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에서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2004.1.16 법률 제7062호)'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를 보면 먼저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서울이 수도라는 명문화된 헌법 규정은 없지만, 조선시대 한양을 도읍으로 결정한 이후 건국 이후에도 모든 국민이 수도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해온 것으로 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뤄져야만 한다"고 밝혔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수도 이전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절차를 정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법원과 함께 대한민국의 최고사법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부정확한 개념정의와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하다. 최고로 숙련된 법률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결정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소설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문학작품에 가깝게 보인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헌법재판소가 내린 이번 결정 가운데 대표적인 논리적, 법리적 오류를 짚어보자!
먼저, 헌법재판관들은 이번 행정수도 이전 법안을 단순히 행정기관의 이전 수준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도를 이전하는 법률로 정의하고 있는 과감함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천도(遷都)라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단호한(?) 정의를 내리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한 헌법재판관들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속에 확립된 관습헌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멀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를 일일이 뒤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까마득한 봉건 조선왕조의 한양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서울에 계승된다는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모쪼록 헌법재판관들은 결정을 하기 전에 헌법전문을 먼저 읽어볼 일이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의 논리적 구성 가운데 백미는 단연 '관습헌법'을 아무런 논리적, 합리적 근거 없이 성문헌법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제정이후 일관되게 성문·경성헌법의 역사를 지녀왔다. 쉽게 말하면 대한민국 헌법은 명문(明文)의 형식을 갖고 엄격한 절차에 따라서만 개정이 가능한 헌법으로서 관습법을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성문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라고 해서 이른바 불문(不文)적인 헌법관습법의 존재를 완전히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문헌법 체제에서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은 경청할만하다. "성문헌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와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적 관행에 의해서 성문헌법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고 성문헌법전 보다 불문적인 헌법의 관행예가 우선하고 국가생활을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는 헌법개정 사안을 국민투표 등의 헌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의 입법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그것도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 2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법률에 대해 국민투표를 거치라는 결정은 자칫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사법적극주의의 극단적인 예라고 할 것이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권력분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다시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을 들어보자!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 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아닌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라면서 피해가던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 대한민국을 혼비백산하게 하고 있다. 아! 헌법재판소가 결연하고 비장하며 신속하게 내린 결정이 또 있다. 국가보안법은 합헌이라는 결정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헌법재판소는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었다. 독재자들이 전제군주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여 헌법도, 삼권분립도 헌신짝처럼 취급하던 때에는 헌법재판소라는 헌법기관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가 본 궤도에 오른 지금은 독재자의 시녀 노릇을 하던 사법부에 의한 사법독재가 심히 우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은 선거를 통해서 교체가 가능하지만 사법권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이제 겨우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교체가 시작되었을 뿐 건국 이후 한국사회의 전 부문을 장악해 온 수구기득권 세력의 힘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정치·관료·사법·군·경찰·언론·학계·교육·종교·경제·문화 등의 사회 전 부문에 대한 근본적이고 쉼없는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근본적 개혁과 미시권력의 주체 및 작동방식이 민주화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직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문턱에 서 있을 따름이다.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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