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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여성의 노동력에 빚진 민족음식의 위상
[정문순 칼럼] 여성 노동력 희생, 힘든 김장보다 사먹는 게 낫지 않나
 
정문순   기사입력  2013/12/29 [13:17]
“엄마 김치, 맛없어.” 이맘때마다 박스 채로 보내주는 김치가 달갑지 않아, 딸이 자존심 상할 법한 말을 던져도 노모한테는 소용없었다. 올해는 무슨 말을 해야 제대로 튕겨낼 수 있을까 궁리 중인 나는 착한 딸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김치에 대한 정갈한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모에게 부리는 횡포를 합리화한다. '엄마표' 김치는 짜다 못해 짠지 수준에다 잡다한 채소란 채소는 죄다 들어앉아 있다. 난 그게 무척 싫었다. 유자 향이 나는 청각은 왜 집어넣는지 모르겠으며, 어떤 때는 뼈가 녹은 상태의 조기가 통째로 나와 기겁을 하기도 했다. 맛있으라고 이것저것 넣다보니 빨리 쉬어질까봐 소금 양도 덩달아 늘어나는 것이리라.

엄마표 김치에 대한 내 거부감은 김장이라는 겨울철 세시풍속이 달갑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음식 문화처럼 세상의 흐름을 따라 급격히 변하는 것도 없건만, 예외인 것도 있다. 피자는 20년 전만 해도 생소한 요리였으며, 캘리포니아롤이라는 것이 대중화된 것은 10년 정도다. 그에 비하면 김치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한 겨울에도 시퍼런 배추가 나오고 저장 시설도 발달하여 일년 내내 시어지지 않은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김장이라는 말은 진작에 사라지고도 남았다. ‘김장이 반 식량’이라는 말이 있지만 겨울에 푸성귀라고는 시래기밖에 없고 먹을 것도 빈약하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나 해당하는 말이다.

예전보다 덜 먹어 위상이 떨어질 위기에 처한 김치는, 집단 김장 문화에서 활로가 찾아졌다. 김치가 여전히 겨울철 주요 반찬인 사람들을 버팀목으로 삼아 김장은 어느새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올랐다고 좋아라들 하지만, 우리가 남의 나라 무형 유산에 관심이 없듯 마찬가지로 이것도 십중팔구 우리만의 자화자찬으로 끝날 것이다.

물론 공동체를 위하는 음식에 딴죽을 거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필요에 따라 조금씩 담그는 것도 아니고 소외 계층을 돕자고 바람 쌩쌩 부는 난장에서 수 십 명 이상이 모여 목소리 높여 떠들며 배추를 주물럭거리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다 먹을 사람의 입맛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표준화 공정의 극치로 보인다. 먹을 사람의 취향을 모르고 만드니, 맛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금과 양념을 많이 칠 가능성이 있고 화학조미료 투하도 불가피하다. 해마다 김장 행사를 대대적으로 여는 어떤 시장 상인회에서는 노인들에게 돌아갈 김치에는 특별히 화학조미료를 듬뿍 친다고 한다.

김치에 대한 근거 없는 신화도 만만치 않다. 김치의 신화는 역사와 건강 면에서 두루 걸쳐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김치는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 전래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김치 역사를 수 백 년으로 올려 잡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의 김치는 최대한 길게 늘려 잡아도 20세기 이후의 것이다. 1900년대 이전만 해도 통배추가 생산되지 않았으며 총각김치도 조선 시대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한복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100가지Ⅰ')  품종 개량이 되기 이전의 배추와 무는 볼품없었으므로 김치로 쓸 만한 것이 제한되어 있었다. 속이 단단히 찬 배추와 크고 통통한 무는 그 시절 존재하지 않았다. 양념도 지금과 크게 달랐다. 고춧가루 양념 범벅인 지금의 김치는 싸구려 중국산 고춧가루가 밀려들어오기 전인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김치 유산균의 탁월한 효능도 논쟁거리이다. 사람들은 김치가 탁월한 건강식품으로 공인된 줄 알지만, 건강에 헌신하는 김치 역시 일면의 모습일 수 있다. 유제품 회사의 일방적 주장일 수 있지만, 김치 유산균은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유산균보다 적다는 주장도 있다. 또 김치 유산균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유산군은 차치하더라도 고무장갑을 벌겋게 물들이는 맵고 짠 양념과 젓갈이 건강에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소금의 유해성이야 새삼 거론할 것도 없는 문제이고, 시중에 출시된 젓갈의 성분을 보면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도 난감하다. 젓갈의 쓴맛을 줄이고 감칠맛을 늘이기 위해 인공조미료 첨가는 필수라고 한다. 그러니 김치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더라도 시판 젓갈을 쓰는 한 꼼짝없이 섭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치가 사먹는 식품으로 인식되어도 지금과 같은 막강한 위상을 고수할지 의문이다. 경제 환경이 바뀌어도 특정 음식의 위상이 별반 위치가 바뀌지 않고, 성인병에 맞서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이나, 한민족의 문화적 유산쯤으로 지위가 격상되기 위해서는, 손쉽게 사 먹는 것이 아니라 힘들여 만들어 먹는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 때 동원되는 노동은 남성의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것이다. 여성의 노동력을 소모하는 음식에 대한 성찰의 빈곤이 김치의 거대한 위상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치 산업이 흥성하여 경제도 살리고 고용도 창출하고 GNP도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웬만하면 사먹고 말지, 몇날 며칠 여자들을 무상으로 생고생 시키는 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무상의 노동은 아무런 부가가치도, 이윤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 많던 시장주의자들은 김장 때는 왜 죄다 입을 다무는지 모르겠다. 상품화하지 않은 김치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여성들이 글을 올리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김장철에 제 딸과 사위를 먹이자고 며느리에게 싫은 일을 시키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줄줄이 올라온다. 아직도 주말에만 쉬는 며느리를 불러다 배추 수 백 통을 안기는 시어머니도 있다.

김치 담그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겨우내 양식을 마련하거나, 집안의 가풍이거나, 소외된 이웃 돕기 운동의 일환이거나, 잃어버린 공동체 문화의 끈을 잇거나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무형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성 노동에 기대어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미화된 시대착오적인 문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여성 노동력의 희생 위에 굳건한 성채를 쌓아온 음식 문화라면 이제는 바꿀 때도 되지 않을까.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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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2/29 [13: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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