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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정치인 찾아가는 음악회’ 하나
[컬처뉴스의 눈] 무료로 열리는 서울시향 연주회, 정치인 홍보수단 안돼
 
김소연   기사입력  2006/01/18 [12:03]
음악을 즐기는가 명성을 즐기는가
 
마에스토로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회가 새해 문화면을 달구고 있습니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에 부임한 것은 지난 해 3월이지만 지난 해 그가 지휘봉을 잡은 것은 세 차례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1월에만 일곱차례의 연주회가 잡혀있습니다. 올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베토벤 사이클’이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되어 20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연주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17일에는 충무아트홀에서 서울시향 수석주자들과 실내악 연주회도 갖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자치구에서 열리고 있는 ‘찾아가는 음악회’ 입니다. 세계적인 거장이 공명도 안 되는 시멘트 벽의 구청 강당에서 지휘봉을 잡았다는 것이 화제입니다. 지난 10일 중랑구, 11일 은평구 공연에 이어 16일에는 구로구로 이어지고 있는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첫 공연이었던 중랑구에서는 450명 정원의 구민회관에 700명의 청중이 몰렸고 연주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관객들 200여 명이 연주장 옆의 문화회관 건물에 설치된 멀티미디어로 실황중계되는 공연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열기는 다른 자치구 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직접 연주회를 보지 못했지만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을 직접 찾아나서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열정은 저 역시 감동적입니다. 언론에서 전하는 바를 보면 이 세계적인 지휘자가 구민회관 연주회에 적지않은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들을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직접 듣는다면 클래식이 어렵거나 진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명성에 안주하거나 자신의 음악적 성취에만 매몰되지 않고 클래식 애호가층이 지극히 협소한 국내 음악계를 돌아보는 그의 고민에서 깊이가 느껴집니다. 저도, 그의 바램처럼, 그의 이러한 열정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즐기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한 열띤 반응을 보면서 우려가 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언론의 반응이나 관객들의 반응이 온통 마에스트로 정명훈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동네음악회에 온 마에스트로’라든가 ‘우리 동네에서 정명훈의 연주를 본다는 것이 감격적이다’ 등 전해지는 소식은 온통 그의 명성에 대한 흥분뿐입니다. 그와 서울시향이 어떠한 음악을 들려주었는지 관객들은 연주회에서 어떤 교감을 나누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길이 없습니다.
 
물론 세계적 거장이라는 그의 명성이 클래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값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명성만을 향유할 뿐 정작 그와 서울시향의 여러 연주자들이 준비한 음악을 함께 즐기지 못했다면 그의 바램과는 달리 ‘찾아가는 음악회’는 물거품 같은 이벤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올해 40회가 기획되어 있는 서울시향의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그가 무대에 서는 연주회는 7, 8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온통 ‘마에스트로’에게만 열광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머지 연주회는 또 어떻게 치러질지까요. 정명훈이 선 무대에 대한 열광은 어쩌면 다른 연주회들을 상대적으로 쓸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소리 공명도 되지 않는 강당에서 열정적인 연주로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는 흥분된 어조의 기사는 더욱 씁쓸합니다. 흥분을 거두고 현실을 따져 보면 그것은 결코 감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수십만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치구에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없는 삭막한 서울의 맨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일 뿐입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연주한다하더라도 결국 공연장의 문제는 연주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고 정명훈이라는 명성에 처음 음악회를 찾은 청중들에게 그는 최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열정을 높이 사는 것도 좋지만 거장의 명성으로 클래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이러한 장애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설혹 연주가 훌륭했다고 해도 문제인 것이 또다른 음악회가 열렸을 때 치명적인 공간의 문제가 고스란히 연주자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자치구 주민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가 무료로 진행되었다는 것도 결코 반길일이 아닙니다. ‘음악회 티켓 값이 비싸서 평소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하지만 서울시향처럼 공공단체의 연주회는 최고가가 3만원~5만원 선입니다. 요즘 서울시향의 연주회도 정명훈이 서는 무대는 가격이 한층 높아졌다고 하지만 굳이 VIP석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가격으로 음악회를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마다 금액의 부담은 다르겠지만 요즘 성행하는 패밀리레스토랑의 한 끼 식사값과 그다지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취약계층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프로그램은 결코 문화예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문화는 생활재와 달리 스스로 찾아서 즐기지 않는다면 결코 지속적인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사회처럼 모든 예술작품, 문화프로그램을 공적 자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예술가를 위해서나 대중들을 위해서나 더 필요한 것은 적정한 수준의 시장 활성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취약한 국내 음악계를 고민하는 마에스트로의 열정이 정치인들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장 지난 10일 있었던 중랑구민회관 연주회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2번 1악장 연주가 끝나고 다음 곡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오병권 서울시향 공연기획팀장이 무대에 올라와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며 돌연 객석의 문병권 중랑구청장과 곽영훈 한나라당 정치발전위원회 중랑갑 위원장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떠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았어야지 일어서서 박수를 받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는 이명박 시장이 일어나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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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1/18 [12: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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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다말고... 2007/07/03 [12:49] 수정 | 삭제
  •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부정적인 시각 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군요.
    물론 그런 몰상식한 일은 없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