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호의 시민경제 찾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사교육비 투자, 대학진학효과 전혀없다
[논단] 대한민국 교육방식은 ‘전국민이 자기 무덤을 파는 삽질 행위’
 
홍헌호   기사입력  2008/01/13 [16:56]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의 글 제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인적인 말장난이나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사교육비 투자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거나 대학진학률을 높이는 데 효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증연구들에 의하여 증명된 바 있습니다.

<사교육이 학업성취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물들>
한대동 외(2001),“고등학생 학업성취에 대한 학교효과와 과외효과의 비교연구”,<교육사회학연구>,11(1)
반상진 외(2005),“과외가 학습성취에 미치는 영향분석”,제1차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  발표논문.
이명헌,김진영(2005),“사교육의 학습성취도 향상 효과에 관한 연구”,제1차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  발표논문.
최형재(2007),“사교육의 대학진학에 대한 효과”,한국노동연구원.
(자료출처) : 위의 최형재 논문.

왜 이들의 연구결과는 사회적 통념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실제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설문조사하여 통계를 낸 연구 보고서들을 보면 다수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사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응답하곤 합니다.

사교육비 투자가 학업성취도 향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은 이런 단순한 연구들과 달리 학생들의 가정적인 배경을 통제하고 사교육비 투자와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추정한 것입니다. 즉 가정적인 배경이 유사한 학생들을 한 그룹으로 모으고 이 그룹을 사교육을 받은 소그룹과 사교육을 받지 않은 소그룹으로 나누어 두 소그룹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대학진학률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런 과학적인 연구결과 이들은 사교육비 투자가 학업성취도 향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상당히 흥미로운 수수께끼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 수수께끼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 OECD의 학업성취도 평가에 의하면 핀란드의 초중고생들은 사교육과 과외를 안 받고도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2. KBS 오락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독일 여성이 ‘독일 고등학생들은 오후 1시면 학교 마치고 집에 가서 개인활동을 한다’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독일 고교교육이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3. 또 위 프로그램에서 호주 여성은 ‘호주 고교생들은 방과 후에 사교육이 아니라 스포츠나 개인활동을 주로 한다’고 말했는데 호주 고교교육이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4.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은 공교육 이외에 사교육을 덤으로 받느라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고 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등이 휠 정도라고 하는데 왜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은 경쟁국 중에서 최하수준일까.(매년 발표되는 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는 우리나라 대학경쟁력을 60개국 중에서 50위권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는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을 ‘전국민이 자기 무덤을 파는 삽질 행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21세기 교육의 핵심 화두가 ‘창의력’이라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하루 온 종일 잠자는 시간만 빼고 남의 말만 듣고 남의 말만 자신의 머리 속에 억지로 쑤셔넣도록 하는 교육. 이런 교육을 어찌 정상적인 교육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의 교육으로는 결코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울 수도 없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도 없습니다.

제가 고3 때 대입시험을 치른 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고교선배들이 10~20여년 전에 만들어 놓은 교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준 높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요즘 고교생들 중에서 그 정도 글들을 써 내는 학생들이 전교에서 한두 명이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나라의 가엾은 초중고생들. 하루 온종일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별로 쓸모도 없는 지식나부랭이를 억지로 머리에 쑤셔박고 가뭄에 콩 나듯 짬이 나면 바보상자나 들여다 보고 게임이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신세들. 이런 교육현실에서 무슨 놈의 자발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이 길러지겠습니까.

이렇게 기성세대들이 초중고생들의 자발적인 창의력과 사고력을 말살시킨 결과 대학경쟁력이 형편없이 나오자 세칭 명문대 교수라는 자들은 초중고 학생들과 교사들 수준이 낮아서 대학경쟁력이 그 모양이라고 책임 전가를 합니다. 도대체 이들의 얼굴에는 얼마나 많은 철판을 깔려 있을까요.

모든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사교육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한국에서는 사교육으로 범벅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양쪽의 학업성취도 결과가 유사하게 나왔다면 당연히 한국식 방식을 버리고 유럽식 방식을 택해야지요.

학생들을 놀게 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게 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과외가 불법화된 시기에 고교 3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농촌이었기 때문에 읍내에 학원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도 운 좋게 빛 좋은 개살구지만 그럴 듯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방법은 ‘복습만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 성과가 매우 좋았어요. 나중에 심리학과 컴퓨터에 관해 공부하면서 그게 바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장치로 저장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단기 기억은 장기기억장치로 저장되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복습을 안하면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장치로 저장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지요.

복습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날 수업받은 것을 요약정리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매우 좋았지요. 국영수 이외 과목 정리에는 하루 한 시간이면 족했습니다. 저비용 고효율이었지요. 나머지 시간은 국영수 문제풀이로 대부분 보냈습니다. 그 날 배운 것을 스스로 요약하고 정리하고 관련된 문제를 푼다는 것은 남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소화하고 재구성한다는 것이므로 사고력과 창의력 배양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핀란드 등 유럽식 교육방식의 열렬한 숭배자입니다. 학생들이 혹사당하지 않고도 놀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벤치마킹할만한 유럽식 모델이 주어져 있고 저 스스로도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저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매우 혐오합니다.

좋은 교육은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장기적 효율성은 물론 단기적 효율성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육이 저비용 고효율적인 교육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교육이며 합리적인 교육입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대우받아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학생들도 인간답게 대우받아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성세대들, 우리 학생들을 인간답게 대우하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기 위하여 자신의 자녀와 타인의 자녀 모두를 성적 올리는 기계로 전락시킨 형편 없는 사람들. 그리고도 대학경쟁력 꼴찌를 달리게 만드는 우둔한 사람들. 삶의질 운운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녀들을 ‘챗바퀴 속’에 집어 넣고 그들이 달리는 속도를 재고 있는 형편없는 사람들. 그것이 바로 우리 기성세대들의 추한 자화상입니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8/01/13 [16: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연애편지 2008/01/16 [18:44] 수정 | 삭제
  • 그냥 잡담하나 남긴다면... 사교육비 자체가 사회 문화적으로 특정한 상징으로 변해버린것은 아닐까 싶네요. 물론 사교육비 없이 말그대로 개천에서 용난 경우를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막상 사람들은 사교육비가 많이들수록 돈을 많이 소비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사교육비를 통해서 과시효과를 얻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들 남들이 다 하니까 그렇겠지만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는게 제 짧은 소견입니다. 예전영어잘하려고 혀를 수술하고, ADHD 아동들을 위한 약을 공부잘하는 약으로 먹이질 않나...

    이런 현상을 다분히 조장된 면도 있다고 봅니다. 교육부만 봐도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안일규 2008/01/16 [11:46] 수정 | 삭제
  • 저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놀고 싶을때는 놀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글을 적으신 홍헌호님과도 같은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보고 혹자가 묻겠죠. 학생들 마음대로 하게 하면 맹탕 놀텐데라고 말입니다. 분명 놀면서도 배우는 게 있습니다. 노는 것에도 교훈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사교육을 나쁜거라 보지 않습니다. 다만, 학교 수업 내용을 공부하는거나 - 토익*토플과 같은 걸 위해 사교육을 하는 거는 '최악'이라 봅니다.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중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은 '사교육'을 통해서 채워야겠지요.

    이 나라의 부모들은 막말로 '무슨 사고방식인지는' 몰라도 정작 해야 할 때는 공부를 안하게 만드는 그런 나쁜 습관을 자녀에게 들이고 있지요. 대학 가보세요. 과연 공부를 하는지. 공부하면 '토익'이더군요.

    한 나라의 미래를 볼려면 '교육'만 봐도 나온다는 게 제 철학입니다. 아직 이 나라의 수준은 암울해보이네요.

    '수치'로, '부'로 평가하고 그 결과 우리를 '선진국'이라 칭하는 게 아니라 진정 '수준'으로 선진국이란 평가받길 바랍니다. 그러나 분명 중요한 건 '선진국'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을 우리가 스스로 죽이는 게 아닌지, 우리가 미리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가둬버리는 게 아닌지부터 다시 짚어봐야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거부감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한 말씀이라 봅니다. 다만, 한 편으론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