이 사실상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토건 개발의 잔치판이 되고, ‘4대강 살리기’가 하천 생태계를 거덜내는 하천 토목사업으로 전락하며,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실제로는 ‘결코 녹색이 아닌’ 원자력을 중심으로 하는 것 등은, 정책으로서 녹색성장이 반녹색주의자들에 의해 포획된 결과를 보여주는 예들이다(김은경, 2009a, 2009b).

현 정부의 권력 심부는 반녹색주의자들이 독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조직의 편성도 이를 반영한다. 개발 부서와 보전 부서의 편성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건설교통부와 해양부를 합쳐 국토해양부라는 거대한,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토목 부처를 탄생시켰다. 4대강 정비 등 녹색을 앞세운 대규모 토건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전위부대가 바로 이 부처다. 이곳은 토건적 반녹색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부처인 만큼 ‘친환경적 토건사업’을 끊임없이 정책(예,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서민용 보금자리 주택 공급)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 정부 내에서 정책의 녹색화를 주도하고 옹호해야 할 주무부서인 환경부마저도 반녹색주의자들이 이끌다 보니 토건 부서들이 생산한 정책들을 녹색으로 포장해주고 정당화시켜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환경부는 있어도 환경정책은 실종됐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 정부 내에서 통치권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정 전반에 녹색을 덧씌우면서 국정의 최우선 과제인 녹색성장의 추진을 진두지휘하는 기구는 역시 대통령 직속의 녹색성장위원회다. 외양적으로 거버넌스 기구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인지도 있는 녹색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과거의 유사기구(예,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들과는 달리 시민참여와 협력을 담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인적 구성과 운영 방식의 조건은 이 기구가 토건적 집권세력의 입김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니 녹색성장이란 이름으로 생산한 대부분의 정책들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녹색의 진정성을 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내에서 이 기구가 ‘녹색 패러독스’를 생산하는 진원지가 된 것은 기존의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그 위에 군림하는 기구로 탄생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녹색성장이 경제, 사회, 환경의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하위적․부분적 개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지속가능 발전이 추상성이 높고 서구 중심 개념이라는 웃지 못할 비판을 제기하면서,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그 지원법인 국가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환경부 장관이 통괄하는 기구와 법으로 격하시켰다. 그러고는 녹색성장위원회의 하위 실행위원회, 그리고 녹색성장기본법의 하위 실행법으로 묶어 놓았다. 

반녹색주의자들이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결과로서 녹색을 표방하는 정책들이 ‘녹색의 패러독스’란 함정으로 빠져드는 것은 ‘진짜 녹색을 배제’하는 정책과 제도 운영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궁극적으로 현 정권의 집권세력으로서 반녹색주의자들이 가지는 반민주주의 성향에 있다. 이들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기보다 인간의 탐욕 추구에 충실하고, 자연을 온전히 유지하기보다 파헤쳐 돈이 되는 것으로 바꾸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보다 엘리트주의식 시민 동원에 의한 국가 운영을 선호한다. 이들은 이러한 방식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를 되살리며, 국가 선진화를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은 다양한 가치의 담지자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시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조건과 맞지 않게, 현 정권의 집권세력인 반녹색주의자들은 그들의 가치관만 옳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다. 그 결과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그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 이를테면 대중의 참여와 합의, 다양한 가치의 공존, 녹색주의자들의 비판 등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이 배제는 다원주의 시대인 오늘날 민주주의 원칙을 사실상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반녹색주의자, 특히 토건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사고 및 행태(예, 토건적 리더십)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즉, 집권세력이 가지고 있는 반민주주의 성향, 그리고 이것이 투영된 정책과 제도의 운영 과정이 곧 녹색 패러독스가 생겨나는 뿌리가 되고 있다. 
 
5. 녹색 패러독스의 비용과 극복

녹색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중심 정책으로 펴고 있다. 그러나 녹색의 가치를 십분 발휘해야 할 녹색성장은 녹색의 가치를 오히려 억압하고 배제하는 ‘녹색의 패러독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녹색의 패러독스는 결국 비용으로 환원되어 지금의 세대는 물론 미래세대가 언젠가는 지불해야 한다. 녹색 패러독스의 비용은 환경적․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환경보전을 위해 생태 효율성이 높은 기술과 자원의 투입을 늘리지만 그 총량의 절대치가 늘게 되고 그 결과로 환경이 오염되고 훼손되는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녹색 패러독스의 환경적 비용이다. 이것은 녹색 패러독스가 야기하는 가장 직접적인 비용이다.

환경적 비용은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거나 훼손된 환경을 복구하기 위한 막대한 비용의 지출을 수반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처리비용으로 끝나지 않고, 생산비용마저 높이게 된다. 녹색이 상품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구성하는 시대에, 환경오염과 훼손의 비용을 수반하는 에너지, 자원, 기술의 사용은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연비가 낮은 기술 제품인 자동차는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사이비 녹색투자로 실제의 생산비용이 증가하게 되면, 이는 결국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게 되고, 또한 올바른 녹색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발전의 기회를 놓치는 기회비용마저 발생시키게 된다. 이는 현 집권세력이 녹색성장을 통해 제2의 경제성장을 도모하려는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다.

녹색 패러독스가 유발하는 환경적․경제적 비용은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토건적 개발로 국토환경이 거덜나고 환경 부하량 증가로 생태계 흐름에 오염물질이 누적되면, 결국 우리의 생명적 삶은 건강성을 잃게 된다. 건강성을 잃은 환경에서는 우리의 사회적 삶 자체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다. 무엇보다 녹색을 경제적 가치 생산의 수단으로 삼는 반녹색주의 가치관의 확산은 지구 온난화를 극복하는 실천의 제도화와 일상 문화화를 가로막아, 그 어떠한 정책 처방도 약발을 갖지 못하게 한다. 녹색 감수성을 상실한 사회는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녹색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진원지는 토건국가를 움직이는 권력이 갖는 반녹색성에 있다. 녹색성을 결여한 권력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회색 권력’과 같은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권력이 아니라, 자연을 약탈하여 인간을 위한 편익의 생산을 극대화하고 부의 독점을 위해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이 근대 산업화 시대 회색 권력의 특징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한국의 회색 권력은 이러한 성질을 기본으로 하면서 더욱 퇴행적인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의 토건국가를 움직이는 회색 권력은 성장기 시대 산업화 권력의 성질에 더해, 자연을 대규모로 개조하고 활용하면서 경제적 가치 생산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지배의 정당성’마저 추구하는 전근대적인 토건권력의 성질마저 중첩되어 있다.

녹색 패러독스의 극복은 결국 권력의 성질을 바꾸어냄으로써 가능하다. 앞선 나라에서 녹색 권력은 사적 영역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일상생활을 추구하면서, 공적 영역에서는 녹색의 인간적․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일상 주체의 권력으로 성질이 바뀌어 있다. 지배 엘리트들이 녹색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사회 전반에 이를 강제하고 동원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우리의 녹색 권력과는 판이하다. 앞선 나라에선 일상세계뿐만 아니라 이를 위요하고 있는 시민사회를 녹색 권력의 기반으로 한다. 이는 국가 영역에서 규정되는 녹색 권력과 다르다. 무엇보다 권력이 사용되는 방식에서 녹색성의 진정성은 철저한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해야 하지만, 우리의 녹색 권력은 그렇지 못하다. 녹색의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토건적 회색 권력의 진정한 녹색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즉, 토건적 회색 권력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하는 일상 권력으로, 시민사회의 주체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시민적 권력으로, 녹색의 가치가 다른 가치와 대등하게 옹호되는 민주주의적 권력으로 바뀔 때 녹색 바람은 녹색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본문은 계간 <환경과 생명>(www.greenera.or.kr) 겨울호 통권 62호에 실렸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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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지구화, 되돌아보기 넘어서기』, 환경과생명.


*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환경과 생명> 편집인. 환경정의 공동 대표,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한국NGO학회 부회장 등으로도 활동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두 영역을 넘나들며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시․지역학 박사. 저서 『지구화, 되돌아보기와 넘어서기』, 『개발정치와 녹색진보』, 『녹색 사회의 탐색』, 『포스트포디즘과 현대사회 위기』, 『신개발주의를 멈춰라』(공저), 『새로운 공간환경론의 모색』(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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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30 [17: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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