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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한 ‘죄’와 시험 강요하지 않은 ‘죄’
[하재근 칼럼] 범국민, 범노동의 차원에서 잘린 전교조 교사와 연대해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8/12/12 [15:01]
교사가 학생들에게 강제로 일제고사를 보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렸다. 반면에 작년 5월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다 적발된 초등학교 교사는 3개월 정직 처분만 받았었다. 촌지 해외여행을 다녀온 교사들도 경징계만 받았었다.

성실의무, 복종의무, 품위유지 등 복잡한 기술적인 논점들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해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강요하지 않은 죄로 잘렸다는 것이 맞다.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 보도록 해야 하는데, 몇 명의 이탈자가 생기도록 방조한 것이 화근이 됐다. 즉, 일제고사를 약간 흔들기만 했을 뿐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과 매우 배치된다. 학생을 성추행한 ‘죄’와, 시험을 강요하지 않은 ‘죄’ 중에 상식적으로 어떤 게 더 중한가? 일반적으론 전자가 더 나쁜 짓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체제에선 후자를 더 나쁜 짓이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성추행자에겐 교단에 설 것을 허락하지만, 시험을 흔든 자는 잘라버렸다.

성추행은 인간에 대한 범죄다. 이런 것은 한국 교육에서 중요하지 않다. 한국 교육은 인간다움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시험흔들기’는 무얼까? 시험을 흔든 자는 왜 잘려야 할까? 여기에 한국교육, 한국사회의 심연이 있다.

- 화끈하게 밟아서 기강을 잡아라 -

성추행의 행위자와 피해자는 이렇다.

강자 -> 약자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한국은 강자 중심 사회니까. 또 한국은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다. 성추행은 이런 구조이기도 하다.

남성 -> 여성

그러므로 성추행은 별것 아닌 일이다. 여성이 남성 관리자를 성추행했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남성 권력자가 ‘아랫것’들을 성추행하다가 재수 없게 걸린 것은 동정을 살 만한 일이다. 상명하복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간의 일탈에 불과하다. 그런 정도 가지고 실업자로 만드는 건 야박하다.

멀쩡한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려면 진짜 나쁜 짓을 했어야 한다. 일제고사 흔들기 사태의 구조는 이렇다.

약자 -> 강자

위에서 하달한 명령을 ‘아랫것’이 우습게 여긴 것이다. 이것은 기강의 문제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영’이 선다. 일제고사는 글자 그대로 ‘일제히’ 보는 시험이다. 이탈자가 생기면 ‘일제고사’가 아닌 ‘일부고사’가 된다. 이러면 안 된다. 일부고사가 되면 일제고사의 효과가 약화된다. 그러므로 초장에 확실히 군기를 잡아 향후 일사불란한 일제고사 시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것은 사용자의 명령을 노동자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대충 넘어가면 규율이 무너진다. 또, 여기엔 전교조가 엮여 있다. 즉, 노조의 문제다. 노동과 노조를 확실히 휘어잡으려면 화끈하게 밟아놔야 한다. 가장 화끈하게 밟아주는 방법이 잘라버리는 것이다.

- 일제고사는 중요하다 -

일제고사라는 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흔들려선 안 된다. 이것은 국가질서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탈자가 있어선 안 된다.
 
▲     ©CBS노컷뉴스

여기는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모든 국민을 평등하다고 간주한다. 이러면 곤란하다. 어떻게 부잣집 자식과 가난뱅이 자식이 평등할 수 있나? 그러므로 모든 국민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일제고사를 봐야 한다.

일제히 시험을 치르게 해 경쟁을 시키면 모든 국민의 자식들에게 서열이 생긴다. 즉, 평등이 깨지는 것이다. 그 서열은 부잣집 자식과 가난뱅이 자식의 인생행로를 어렸을 때부터 달라지도록 만든다. 이 나라를 귀족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국가의 중대사를 감히 노조 노동자 따위가 흔들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천번 만번 잘려야 마땅하다.

일제고사를 통해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사교육비가 커져 사교육산업이 진흥된다. 그리하여 국민의 소득이 사교육 자본에게 이전된다. 일제고사를 자꾸 보면 시험공부에 치인 일반 국민의 자식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 간다. 국민을 ‘가난한 바보’로 만들어 공고한 귀족사회를 건설하려는 야심찬 기획! 이래서 일제고사는 중요하다. 성추행? 비교할 바가 아니다.

촌지 교사 사건은 약자로부터 강자에게 돈이 이전된 사건이다. 그러므로 경징계만 받아도 된다. 어차피 국민의 호주머니로부터 돈이 빠져나간 일이다. 학원비로 쓰나, 등록금으로 쓰나, 촌지로 쓰나 결국엔 빠져나갈 돈이다. 별일 아니다.

반면에 일제고사 흔들기는 국민의 돈을 지키는 일이다. 교육현장에서 일제고사가 우스운 꼴이 되면, 사람들이 일제고사 대비 사교육에 돈을 안 쓸 것 아닌가? 이러면 안 된다. 국민은 돈을 써야 한다.

왜 돈을 써야 하냐고? 모든 국민이 최선을 다해 사교육비를 쓰면서 시험을 봐야, 사교육비 순서대로 서열이 갈려, 부잣집 자식이 귀족이 될 것 아닌가. 돈을 펑펑 쓰도록 해야 한다.

전교조 교사 몇 명이 잘린 것에 불과한 사태가 아니다. 이번 징계는 모든 노동자, 노조에 대한 공격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우습게 자르는 문화에서 노동자는 결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또, 일제고사는 전 국민의 아이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사 몇 명이 당했지만 결국 모든 국민의 목젖에 창끝이 닿을 것이다. 범국민, 범노동의 차원에서 잘린 교사와 연대해야 한다.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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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12 [15: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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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4 [12:53] 수정 | 삭제
  • 서울대고 지랄이고 '학벌' 그 따위 게의치 않는 사람들은 걍 대충 교육마치고 잘먹고 잘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또 그런 사람들을 무식하다거나 3류인생인 것처럼 낙인찍는 짓거리 해요?

    이 땅의 엄마 아빠들을 '정신병자'들이라거나 '칼을 쥔 미숙아'들이라고 생각한다면서요?(교사평가를 주제로 한 방송토론회에서 하재근은 한국의 학무모들은 초등학생같은 미숙아들로서 그들에게 교사를 평가하게 하는 것은 미숙아에게 칼을 맡기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라는 취지로 발언함)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회 바꾸는데 누구랑 손잡고 운동할 참인지 정말 개념있는 사람들인가요? 노동자 농민이 '미숙아'나 '정신병자'들이라면 그들과 손잡고 시민혁명은 커녕 계급혁명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한쪽은 미숙아나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다른 한 쪽인 서울대와 명문대의 권력과 이상과 품격과 선망과 인격의 아우라는 그토록 사회에 강고하게 구축하여 피할수 없는 이슈로 끌어 올려 놓고, 사람들 머리와 생각과 상상력 안에 세뇌시키고 각인시켜 놓아 그래서 그 존재의 위대함에 포섭되게 하면서, 이제 구호로 '대학평준화'를 외치면 동의 안따르는 시민들로부터야 말도 안되는 미친넘 소리 듣는 거 뻔하잖아요. 그거 알면서 계속하는 거에요 아님 모르는 멍청한 운동가에요?

    "한국의 교육수요자들은 한 마디로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육수요자들의 정신병을 보여주는 지표는 사교육비의 추이다. 사교육비가 커질수록 정신병도 깊어진다. 바로 ‘1류병’이다. ....내 자식만 1등하길 바라는 수요자들의 정신병적 탐욕이 계속되는 한 교원평가를 천년만년 해도 교육붕괴는 계속 된다." (하재근)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저런 몰상식한 소리를 했다간 명예훼손으로 구속되어 있을터인데....묻고 싶다. 성질이 올라 내뱉은 말인가 아니면 진짜로 그 많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내 자식 1등'을 위해 '정신병적' 집착을 하고 있다고 믿는가? 자기자식 1등을 위해 달리는 학부모가 몇 %나 될까? 많은 문화적 사회적 철학적 인간관계적 이유들을 감춰 버리며 한국 사회(교육)현실을 왜곡해 내는 크나큰 오류이다.
  • 민초 2008/12/14 [10:30] 수정 | 삭제
  • 참 더러운 국가에 태어낫다는것!
    민초들에게는 죽지못에사는 엿같은 나라사회라는것
  • 진보의진부 2008/12/13 [03:40] 수정 | 삭제
  • (내가 반말로 쓰는 것? 그건 당신 오류에 대한 댓가이니 스스로 감수하라)


    당신의 글과 논리는 세상사 다 간파한 듯 늘 가볍게 터치하며 그럴 듯함을 가장하지만 사실 고수들이 볼 때는 그리 정교하지 않다. 아니 더 나아가 심각한 결함이 도리어 사회를 망가뜨릴 역효과까지 가진 위험함으로 충만 되어 있다. 당신을 위해서는 다행일지 모겠지만 사회를 위해서는 아주 불행이다. 내가 흥분하는 이유이다. '게으른 진보'들이 '자기성찰'과 '자기진보'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신 글 같은 개판인 생각들이 진보바닥에 그저 줄줄 새 나오고 방치될 뿐이다.

    고행의 깨달음은 고사하고 진지한 성찰 한번 해 보지 않은 채 골방에 앉아 마치 조여 오는 삶의 불안함에 반항이라도 하듯 처신하는 것이 진보의 치기어림과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다. 그러면서도 '문화평론가'니 무슨 시민단체 '사무처장'이니 그럴듯한 직함의 '권위'에 의탁하는 맛(개폼)부터 들이고, 책 쓰고 인터넷 대문에 글 올라오니 마치 '문화권력(권위)'이나 '공인' '명망가'라는 자격이라도 쥔 마냥 의기양양 재미를 느끼나 본데, 그게 당신 같은 허접한 진보 운동꾼들이 생존하는 그 바닥 처세술일지는 몰라도 진짜 시민이나 민중들이 볼 때는 제도권 권위주의자들이나 천박한 자본가들의 우쭐한 행태와 전혀 차이가 없다. 하재근 만이 아니다. 그러한 유치한 모습들은 진보의 천박함으로 드러나는 여러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내적 욕망의 완장을 찬 시건방진 진보(좌파)들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겉으로 보기엔 목소리 높여 사회의 소금인양 진보인양 좌파인양 행세하며 정치하지만 치기어린 정치와 한계의 속성이 실질적으로 '시민운동과 진보' 나아가 '좌파 생명력(토양)'까지 서서히 목을 조이고 싹을 밟아 대는 '반동'이라는 사실이다.

    어차피 사회적 효과와 아무 관계가 없는 동아리 회원들이야 열광한다 하더라도 과학성에 대해 철저히 고민해 봄이 없이 그저 '운동'이라는 포장지에 자신의 컴플렉스성 화풀이와 푸념을 막 뒤섞어 사회에 무작정 뱉어 내는 것, 이거 정말 죄악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한다.

    내부 비판의식이 멸종되어 ‘자기진보' 없는 “학벌없는 사회”나 편집권이 있을 “대자보” “레디앙” 등 진보언론들이 그저 가볍게 공생하며 좋은 게 좋다는 빈곤한 처지에 머물기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지적해 준다.

    '꽃'이라 부르는 순간 '의미'가 된다고 했고, '코끼리'를 상상하지 말라고 한 순간 정확히 '코끼리를 상상한다는 사실...."주홍글씨" "매춘"이라는 그 내용의 행위가 존재하고 그 행위에 어떤 사회적 평가와 규정이 승리하여 그 '언어'는 비로소 그 '가치'로 사용(낙인)되기 시작되었다. 그렇게 "주홍글씨"와 "매춘"의 '내용'은 '비난과 기피'해야 할 '행위(존재)'가 되어졌다는 점.

    그런데 "장애인" "주홍글씨" "매춘" “3류” "딴따라"“가난” “노동”의 행위나 실체 그 내용의 주체들이 '죄악'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나서기 시작한다면? 그 주체들이 사회적 힘과 계급으로 존재한다면?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매춘’을 주제로 논쟁하던 글들 읽어보지 않았냐? 자주적 주체성이 형편없는 당신은 '문화평론가'라고 우쭐댈지 모르겠지만,'서태지'와 '교실이데아'가 왜 영웅으로 탄생되었는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지금 돈을 꽤나 벌었다는 사실만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이해하는 척 할지라도 당신이 서 있는 위치는 '서태지의 존재와 가치'의 대척점, 그들을 공부 못했던 그래서 학벌없는 연예인 즉 소위 "딴따라" 수준으로 집요하게 끌어 내렸던 '고매하고 격조높은' 존재들에 선이 맞닿아 있을 것이다. 서태지류의 욕망이 있듯 하재근류의 욕망이 있는데 많은 서태지들은 많은 하재근류의 가치질에 굴복해 뒤늦게라도 명예 학위라도 하나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 순간 서태지는 이미 서태지가 아니다.

    한국에서 죽어라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수능’이나 ‘일제고사’라는 승부의 기관차에 올라타 경쟁의 질주에 가담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당신이 비판하는 그 기득권 죄인들이 만들어 가는 "제도"와 "이데올로기"와 "서열적 평가"에서 기인한다는 것, 이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 쉬운 상식을 주절주절 읊어대며 울겨 먹는 바로 당신 같은 머저리 '반동적 운동꾼'들 또한 개념 없이 규정해 대는‘의식과 가치의 질서(서열)질’에 열중하지 않는가. "3류" "낙오자" "따라지 인생" "지잡대" ""천한" 가난뱅이"...이러한 몰 계급적 '낙인'이 좌우파에서 동시 상영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죽어라 공부하는 것, 수능에 목숨 거는 것, 일제고사에 적극 동참하는 것, 결국 ‘낙인이데올로기’인 그 사회적 인식과 굴레로부터의 '벗어나기'이고 '기피'이기에 당신의 '적'과 '당신' 그 둘 사이는 경쟁의 질주에 죽음의 가속을 밟아 대는 '공범', 정확한 사실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과 매우 배치된다. 학생을 성추행한 ‘죄’와, 시험을 강요하지 않은 ‘죄’ 중에 상식적으로 어떤 게 더 중한가? 일반적으론 전자가 더 나쁜 짓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체제에선 후자를 더 나쁜 짓이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성추행자에겐 교단에 설 것을 허락하지만, 시험을 흔든 자는 잘라버렸다." (하재근)

    “부잣집 자식들이 갈 일류학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류학교가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해야 부잣집 자식들이 더 수월하게 일류학교에 가게 된다. 어차피 일반 국민의 자식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일류학교 입시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인생을 감당해야 할 ‘따라지’ 인생이다.” (하재근)



    잘 생각해 봐라. "3류" "실패자" "낙오자" "지잡대" "따라지 인생" "천한 가난뱅이"가 있다면 끔찍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 이나 그런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을 회피하려는 행위가 있게 된다. 그 행위가 "성추행"에 당위적으로 흥분해야 한다는 행위보다 더 못날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더 중대한 가치의 근거를 대 보라. 그런데 "3류" "실패자" "낙오자" "지잡대" "따라지 인생" "천한 가난뱅이"들 그 주체들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는가. 도대체 누가 그렇게 ‘비참’을 선언하고 규정하며 삶의 가치를 그렇게 폄훼해 대는가? 바로 당신이 아닌가. 따라서 그들이 그 정당한 ‘기피’를 위해 수능과 일제고사에 참여하여 좋은 평가를 받아 내려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라는 말인가. 모두가 일등 할 수 없다는 것 다 안다. 알고서도 참여한다. 왜냐면 당신이 깔보는 그 “3류”나 “낙오자”인생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 와중에 왜 한가롭게 내 자식이 당한 것도 아닌 누군가의 성추행에 흥분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역설이 이해가 가는가?


    함께 한번 고쳐보자. 비슷한 내용 같지만 ‘운동’과 ‘반동’ 만큼 차이가 크다.

    “부잣집 자식들이 갈 일류학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류학교가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해야 부잣집 자식들이 더 수월하게 일류학교에 가게 된다. 어차피 일반 국민의 자식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