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절 99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해온 시인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소장이 여덟 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를 냈다.
그는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여성독립운동가의 처절한 삶을 시와 글로 조명해 왔다. 특히 시인이기도 한 이 소장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 8>( 얼레빗, 2018년 2월 23일)를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나에게 우편으로 보내준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받은 <서간도에 들꽃피다 8> 책 안에 메모가 한 장 있었다.
“언제나 고마운 동지! 따끈따끈한 <8권>이 1시간 전에 나왔오. 가장 먼저 김 회장님에게 보내오, 명문장에, 마음까지 따스함 곁들인 ‘소개’에 깊이깊이 고개 수그리며. 2월 24일 이윤옥”
이윤옥 소장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를 8권 째 발행을 했다. 매권 20명씩 모두 160명의 여성독립열사들을 조명해 왔다. 그래서인지 8권은 3.1절 99주년을 맞춰 발행한 시집임을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는 내년 3.1절 100주년을 맞아, 총 20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시와 글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총 200명을 채우려면 아직도 4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야 한다.
어쨌든 그가 빠른 등기 우편으로 보내준 <서간도에 들꽃피다 8>를, 게으른 탓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 3월 9일 금요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 200여 쪽의 시집을 꼼꼼히 읽었다.
먼저 남도의 유관순이라고 불린 윤형숙 열사(1900. 9. 13~1950. 9. 28)의 비극적인 삶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수피아여학교에 다니던 윤형숙(윤안정엽, 윤혈녀) 열사는 1919년 1월 20일, 같은 학교 학생들과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의 독살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3월 10일 오후 2시 전남 광주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만세 시위에는 수피아여학교를 비롯해 숭실학교생, 기독교인, 농민,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여했다. 일제는 기마헌병을 투입해 시위자들에게 위해를 가했고, 체포에 열을 올렸다. 윤형숙 열사의 태극기를 든 왼팔이 잘리고, 오른쪽 눈이 실명하는 비극적인 운명과 마주친다. 이어 큰 부상을 입고 주동자로 잡혀 옥고를 치른다.
극심한 부상에다가 거듭된 고문으로 감옥 문을 나설 무렵, 윤 열사는 그나마 실낱 같이 의지했던 왼쪽 눈마저 실명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삶의 희망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이후 독신으로 원산의 마르다윌슨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뒤, 전주로 내려가 기독교학교의 사감과 고창의 유치원 등에서 자라나는 어린이 교육에 힘썼다. 하지만 윤 열사의 삶에 닥친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된 조국,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1950년 9월 28일 밤, 서울이 수복되자 퇴각에 나선 인민군은 윤형숙 열사를 비롯한 손양원 목사 등 기독교인을 포함한 양민 200여명을 여수시 둔덕동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윤 열사의 나이 50살,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왜적에게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하여 왼팔과 오른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좌우익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윤형숙 열사의 무덤 묘비에 새겨진 글귀이다. 무덤은 전남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마을 주변에 있다.
만세운동으로 팔 잘리고 눈먼 남도의 유관순 ‘윤형숙’
베니스의 상인을
무대에 올리던
꿈 많던 열아홉 처녀
기미년 그해
높이든 태극기 찢기고
팔 잘리고
눈마저 찔렀어라
하나뿐인 목숨 걸고
꽃다운 청춘도 오롯이 바친
자유 향한 임의 피울음
겨레의 가슴속에
붉은 꽃으로
영원히 피어나리
오항선 애국지사(1910. 10. 3~2006. 8. 5)는 18살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 김좌진 장군의 부하가 돼 무기운반과 은닉 그리고 연락책임을 도맡아 목숨을 건 독립운동에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
1930년 김좌진 장군이 죽자 부인 나혜국과 함께 장군 부하 동지들의 경제생활을 지원했고, 그해 1월은 암살을 당한 김좌진 장군의 복수를 모의한 고강산, 김수산 등 6명에게 권총을 전달했다. 무기를 전달하는 과정은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오항선 지사는 두려움 없이 무기 운반의 임무를 완수했다.
오 지사는 1930년 10월 독립군 활동을 돕던 중, 자신의 집에서 남편 유창덕과 함께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해 10월 말 남편 유창덕이 일본군에게 사살되는 불행을 겪게 된다. 오 지사의 나이 31살 때였다. 홀로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오 지사는 1935년 안중근의 누이동생인 안성녀의 아들 권헌 선생과 재혼해 함께 독립운동에 힘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의 맏딸인 이인순 지사(1895~1945. 5. 8)는 여성교육에 힘쓰며,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1918년 아버지를 따라 남편 정창빈과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정착했다. 27살 때 3.1만세운동이 일어났고, 그해 11월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걸려 그만 숨을 거뒀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인순 지사가 숨지자, 5살 난 아들 정광우마저 장티푸스로 숨졌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이들 두 모자의 죽음을 지켜봤던 남편 정창빈 지사가 이를 비관해 모자가 숨진 이듬해인 1920년 1월 27일 음독자살하였으니 참으로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이 시집에는 일제 감옥에 잡혀간 대한애국부인회 여성들의 끔직한 고문실상을 <최은희 전집>에서 간추려 소개하고 있다.
강서군 증산 지회장 송성겸은 당시 40대 부인으로 임시정부 군자금을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해 매우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연락책에게 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을 전달하려다가 일본형사에게 꼬리가 잡혀 체포됐다.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애국부인회 각 지부별 책임자들을 아는 대로 불게 된다.
애국지사 최매지에 따르면 일본 형사들은 송성겸을 거꾸로 매달고 콧구멍으로 물을 부은 것은 오히려 약과요. 알몸뚱이로 벗겨 벌렁 뉘어놓고 국부를 몽둥이로 쑤시는 악형을 주어 자백을 받았다. 60세 노인인 오신도도 담배물부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트는 바람에 손가락뼈가 부러졌고, 최매지도 억센 손바닥으로 수없이 맞아 뺨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무지한 구둣발로 옆구리를 걷어 채이고 이놈저놈이 몰매를 때렸다.
왜놈들의 잔인한 근성은 갖가지 잔인한 고문을 하고도 모자라 다른 사람이 당한 고문을 보여줌으로써 심적 고통을 더하게 하는 위협까지 가했다. 결박을 지어 마주 건너다보게 세워놓고 채찍으로 갈리는가 하면, 몸을 간질이고 꼬집고 때리고 실랑이를 쳐서 치마허리가 떨어지고 의복이 갈갈이 찢어져 몸 수습을 못하게 만들어 놨다. 머리채를 끄들르고 몹시 때리고 기절해 넘어진 것을 죽은 개 끌고 가듯 질질 끌어다가 마룻바닥에 뉘어 놓고 수족을 주무르고 미음을 퍼 넣어 오랜 시간을 경과한 뒤에야 소생시켰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간 조애실 애국지사(1920. 11. 17`1998. 1. 7)는 불구대천의 왜놈순사 앞에서 알몸으로 극한 고문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알몸으로 <비행기 1호>라는 이름의 극심한 고문을 받아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몸을 나무에 묶어 놓고 비틀어 뼈가 살에서 튕겨 나오는 고문 속에서 정신을 놓지 않았다. 독립운동 당시 형무소에서 받은 고문으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병을 달고 살았다.
독립운동으로 한날한시에 순국한 어머니와 아들이 있다. 최정철 애국지사(1853. 6. 26~ 1919. 4.1)와 아들 김구응 의사(1887.7. 27~1919. 4.1) 가족이다.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이놈들아! 나도 죽여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 가담해 현장에서 순국한 최정철 지사 무덤 묘비에 새긴 글이다.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 날인 1919년 4월 1일, 어머니와 아들이 일제의 총칼에 찔려 같은 날 비명에 순국했다. 제삿날이 같은 비극적 역사이다. 노모 최정철 지사는 67살, 아들 김구응 의사는 32살이었다.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락>에는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과 관련해 노모 최정철과 아들 김구응 지사의 죽음을 다음같이 묘사했다.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 김구응이 남녀 6400여명의 소집해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이 조선인의 기수를 해치려 했다. 조선인들이 맨손으로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일본 헌병은 이들의 배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자, 김구응이 일본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총구를 돌려 김구응의 머리를 쏴 즉사하게 했다. 이도 모자라 팔 다리를 칼로 난도질 했다. 이 때 김구응의 노모 최정철 지사가 일본 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을 하자, 그 마저 찔러 죽였다.”
바로 일경에 의한 천인공로 할 비극적 사건이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자혈사>에 의하면 천안 아우내 장터의 주모자를 김구응 의사로 기록하고 있다. 그간 우리는 천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 주모자가 윤관순 열사로 알고 있지만,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락>과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자혈사>에는 천안 병천(아우내) 독립운동 편에는 윤관순 열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날 유관순 열사도 천안 아우네 만세운동에서 참여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7명의 친인척을 잃었다. 유관순 열사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잡혀 옥중에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는 방대한 재판기록이 남아 있고, 김구응 지사는 당일 현장에서 순국한 바람에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순국 뒤에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전까지 남은 가족들의 피해를 생각해서인지 그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김구응 지사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강원도 철원의 만세운동의 여전사 곽진근 지사, 미국의 동포의 한줄기 빛 공백순 지사, 꽃다운 열여섯 무등산 소녀회 김귀선 지사, 전주 남문시장에 타오르던 불꽃 김나현 지사, 자수성가로 번 돈 광복의 초석 쌓은 김덕세 지사, 부산 좌천동의 불타는 투혼 김반수 지사, 땀 배인 독립자금 광복의 불씨 지핀 김자혜 지사, 미주 동포사회에 독립의지 심은 사진신부 양제현 지사, 혈성애군단원 신념으로 조국 지킨 이성완 지사, 중국 군인도 무서워 벌벌 떤 여자광복군 이월봉 지사, 잠자던 조선 여성 일깨운 이혜경 지사, 마니산 정기로 피워낸 광복의 꽃 조인애 지사, 수피아여학교의 영원한 횃불 진신애 지사, 대구신명고 교가 지어 애국혼 심은 차보석 지사, 미국동포의 가슴에 독립의 불 지핀 한성선 지사 등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저자 이윤옥은 시인, 문학박사이다. <문학세계>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한국외대 연구평가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